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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생뎐'은 왕꽃선녀님? 어이없는 짬뽕드라마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신기생뎐

'신기생뎐'은 왕꽃선녀님? 어이없는 짬뽕드라마

빛무리~ 2011. 7. 1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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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사란(임수향)과 아다모(성훈)가 결혼하여 아수라(임혁)의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하면서, '신기생뎐'에는 느닷없이 귀신이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엄연한 현대극에 갑자기 소복입은 할머니 귀신의 등장은 너무도 생뚱맞았기에 여기저기서 불만과 비판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황당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일단은 그냥 지켜보았습니다. 대체 귀신의 정체는 무엇이며 갑자기 왜 나타난 것인지 그 이유나 알고 나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하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드디어 49회에서 밝혀진 정확한 귀신의 정체는 아다모의 집안 조상신 중 하나였더군요. 언젠가 한의원에서 마주쳤던 정체 모를 여인이 단사란에게 아다모와 결혼하지 말라면서 뭔가 귓속말을 했었는데, 궁금했던 그 말의 내용도 이제 와서야 밝혀졌습니다. "아다모의 집안은 조상신이 세기 때문에 결혼하면 신랑이 신내림을 받을 수도 있다" 는 것이었습니다. 조상신이 세다 하더라도 지금껏 아무 일 없이 살다가 왜 단사란과 결혼한 이후부터 갑자기 신내림이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단사란의 존재 자체가 무언가 귀신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나보죠..;;

그래도 무언가 조금은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마음은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수많은 잡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임성한 작가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토록 개연성 없고 허접한 스토리라니, 임성한의 필력이 확실히 예전같지 않다는 사실을 아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를 특히 실망시킨 것은 자신의 예전 작품을 대놓고 복제하는 듯한 작가의 안일한 태도였습니다. '신기생뎐' 49회는 그대로 뚝 잘라다가 2004년의 '왕꽃선녀님'에 삽입시켜도 별로 부자연스럽지 않을 정도였어요. '왕꽃선녀님'의 여주인공 윤초원(이다해)의 친엄마는 부용화라는 무당이었는데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바로 김혜선이었죠. '신기생뎐'에서 여주인공 단사란의 친엄마 한순덕 역시 그 연기자는 김혜선입니다. 생각해 보니 윤초원과 단사란은 업둥이라는 설정도 똑같습니다.

조상신에게 빙의된 시아버지의 기이한 행동을 본 단사란은 과거 한의원에서 마주쳤던 여인의 말을 기억해내고 굳이 한순덕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한순덕은 그토록 갑작스럽고 생뚱맞은 요청에 당황하지도 않고, 오히려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내림 받은 사람을 척척 소개해 주는군요. 그녀가 평소 절에 자주 다니긴 하지만 무속신앙 쪽에까지 그토록 긴밀한 연줄이 닿아 있을 줄은 생각 못했는데 참 기가 막혔습니다.

신내림 받은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라고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소개하는 김혜선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무당 부용화의 모습이 오버랩되더군요. 단사란으로부터 전해받은 아수라의 사진을 보자마자 그 무당은 "신 중에서도 아주 높고 강한 신이 제대로 들어갔다"며 심상찮은 진단을 내리는데, 그것도 윤초원이 겪었던 신내림 증상과 동일합니다. '눌림굿'이라든가 '퇴마사' 등의 단어가 단사란의 입에서 나올 때는 정말 '왕꽃선녀님'을 다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신기생뎐'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보았을 때, 아수라의 조상신 빙의는 100% 쓸데없는 사족에 불과합니다. 들어가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에피소드라는 말이지요. 오히려 너무 생뚱맞아서 드라마의 흐름에 방해만 될 뿐인데 굳이 복선까지 써 가며 이토록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껏 표현하다니, 무속신앙 소재에 대한 임성한의 애정과 집착은 그야말로 대단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예전 작품을 이렇게 티가 날 정도로 대놓고 짜깁기하는 태도는 완전히 될대로 되라는 식이니, 작가에게 더 이상 발전 의지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덕분에 아수라 역할을 맡은 배우 임혁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할머니 귀신이 빙의된 상태에서 보쌈김치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데, 아수라 혼자서 무려 2분 20초 가량의 대사를 쉬지 않고 쏟아내는 것을 보니 정말 감탄스럽더군요. 긴 대사라 해도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면 베테랑 연기자로서 별 어려움이 없겠지만, 이 대사는 스토리와 전혀 관계없이 요리책을 줄줄 외워야 하는 수준이었으니 정말 힘들었으리라 짐작됩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여성스런 말투까지 그럴싸하게 흉내내어 가면서 그 어이없는 대사를 훌륭히 소화하는 임혁의 연기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자이언트'의 냉혈 사채업자 '백파'와 동일인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뿐만 아니라 아수라에게 붙은 귀신들은 모두 식탐이 엄청나더군요. 할머니 귀신은 밤새 라면을 무려 7개나 끓여서 해치웠고, 느닷없이 49회에 처음으로 말을 타고 등장한 장군 귀신은 빙의하자마자 오밤중에 양푼 한가득 밥을 비벼 먹었고 다음 날에는 10인분의 고기와 10병의 막걸리를 흡입했으니, 중간에 몇 차례 NG라도 났다면 배우 임혁은 식료품 CF라도 찍는 것처럼 배가 터지게 불렀을 것입니다..;; 게다가 승부욕이 강한 장군 귀신 때문에 느닷없이 아들 아다모를 붙잡고 씨름에 닭싸움까지 해야 하는 아수라 회장의 모습은 코믹하기보다 차라리 안스럽게 느껴졌습니다.

1998년의 '보고 또 보고'와 2002년의 '인어 아가씨'에 푹 빠져 지냈던 즐거운 기억은 재현될 수 없는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군요. 언제나 자극적 소재와 논란을 일으키는 설정들로 물의를 빚긴 했지만, 그 당시 임성한의 드라마에는 거부할 수 없는 흡입력과 긴장감과 재미가 있었고 전체적인 플롯도 개연성 있게 탄탄히 짜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장점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현동 마님'과 '보석 비빔밥'에서부터 벌써 작가 특유의 찰진 기운이 확 빠진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고 애써 부인하며 다시 재미있어질 그녀의 차기작을 기대해 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마음 설레면서 기다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참 아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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