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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구' 구일중과 서인숙의 황당한 캐릭터 변화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제빵왕 김탁구

'김탁구' 구일중과 서인숙의 황당한 캐릭터 변화

빛무리~ 2010. 8. 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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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편과 나쁜 편으로 정확히 갈라져서 싸우기 시작한 잔혹동화 '제빵왕 김탁구' 23회에서는, 첫째로 팔봉 선생(장항선)의 죽음이라는 슬픈 사건이 발생했고, 둘째로는 거성의 주인과 안주인이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는 우스꽝스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팔봉 선생의 이야기는 따로 언급하도록 하고, 우선은 급격히 널을 뛰면서 다른 쪽으로 이동해 버린 구일중(전광렬)과 서인숙(전인화)의 캐릭터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황당한 것은 갑자기 '전형적인 아버지상'으로 변모한 구일중이었습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구마준(주원)을 향해 "너를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너에게서는 어떤 변명도 듣고 싶지 않다!" 라고 차갑게 단죄하며 참회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리고 "두 번 다시 내 회사에, 내 식품개발실에 발을 들이지 마라!" 하며 자기와는 상관없는 남의 아이라는 듯 밀어내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요?

제작진이 애초부터 선역으로 규정지은 캐릭터였기에 앞으로는 좀 다른 태도를 보이며 변화해 갈 거라고 짐작은 했으나, 이렇게 급작스럽고 작위적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식의 가슴에 치유되지 않을 대못을 박는 막말을 서슴없이 내뱉던 사람인데, 23회에서의 구일중은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지만 속정은 누구보다 깊은,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상'이 되었더군요.


마준을 정략결혼 시키려는 서인숙을 향해 "그 아이가 처음으로 내 눈을 보며 자기의 생각을 말했소. 적어도 후회하는 결혼은 시키지 않을 작정이오" 라고 말할 때에도 좀 오글거리긴 했습니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신유경(유진)을 불러다가 "마준이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위해 주게. 많이 외로운 아이야." 라고 당부할 때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차마 눈 뜨고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마준이가 상처 많고 외로운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 아이를 가차없이 몰아붙이던 그 행동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요? 자식을 야단치더라도 돌아올 여지는 남겨 주었어야 했는데, 영원히 마음을 닫아버릴 것처럼 차갑게 밀어내던 구일중이었습니다. 팔봉 선생 밑에서 간신히 마음을 잡아가던 마준은, 그런 아버지의 태도를 보고 절망한 나머지 완전히 비뚤어져 버렸지요.

하긴 구마준은 보기 드물게 못난 놈이기는 합니다. 팔봉 선생이 자기를 위해 2년의 시간을 허락했던 그 깊은 뜻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그냥 제가 못마땅해서 벌을 주신 게 아닙니까!" 하며 대들 만큼 지지리 못난 놈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못난 아이일수록 보다 참을성 있게 다독이며 이끌어야 하는 법이지요. 마구잡이로 몰아붙이면 못난 놈이 더 큰 사고를 저지르는 거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구일중이 마준을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막말을 해서는 안될 일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외로움을 알고 걱정하면서도 그랬다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빙의라도 된 것처럼 구일중은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삽시간에 좋은 아버지로 탈바꿈했습니다.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이제 착한 쪽과 나쁜 쪽을 확실히 나누어서 전쟁을 시작해야 할 때이니, 선역의 대표격인 구일중이 더 이상 누구에게도 악역으로 찍혀서는 곤란했을 테죠. 그의 차가움에 불만을 품고 있던 시청자들을 달래기 위해 '따뜻함'을 한 스푼이 아니라 한꺼번에 한 양동이나 들이부었습니다. 민망할 정도로 속이 들여다 보이는 캐릭터의 변화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서인숙 또한 급작스런 변화를 보였습니다. 그녀가 속으로 구일중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은연중에 드러났지만, 이제껏 그녀는 남편에게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었지요. 오직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식들 문제와 회사 문제 등으로 남편과 수없이 부딪히면서도 언제나 지극히 강경한 태도로 맞섰을 뿐,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며 매달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미순(전미선)을 만난 사실을 두고 추궁하는 서인숙에게 구일중이 "당신은 모든 것을 가졌지 않소?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요?" 라고 묻자... 서인숙은 정말 느닷없이 "당신을 잃을까봐 두려워요! 당신이 나를 떠날까봐 두려워요!" 하고 외치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도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요? 

이렇게 만드는 이유는 구일중으로 하여금 서인숙을 용서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겠지요. 낌새를 보니 구마준과 서인숙은 김탁구와 구일중의 넓은 마음에 감화되어 진심으로 뉘우치며 용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인숙을 내친다면 가정이 무너질 테니 근본적으로 해피엔딩이 불가능하고, 거성가를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에도 안 좋겠지요. 그래서 결국 모든 악행의 책임은 한승재(정성모) 혼자서 뒤집어쓰게 될 것입니다. 서인숙의 캐릭터 변화 역시 구일중 못지 않게 매우 속 보이는 경우였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저의 느낌은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결말에서 수많은 시청자들을 기함하게 만들었던 '만신의 정체'보다 더욱 더 황당했습니다.


한승재는 이제껏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서인숙과 구마준을 위해 끔찍한 악역을 수행해 왔는데, 이제 서인숙과 구마준은 구일중의 넓은 품에 안기고 말았습니다. 그는 혼자 버림받고 혼자 모든 것을 덮어쓰고 혼자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진행이 다 눈에 보이는 듯하네요. 대부분의 동화나 만화에서 그러하듯이 악당은 바보여야 하고 허당이어야 하기에, 한승재는 점점 더 멍청한 허당짓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만 착한 쪽에서 쳐부수기 쉬울 테니까요.

23회에서도 한승재는 팔봉 빵집을 모함하여 영업 정지를 당하게 했으나, 허술하게 조진구의 눈에 차 번호를 들켜서 즉시 덜미를 잡혔습니다. 어김없는 허당짓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구일중은 새삼 정의의 사도처럼 악당을 응징하고 사표를 제출하라 명령하는군요. 한승재가 순순히 그 말을 들을 리는 없는데, 다음 회에는 또 어떤 나쁜 짓을 할지 이젠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아무리 그래봤자 허당일 테니까요.


이러한 작품의 전개가 너무 유치하게 느껴져서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지를 고민했으나, 팔봉 선생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최후를 목격하자 끝까지 시청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팔봉 선생의 존재감은 막장과 명품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이 드라마 전체를 은은한 보호막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그가 사라진 '제빵왕 김탁구'를 얼마나 몰입해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그의 최후는 지켜봐 주는 것이, 이제껏 그와 함께 숨쉬며 달려 온 시청자로서의 도리겠지요. 비록 드라마 속의 캐릭터에 불과했으나, 지난 몇 개월 동안 정말 좋은 스승이신 팔봉 선생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제게는 팔봉 선생에 대한 기억이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가 준 가장 좋은 선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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