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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비뚤어진 시작,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제빵왕 김탁구

'제빵왕 김탁구' 비뚤어진 시작,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다

빛무리~ 2010. 6. 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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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솔직히 '제빵왕 김탁구' 1회는 통속적이지만 지루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초반의 흥미 유발을 위해 설정된 듯한 주인공의 탄생 비화가 너무도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이었기에, 개운한 마음으로 시청하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마음을 거북하게 했던 것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가해자를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 설정이었습니다. 일전에 관람했던 영화 '하녀'에서도 약간 비슷한 불편함을 느꼈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욱 심하군요. 주인공 김탁구의 캐릭터는 씩씩하고 착하고 올바른 청년인데,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일그러져 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빵 업계의 재벌인 거성家의 며느리 서인숙(전인화)은 단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어머니 정혜선에게 온갖 인격적 모욕을 당합니다. 그리고 남편 구일중(전광렬)도 아내에게 손톱 만큼의 애정이나 배려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랑 없는 결혼을 했다 해도, 이것은 엄연한 폭력입니다. 촌스러운 남아선호사상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 가정에서 며느리이며 아내인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 부당한 폭력을 보아야 하는 것만으로도, 드라마를 시청하는 기분은 처음부터 찜찜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아들을 낳아 볼 심산으로 용한 점쟁이(?) 노인을 찾아간 서인숙은 "너와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은 없다. 혹시 다른 놈의 씨라면 모를까..." 라는 섬뜩한 예언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노인은 이어서 "하긴, 그러기 이전에 다른 여자에게서 아들을 낳아 오겠구나..." 라고 또 하나의 아름답지 못한 예언을 덧붙입니다. 마치 아무 말도 안해 줄 것처럼 시치미를 떼더니만 결국 묻지도 않은 말까지 해주는 싱거운 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언은 신통하게도 맞아떨어져 거성 회장인 구일중은 자기 집에서 큰 딸 자경의 보모 겸 입주 간호원(명칭이 '간호사'로 바뀐지 오래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간호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더군요. 시대적 배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으로 근무하는 스물 네 살의 처녀 김미순(전미선)에게 접근하여 임신을 시키고 맙니다. 영화 '하녀'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설정입니다. 비록 '하녀'의 전도연처럼 옷을 벗고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미선 역시 별다른 저항 없이 구회장에게 몸을 맡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재벌가의 저택에 고용되어 일하는 '하녀'들의 입장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김미순은 멀쩡히 개인병원에 취직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있는 간호원이던데, 어째서 구회장의 손길을 뿌리치고 그 집을 뛰쳐나오지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네가 예뻐서 그런다... 예뻐서..." 라는 느끼한 한 마디에 맥을 놓고, 남의 남편을 기꺼이 받아들인 김미순이 무슨 비련의 여주인공인 것처럼, 대단한 피해자인 것처럼, 모성 지극한 어머니인 것처럼 표현되는 것이 또한 불편한 부분이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돌봐주던 보모 언니와 키스하는 장면을 열린 방문 틈새로 지켜보던 어린 딸 자경의 맑은 눈빛이 무엇보다 가장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인숙의 마음 속에는 분노와 더불어 자기 방어 의식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점쟁이 노인의 예언대로라면 전미선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어머니는 자기를 밀어내고 그 아이를 거성의 안주인으로 앉힐지로 모를 일이었습니다. "네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은 없다. 혹시 다른 놈의 씨라면 모를까..." 라던 노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한데, 그녀의 눈앞에는 결혼 전부터 사랑했던 남자 한승재(정성모)가 있습니다.


부모도 재산도 없는 한승재는 친구인 구일중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기고도 아무 말 못한 채 그의 비서실장으로 남아 그들 부부를 상전으로 모시고 있었지요. 아직도 그녀를 향한 마음이 남아있던 한승재는 서인숙의 유혹에 기꺼이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가 낳을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줍니다.

구일중과 김미순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김탁구(윤시윤)이며, 서인숙와 한승재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구마준(주원)입니다. 둘 다 불륜의 씨앗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둘 다 정당한 출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쪽을 더 이해할 수 있는가를 굳이 따진다면, 저는 서인숙과 한승재 쪽을 택할 것입니다. 김미순을 향한 구일중의 마음은 순간적 애욕에 지나지 않았으나, 서인숙과 한승재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아픔과 더불어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기에, 그래도 김탁구에 비해 구마준은 약간이나마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리고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말 못할 굴욕을 당하며 살아 온 데다가 남편의 외도로 혼외 자식까지 보아야 하는 서인숙의 입장에서 자기 방어 의식이 맹렬하게 발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해결책으로 택한 방법이 옳지는 않았으나, 먼저 폭력을 행사한 것은 구일중과 그 어머니였습니다. 그 집안에서 서인숙은 피해자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드라마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구일중의 외도로 태어난 아들 김탁구는 비록 어머니 김미순과 시골에 숨어 가난하게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씩씩하고 올바른 청년으로 자라날 것이며, 아버지를 닮아 천재적인 제빵기술의 능력까지 갖추었겠지요. 그리고 구일중 회장의 장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뒤늦게나마 되찾게 될 것입니다.

그에 비해 서인숙의 외도로 태어난 아들 구마준은 부잣집 막내이며 외아들로서 온갖 특권을 누리며 자라났지만 오히려 타고난 능력도 부족한 데다가 질투심 가득하고 비뚤어진 망나니로 성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형적인 악역으로 설정되어 있거든요. 그러다가 나중에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 모든 것을 잃고 거성家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겠군요.

아들을 못 낳는다고 며느리를 쥐잡듯 하는 시어머니 정혜선도, 가족에게 자상한 모습 한 번 보여주지 않은 채 권위적 태도로 일관하는 전광렬도, 대체 그 집안 핏줄이 올바른 성품을 가졌을 거라고 볼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구회장의 불륜으로 태어난 씨앗이 바로 이 드라마의 '착한 주인공'입니다.


설마 이 드라마의 작가는 "같은 불륜이라도 남편의 불륜이 아내의 불륜보다는 좀 낫다"고 생각해서 이런 설정을 한 것일까요? 혹시 그런 의식이 조금이라도 내면에 깔려 있었다면 이것은 남아선호사상보다도 훨씬 고리타분하고 유치하다 할 것입니다.

피해자 서인숙을 마치 악의 축인 것처럼 만들고, 그녀의 아들 구마준을 찌질한 악역으로 설정한 채, 비록 불륜의 씨앗이지만 거성家의 진짜 핏줄이고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착한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 김탁구의 입장에서 진행되어 갈 이 드라마가 과연 얼마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는 벌써부터 마음 속으로 김탁구보다 구마준이 더 애틋하게 여겨지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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