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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차천수의 편지 - 동이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동이

'동이' 차천수의 편지 - 동이에게

빛무리~ 2010. 6. 29.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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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야, 어린 너를 지켜주겠다고 네 오라비 동주에게 약속했었는데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구나. 네 아버지께서도 내 앞에서 숨을 거두시며 너를 당부하셨는데, 네가 홀로 이렇게 성장하고 온갖 고난을 겪는 동안, 나는 너를 위해서 해준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차마 죽어서도 어르신을 다시 뵈올 면목이 없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검계는 와해되었고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져 갔다. 가족이 없는 내게 형제보다 더한 정으로 가족이 되어 주었던 네 오라비 최동주가 그토록 허무하게 죽어갈 때, 나도 이미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러나 너를 지켜 달라는 당부가 있었기에 나는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치명상을 입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오랫동안 헤매었으나 안간힘을 쓰며 삶의 길로 돌아온 것은 동이야, 오직 너 때문이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만으로야 어찌 할 일을 다했다 하겠느냐? 내가 보살피지 못하는 사이에 어른이 되어버린 너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결코 너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겠노라 다짐했건만 스스로의 그 다짐조차 지키지 못하였다. 너는 또 다시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던 것이다.

모두 네가 죽었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지 않았다. 모든 일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지만, 그래도 너만은 아니길 바랬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너를 찾아 조선팔도를 헤맬 때, 애끓는 가슴으로 선잠이 들 때면 반드시 꿈을 꾸었다. 살아서 너를 다시 만나는 꿈을... 나는 물 속에 잠겨도 좋았고 불길에 휩싸여도 좋았다. 네가 살아있기에, 나에겐 그저 감미로운 꿈이었다.


이제 그 꿈이 현실이 되니, 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하였는데 이렇게 몸져 누워 버리다니 동이야, 일어나야 한다. 내 비록 너에게 해준 것은 없다만, 더 이상 애를 태워서는 아니 된다. 내 비록 못난 오라비이지만, 죽음보다 더한 애통함을 다시 겪게 해서는 아니 된다. 만에 하나라도 네가 이렇게 속절없이 눈앞에서 떠나 버린다면, 내 어찌 죽어서나마 동주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이더냐?

소중한 누이일 뿐이라고, 자꾸만 너를 향해 가는 마음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은 내게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너를 담기에는 나의 그릇이 너무 작다는 것을, 너를 다시 만나면서부터 느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너는 한강의 푸른 강물처럼 한없이 넓은 곳으로 흐르는데, 나는 한켠의 시냇가에 머물러 그런 너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전하께서 너를 두고 "나의 몸과 같다" 하셨으니 너를 귀히 여기시는 마음이 예사롭지 않구나. 그리고 너는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전하를 염려하여 그분께 알리지 말라 하였으니, 네 마음 또한 전하에게로 향해 있음을 나는 본다.

내 어찌 감히 막을 수 있겠느냐? 전하께서는 그 넓은 가슴으로 이 나라를 품으셨으니, 그 안에서라면 너도 마음껏 네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도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구나. 다만 너에게 부치지 못할 이 편지에나마 답답한 심경을 토로할 뿐이다.


동이야,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나는 또 상상을 한다. 네가 그렇게 당차고 슬기로운, 큰 날개를 지닌 여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여인이었다면 참 좋았을 거라고 말이다. 네 오라비 동주를 사랑했던 설희 아씨는 어린 너를 잘 보살펴 주었을 것이고, 그렇게 조용히 자라나서 어른이 된 너를 내가 다시 만날 수 있었더라면, 나는 너에게 좀 더 쉽게 손을 내밀 수 있었을 거라고... 거친 당파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궁중 여인들의 암투에도 상관없이, 그렇게 너와 나, 둘이 기대고 살아갈 수도 있었을 거라고... 그런 어리석은 상상을 한다.

그러나 사람의 운명을 어찌 바꿀 수 있겠느냐? 어린 너는 스스로 날개짓하여 궁중으로 날아들어갔으며, 그렇게 홀로 성장하여 지금의 자리에 섰다. "이 다음에 크면 천수 오라버니한테 시집갈 거야" 라던 꼬맹이는 이제 다 컸지만, 네 곁을 지킬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 나라의 임금이신 모양이구나. 네가 가려는 그 길이 결코 평탄치 않을 것임에 안타까운 염려가 앞서면서도 붙잡지 못하는 이 마음은 오늘도 그저 초라할 뿐이다.


하지만 동이야, 사람의 작은 행복이란, 바쁜 걸음을 재촉하다가 잠시 조촐한 시냇가에 걸터앉아 누리는 시원한 물 한 모금과 서늘한 바람 속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스쳐 지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풀꽃 향기도 달콤하게 스며들고, 그 순간의 하늘은 너만을 위해 빛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구나. 그러니 동이야, 어서 일어나거라. 너의 앞에서는 전하께서 기다리시고, 너의 뒤에서는 이 못난 천수 오라버니가 여전히 너를 기다리며 서 있으니 말이다.


* 편지 형식의 이 리뷰는 저의 개인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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