목록종영 드라마 분류/신데렐라 언니 (21)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나의 사랑하는 못된 계집애가 독하디 독한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잡아 달라는 내 간절함을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줄은 정말 몰랐다." '신데렐라 언니' 9회에서는 또 화자가 바뀌었습니다. 초반에 흐르던 은조(문근영)의 나레이션은 드라마의 몰입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고 대단히 깊은 인상을 남겼기에, 저는 개인적으로 드라마에 나레이션 기법을 사용하는 것을 별로 찬성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괜찮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화자가 효선(서우)으로 바뀌게 되면서, 꼭 저런 것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바뀌더군요. 그래도 뭐 아주 나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기훈(천정명)의 나레이션이 흐르기 시작하니, 이것은 차라리 드라마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은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에덴의 동쪽'이 종영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송승헌과 연정훈의 어머니로 등장해서 초반 시청률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중견배우 이미숙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었지요. 그녀의 고민은 "나는 아직도 주인공을 하고 싶은데, 이 사회는 나를 뒤켠으로 물러나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덴의 동쪽'에 캐스팅 되었을 때에도 그녀는 본인이 주인공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물론 농담반 진담반의 어조였습니다. 아들들이 주인공이고 자신은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고 하는데 그 또한 완전히 농담 같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요. 나이들고 늙어가는 것은 몸일 뿐 마음이 아니니까요. 한때는 멜로의 여주인공을 도맡아 하던 그녀가, 이제는 자기에게 ..
홍기훈(천정명)은 아무래도 왕자님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다크 프린스라도 왕자님이긴 한 줄 알았는데, 왕자라면 갖추지 말았어야 할 치명적 요소들을 너무 많이 끌어안고 있군요. 8회에서 기훈이 보여준 우유부단하면서도 유치찬란한 행동들을 목격하고 나서야 어찌 그를 계속 왕자님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으로 봐서는 오히려 최악의 악역이 아닐까 생각조차 될 지경입니다. 그와 헤어져 있던 8년 동안, 은조(문근영)는 그를 잊지 않고 그리워했습니다. 화랑에서 마주친 효선(서우)이가 기훈을 만나고 있다는 말에 흔들리던 은조의 눈빛이며, 효선의 통화 내용에서 어떤 '오빠'가 버스터미널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정신없이 자전거를 달려 터미널로 향하던 은조의 모습에서는 아직도 그녀가 기훈을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하게 ..
최근 인기를 끄는 드라마에서는 몇 가지의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지난번의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밝고 유쾌한 터치의 드라마보다는 인간의 근본적 슬픔을 다룬 드라마가 많은 공감을 얻고 있지요. (슬픈 드라마가 연이어 대박을 치는 이유) 그리고 저는 '신데렐라 언니' 7회에서 또 한 명의 성자를 발견했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거든요. '신언니'의 성자는 마지막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 이전에 많은 사랑을 받은 성자들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 '선덕여왕'의 덕만 (이요원) 역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임금이지만, 드라마에서 그려진 모습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타인들을 위해 선덕(善德)을 베풀다가 자기의 삶은 모두 ..
'신데렐라 언니' 6회는 굵직한 에피소드보다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에 할애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 마음에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랑의 모습은 한정우(택연)에게서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택연의 연기가 충분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예상했던 수준보다는 훨씬 나았고, 아직은 때묻지 않아 순수하기 이를데 없는 한정우의 밝은 사랑은, 이미 집안 싸움의 추한 물결에 휘말려버린 홍기훈(천정명)의 어두운 사랑보다 훨씬 더 빛났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상대방을 자기 마음에 맞도록 변화시키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기심의 발로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관심도 없게 마련이니 굳이 변화시키려고 노력하..
'신데렐라 언니' 5회에서 은조과 기훈은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보기엔 아직도 너무 어리고 약해 보이는 외모이지만, 문근영은 그 약점을 연기력으로 충분히 커버했습니다. 그리고 천정명도 한결 중후한 느낌으로 변신에 성공했더군요. 저로서는 무엇보다도 가장 염려스럽던 부분이 천정명이었는데 한시름 놓았습니다. 이제는 제법 다크 왕자님의 포스를 제대로 풍기면서 그 어두운 속셈을 궁금하게 만드는 내면 연기도 얼핏 보이니 대견하더랍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를 차갑게 외면합니다. 일단은 오해 때문이라고 봐야겠지요. 은조의 입장에서는 기훈이 말도 없이 떠난데다가, 충분히 소식을 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8년이라는 세월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낄 ..
'선한 자와 악한 자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기' 라는 시도는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입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본다는 그 발상은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역사 속의 실존인물들도 그 새로운 시각에 따라 재조명된 인물이 상당히 많습니다. 심지어 충신과 간신이 뒤바뀌고, 성녀와 악녀가 엇갈리는 사태에 이르러 자칫하면 가치관이 뒤집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새로운 시각이란 "우리가 악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사실 악인이 아니었다" 는 인식의 전환일 뿐, 결코 "악인이 좋은 것이다" 라는 가치관의 전도는 아닙니다. 그렇게 만들래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이코패스가 아닌 다음에야 사람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착하고 올바른 쪽으로 ..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요즈음 거의 일주일 내내 이 사람의 얼굴을 브라운관에서 보게 됩니다. '제중원'의 유희서, '신데렐라 언니'의 구대성, '거상 김만덕'의 강계만... 드라마의 사각지대인 금요일을 제외하고 우리는 매일 그를 만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이리스'→'추노'→'신데렐라 언니'로 이어지는 KBS 수목드라마에서 김갑수는 계속하여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역할은 선악을 넘나들며 카멜레온처럼 끊임없이 색이 바뀝니다. '아이리스'의 핵물리학자 유정훈 선역(善役) '추노'의 인조 임금 악역(惡役) '신데렐라 언니'의 의붓아버지 구대성 선역 '거상 김만덕' 육의전 대방 강계만 악역 '제중원'의 역관 유희서 선역 숨 돌릴 틈도 없이 어제는 착한 사..
'신데렐라 언니' 2회에서는 주요 출연진들 간의 내공 격차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1회에서는 이미숙의 고혹적인 요부 연기와 기대 이상의 변신에 성공한 문근영의 존재감 때문에 살짝 가리워져 있었던 구멍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1. 서우 - 도를 넘어선 치근덕거림... 귀여운 게 아니라 귀찮다 솔직히 1회에서도 효선(서우)의 이미지가 썩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예능 출연에서 보여준 서우의 태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 방송을 보았으나 고의성은 없는, 단순한 실수라고 느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가해지는 호된 비판에 동참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와는 상관없이 드라마의 뚜껑을 열어 보니, 분명 선한 역할이라고 알려져 있던 구효선의 캐릭터가 의외로 첫방송부터 비호감의 수증기를 모락모..
얼마 전 예능에 출연해서도 너무 순둥이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문근영이 얼마나 악역을 실감나게 소화해낼 수 있을지는 약간 염려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일단 합격점을 주어도 될 것 같군요. 그지없이 순한 얼굴인데 시퍼런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니, 재작년 S본부의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자라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졌습니다. 악녀 연기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이미숙의 서포트를 받고 있다는 것은 문근영에게 있어 매우 큰 행운이라고 여겨집니다. 마성(魔性)의 모녀, 송강숙과 송은조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지에 따라 이 드라마의 성패가 좌우될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출발은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이미숙의 능란함과 문근영의 풋풋함이 어우러지며, 엄마와 딸은 거의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어 악녀 연기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