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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맏딸 자경이의 독백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제빵왕 김탁구

'제빵왕 김탁구' 맏딸 자경이의 독백

빛무리~ 2010. 6. 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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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탁구 저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 날 밤의 기억은 지금도 가끔씩 내 꿈에 나타납니다. 밤이 깊었는데도 미순 언니는 나를 재워주러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언니를 부르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열려있는 아버지의 서재 문틈으로 언니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였습니다.


아버지는 미순 언니를 끌어안고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있었는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모르면서도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대로라면 미순 언니는 내 곁에서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어야 했는데, 왜 나를 버려둔 채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때 할머니가 뒤에서 조용히 나를 잡아 끌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할미랑 자자꾸나."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뭔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꿈은 악몽입니다. 엄마는 마구 소리지르며 울었고, 미순 언니는 자꾸만 토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한동안은 그 날 이후 달라져 버린 엄마가 무서웠습니다. 엄마는 항상 불안에 떨었고, 나를 보며 웃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마준이가 태어나자 모든 사랑을 마준이에게만 쏟아 부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때는 몰랐었지만, 이제 나는 알고 있습니다.


엄마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장 불쌍한 사람은 엄마입니다. 나에게도 악몽으로 남아 있는데, 엄마에게는 훨씬 더할 테니까요. 애써 잊으려고,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지금은 탁구 저 아이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그럴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저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저 아이가 싫습니다.


아빠는 간절히 원하는 나를 한 번도 빵공장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기 때문입니다. 아빠의 사업을 물려받을 후계자는 아들인 마준이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나는 공부도 잘 하고 아빠를 제일 많이 닮았으니까, 내가 노력하면 아무리 딸이라도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탁구 저 아이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나는 저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날 밤, 문틈으로 보고 있던 내 손을 잡아끌며 "쉿!"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나는 기억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아들이라고 좋아하시며 지금 저 아이의 밥 위에 고기 반찬을 올려 주시는 할머니를 나는 미워합니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내 동생 마준이가 그 아이보다 못나 보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들이라는 이유로 더 귀한 대접을 받는 마준이를 보며 속이 상한 적도 많았지만, 적어도 탁구 저 아이 보다는 훨씬 잘났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혼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탁구를 모함하려고, 내 샤프펜슬을 가져다가 그 아이의 책상 서랍에 넣어두는 못난 짓을 내 동생이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그 아이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내 동생은 모르나 봅니다.


마준이가 할 수 없다면 이젠 내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만 좋아하시던 할머니를 후회하게 만들고, 마준이에게만 모든 기대를 걸었던 엄마가 나 때문에 어깨가 으쓱해지도록 만들 것입니다. 탁구 저 아이에게 빼앗기기는 정말 싫거든요. 그날 밤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가 강해지는 것뿐임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며 살지 않을 거예요. 거성의 장녀로서, 여자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꼭 보여 주고 말겠습니다.

*******

저는 아직도 '제빵왕 김탁구'를 개운한 마음으로 시청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 관해 처음 올렸던 리뷰 '제빵왕 김탁구-비뚤어진 시작,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다' 를 읽으신 몇몇 분께서는, 제 글의 의도를 다른 방향으로 파악하고 계시더군요. 그분들의 말씀은 "시대극이기 때문에, 그 시대에는 저런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에, 그 현실을 그대로 그려낸 드라마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는 가장 큰 문제점은 서인숙(전인화)과 구마준이 악역으로 설정되어 있고, 김미순(전미선)과 김탁구가 선역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좀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불륜녀와 사생아가 착한 역할이고, 본부인과 그 아들은 나쁜 역할이라는 겁니다. 이건 시대적 상황과는 관계 없는 것입니다.


3회에서도 김미순과 김탁구는 가장 불쌍하고도 선량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으며, 서인숙의 표독함과 구마준의 치사함은 악역 중에서도 거의 최악의 모습을 보여 주어서 밉상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이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칫 불륜을 미화하고 본부인과 그 자녀들의 정당한 분노를 부당하다고 인식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맏딸 자경의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했고, 점차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때, 소녀의 마음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것입니다. 아들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동생과 차별받고 성장하면서,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편의 불륜마저 감당해야 했던 어머니의 고통도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사실 저에겐 현재로서 감정이입이 가능한 유일한 캐릭터가 바로 구자경입니다. 앞으로도 이 드라마는 계속 김탁구의 입장에서 전개되어 갈 것이고, 서인숙과 구마준은 별로 멋지지도 못한 찌질한 악역으로 머물겠지요. 그리고 어차피 승리자는 김탁구가 될 것이기에, 구자경의 노력 또한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저는 꿋꿋이 그녀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합니다. 어쩌면 이 드라마의 작가는 불륜녀와 사생아에 대한 동정심이 깊어서 주인공의 출생을 이렇게 설정했는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거든요.  dad6794125bceb81175c7605f29dc2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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