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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서글픈 잔혹동화로 망가져 간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제빵왕 김탁구

'제빵왕 김탁구' 서글픈 잔혹동화로 망가져 간다

빛무리~ 2010. 8. 2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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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통속과 막장 논란은 있었으나 선과 악이 뚜렷이 구별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시대적 배경을 핑계삼아 구일중과 그의 어머니 홍여사를 선역으로 만들고, 서인숙과 한승재를 악역으로 몰아가려는 낌새가 있기는 했지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서인숙과 한승재가 용서받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기 전이었으므로 양쪽의 균형추는 엇비슷했습니다.

비 오던 밤, 홍여사를 죽음으로 몰아가면서 그들은 본격적인 악역의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어린 김탁구를 원양어선에 팔아 넘기려 하고, 신유경의 아버지를 사주해 탁구 엄마 김미순에게 치욕적인 위해를 가하려 했던 점 등등, 서인숙과 한승재가 행하는 죄악들은 가히 인면수심이라 할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약간의 균형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구마준이 그들 진영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구마준은 싹수부터 비열한 악역의 소질을 보였으나, 그래도 어리다는 이유로 애틋한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가족들 중 누구에게도 진실로 따뜻하고 올바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아이의 속이 얼마나 허전했을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웬만큼 유치한 짓거리는 용서가 되었습니다. 12살의 나이에 자기가 아버지로 알고 있던 구일중의 친자식이 아니라 어머니와 비서실장의 불륜의 씨앗임을 알게 되었으니 그 충격이 오죽했을까를 생각하면 웬만큼 비뚤어졌어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출생의 비밀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시종일관 지독한 차가움을 흩뿌리며 마준을 대하는 구일중의 태도 때문에, 동정심은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이렇게 구마준이 "감싸안아 주고 싶은 불쌍한 녀석"으로 남아 있으면, 자연스레 그의 친부모인 서인숙과 한승재에게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용서받기에는 너무 큰 죄악을 저질렀지만 그들도 부모인지라, 구일중에게서 외면당하는 마준을 보호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식으로, 아주 조금은 애처로운 눈길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구마준의 출생부터가 벼랑끝에 몰린 서인숙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딸만 둘을 낳았다는 것은 서인숙의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시어머니는 그녀를 천고의 죄인 대하듯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고, 자기 아들 구일중과 김미순의 합방을 대놓고 권장했으며, 김미순의 뱃속에 들어있는 불륜의 씨앗을 손녀들보다 더욱 애지중지했습니다.

남편 구일중은 어머니에게 당하는 아내를 보호해 주기는 커녕 차갑게 방치했고, 파렴치하게도 큰딸 자경의 보모였던 24살의 처녀 김미순을 범해 임신을 시켰습니다. 김미순이 아들이라도 낳으면, 서인숙으로서는 안방마님 자리마저 빼앗길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너와 네 남편의 사이에 아들은 없다" 라는 점쟁이의 예언까지 들었으니, 한승재를 통해서라도 아들을 얻고자 했던 서인숙의 극단적 선택은 원래 구일중과 홍여사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그 시대에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 시대에는 그게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시대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하더라도, 잘못된 일은 명백히 잘못된 일입니다. 미국의 노예 해방이 있기 전,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다가 짐승처럼 부리면서도 백인들은 자기네가 잘못하는 것을 모르고 살았겠지요. 왜냐하면 그 시대, 그 장소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보편적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고방식, 대단히 위험합니다. 빠지기 쉬운 함정이에요. 아무리 보편적이더라도, 그 시대 인구의 90%가 그렇게 살고 있더라도, 잘못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거라고 해야 하는 겁니다. 아무리 다들 그러고 사는 시대였지만 같은 인간인 흑인을 짐승처럼 노예로 부린 백인들의 삶은 죄악이었던 것처럼, 아무리 그 시대가 그랬다 해도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아내를, 며느리를 몰아붙이고 괴롭혔던 사람들의 행동은 명명백백히 그릇된 죄악이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옛날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현대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극을 시청한다 해서, 그 시대 사람들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보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어차피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일이구요. '제빵왕 김탁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꾸만 그 시대에는 그랬다고 하면서 구일중과 홍여사를 정당화하려는 분들의 의견에 저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상당히 길게 옆으로 새어나가고 말았군요. 어쨌든 제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최대한 요약해서 표현한다면, "구마준이 돌이킬 수 없는 악역의 길로 접어들면서, 이 드라마는 착한 편과 나쁜 편으로 갈라져서 싸우는 잔혹동화가 되어 버렸다" 는 것입니다.

설빙초를 구입해 올 때부터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설마 그것을 탁구에게 먹이지는 않을 거라고, 아직은 구원의 여지가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탁구가 한 숟가락의 설빙초를 삼키는 모습을 보며 "이건 내 의지가 아니었어. 너의 운명이다, 김탁구" 라고 속으로 되뇌이는 순간, 이미 구마준은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의 행동들은 별로 놀랍지도 않더군요.

구마준은 탁구의 후각을 잃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고, 스승인 팔봉 선생의 원수(?)인 춘배를 만나 몰래 가르침을 받았고, 그에게서 받은 레시피를 이용해서 경합에 참가하는 뻔뻔함을 발휘했고, 그게 들통나 경합에서 탈락하자 앙심을 먹고 제빵실에 불을 질렀으며, 소란스러운 틈을 타 팔봉 선생의 발효일지를 훔쳐 달아났습니다. 이제 그는 춘배와 결합하여, 자기를 가족처럼 아껴 주던 팔봉 빵집의 식구들과 정면으로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그 대결의 방식 또한 매우 비열하고 악랄할 것입니다.


'불쌍하고 가여운 녀석'으로 남아 서인숙과 한승재에게 약간의 불빛이나마 비추고 있던 구마준의 존재였지만, 이제는 자기 부모와 똑같아지고 말았습니다. 용서받기에는 너무 심한 악행들을 저질러 버렸어요. 특히 제빵실 방화 사건은 자칫하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갈 수도 있었을 만큼 위험하고 커다란 범죄였으며, 설빙초 사건 역시 타인의 몸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함으로써 그의 인생 자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었던 악질 범죄였습니다. 자기가 먹인 게 아니라 해도 탁구가 그것을 삼키는 모습을 보았으면 마땅히 죄책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는 것은, 스스로 먹인 거나 다름없었지요.

이제 드라마의 인물들은 착한 편과 나쁜 편으로 완벽히 갈라졌습니다. 정말 촌스럽습니다. 5~6세 어린이용의 동화책에 나올 법한 설정이 되어 버렸어요. 너무도 잔혹하다는 점에서 어린이용이 아닐 뿐이지요. 하지만 '신데렐라'나 '헨젤과 그레텔' 등의 유명한 동화들도 원래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잔혹동화였다는 말이 있더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동화들에는 여러가지의 버젼이 있는데, 그 중에 잔혹버젼들이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신데렐라의 음모에 의해 계모의 팔이 잘려나간다든가, 뭐 그런 수준의 내용들이 가득 들어찼던 잔혹버젼의 동화를 몇 편 맛보기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세한 내용은 잊어버렸네요.


어른들이 보기에는 너무 단순해서 유치하고,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잔혹해서 끔찍한, '제빵왕 김탁구'는 그렇게 서글픈 잔혹동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구마준의 캐릭터만 살렸더라도 이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게다가 춘배 역할의 최일화씨 분장은 완전히 동화책에 나오는 마귀 할아범(?)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구마준과 춘배가 어두컴컴한 곳에서 만나 악행을 모의하는 장면은, 무섭기보다 차라리 우스웠어요.

서인숙은 기껏 계략을 세워 김미순을 만나 놓고도 몇 마디의 큰소리만 탕탕 쳤을 뿐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못한 채 그냥 나와버렸고, 허당 한승재는 김미순에게서 서류를 빼앗는 데는 성공했으나 뭔가 덜미를 잡힌 듯 합니다. 춘배와 구마준 역시 악독하기는 하지만 별로 똑똑하지 못하고 많이 허술해 보이는군요.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착한 편의 승리는 어차피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맥빠지고 재미가 없네요.


저 역시 너무나 긍정적인 김탁구의 승리를 간절히 원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상대편을 '천하의 나쁜 놈들'로 만들어 버리면서,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그들을 때려 부수는, 이런 식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악역이라도 정도껏 만들어서 최소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 주어야 했습니다.

김탁구는 파괴하는 영웅이 아니라 용서하는 영웅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의 승리는 짓밟음이 아니라 포용으로 형상화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구마준이 너무 바닥까지 망가졌기 때문에, 용서한다 해도 오히려 거부감이 들 지경입니다. 차라리 그들의 집단을 완전히 소생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뜨리는 편이 자연스럽게 되어 버렸어요. 그들은 더 이상 가족도 친구도 아니고 '파란해골 13호' 처럼 타도해야 할 원수일 뿐입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갈등 구조가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편이 더 몰입도가 좋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극단적인 설정을 해야만 더욱 화제가 되고 시선을 끌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까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경계한 나머지 어떻게든 튀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요? 하긴 그런 면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작품성은 여지없이 망가졌습니다. 막장과 통속의 조미료를 첨가하기는 했어도, 나름대로는 명품 드라마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창피할 만큼 수준이 낮아졌어요. 그저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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