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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언년이가 첫날밤에 도망쳤던 이유는?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추노

'추노' 언년이가 첫날밤에 도망쳤던 이유는?

빛무리~ 2010. 2. 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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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는 갈수록 재미있습니다. 이 스펙타클하고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어떻게 재미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인물들의 감정선을 주로 따라가며 시청하는 저로서는 적잖이 난감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긴박한 상황 전개에만 몰입하다 보면 대충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게 되는데, 좀 더 깊이 몰입하려고 할 때는 여지없이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각각의 인물들이 당최 근본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마음인 것인지가 뚜렷이 잡히질 않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의문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대길 - 언년아, 정말 네가 시집을 갔단 말이냐!


대길이의 추노 인생은 큰놈이와 언년이 남매로 인하여 시작되었습니다. 큰놈이가 그의 가족을 몰살시키고 집과 온 재산을 불태우고 언년이와 함께 도망친 후, 대길은 그 남매를 쫓는 일에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막상 잡고 나면 뭘 어쩌자는 것인지' 가 뚜렷이 드러난 적은 없었지요. 대충 생각하면 큰놈이를 죽여 원수를 갚고, 언년이와는 못다한 사랑을 이루겠다? 뭐 이런 식일 수도 있겠으나, 오라비를 제 손으로 죽여놓고 여동생과 사랑을 이루겠다는 반인륜적 설정은 아무래도 좀 억지스럽지요?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들 남매를 잡고 나면 대길이는 과연 구체적으로 뭘 어찌할 생각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대길의 눈앞에 철천지 원수인 큰놈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죽이려는 것처럼 보였으나 역시 쉽게 죽이지는 못합니다. 언년이의 행방을 캐묻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대길이가 언년이의 오라비를 단칼에 죽일 수 없으리라는 점은 미리 짐작했던 바였습니다.


큰놈이는 대길이에게 두 가지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하나는 그 자신이 대길의 배다른 형이라는 사실이었고, 또 하나는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폭로는 대길의 혼을 완전히 쏙 빼놓았습니다. 충격과 절망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장혁의 연기에 대해 폭포수처럼 찬사가 쏟아질만한 장면이었습니다.

대길은 바로 눈앞에서 큰놈이가 자결하는데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그저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례를 올렸다는 이야기만 얼빠진 표정으로 곱씹고 있었습니다. 큰놈이가 자기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충격이긴 했지만, 언년이가 시집갔다는 소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과연 대길이가 살아 온 이유는 오로지 언년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대길이는 언년이가 10년 동안 시집을 안 갔을 거라고 믿었던 걸까요? 


서로 다시 만날 날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습니다. 더구나 언년이는 대길이가 죽은 줄 알고 있었습니다. 헤어질 당시에 벌써 시집가도 될 정도로 다 큰 처녀였는데, 그 후로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즘 세상에야 독신 여성도 많지만, 그 시대에 처녀가 고집을 피우며 결혼을 안 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저는 대길이가 언년이를 쫓으면서도 그녀가 이미 시집을 갔을 거라는 예상은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10년 동안 언년이가 처녀로 지내고 있을 거라고, 대길이는 굳게 믿었나봐요.

혹시 언년이가 시집갔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던 게 아니라, 그 상대가 송태하라는 점 때문이었을까요? 대길이는 처절하게 외쳤습니다. "그 많고 많은 놈팽이 중에 왜 하필 송태하야! 왜 하필 도망 노비야!"

언년이의 상대가 '송태하'라서 대길이가 절망하는 거라면, 그 이유는 뭘까요? 언년이를 빼앗아 오고 싶은데, 자기의 무예로 송태하를 당해낼 수 없어서? 그러나 만약 그런 의미라면 '왜 도망 노비야' 라는 대사와는 걸맞지가 않습니다.


'도망 노비'라는 점에 주목하면, 추노꾼인 대길로서는 도망 노비인 송태하를 목숨 걸고 잡아야만 하는 입장이지요. 결국 언년이의 남편을 자기 손으로 잡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 대길이를 그토록 괴롭혀서 피터지는 절규를 하게 만든 걸까요? 언년이가 모처럼 시집을 갔으니 행복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신랑이 도망 노비라서 자기가 잡아들여야 하니, 사랑하는 언년이의 행복을 자기 손으로 깨뜨릴 수밖에 없어서? ...설마... 그런 걸까요?

그런 순정남, 초식남의 마음을 갖고 있는 대길이라면, 대체 왜 10년간 그녀의 뒤를 쫓은 겁니까? 알아서 행복하게 잘 살라고 내버려두면 될 텐데요... 그냥 멀리서나마 행복한 그녀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래서 눈에 핏발을 있는대로 세우고, 짐승과도 같고 야차와도 같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극악한 추노꾼으로 변신하여 그들 남매의 뒤를 쫓은 걸까요? ....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10년간 언년이의 행적을 쫓았던 이유는, 멀리서 행복을 빌어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물불 안 가리고 그녀를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도무지 대길이가 정확히 어떻게 하기를 원했던 것인지를 알 수 없으니, 그 슬프고도 절절한 감정선이 제대로 와닿지를 않았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충격받아 멍때리고 있기보다는, 어서 빨리 송태하를 추격하여 그를 잡아들이고, 언년이를 빼앗아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 말발굽에 박차를 가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지 않습니까? 송태하에게 시집갔다는 소리 한 마디에 한없이 절망하며 무너지는 대길의 모습이 설득력 없다고 느낀 사람은 저뿐이었나요?


2. 언년 - 첫날밤에 도망친 이유는, 새신랑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답니다~ *^^*


언년이는 최사과 양반과의 혼례식까지 올렸으나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어설픈 남장을 한 채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 이유는 먼저 떠난 대길 도련님에 대한 사랑과 의리로 정조를 지키려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만약 세상이 그녀를 시끄럽게 뒤쫓지 않고 내버려두기만 했더라면, 명안스님의 암자에서 평생 소복을 입고 부처님 앞에 절하며, 그 초심을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거친 추격을 피하기 위해 잠시 송태하에게 신세를 지기로 한 것은 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치겠습니다. 그런데 최사과 측에서 파견한 윤지도 죽었고, 오라비가 파견한 백호도 죽었으니 이제 언년이는 끈질긴 추격에서 벗어났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여전히 황철웅 세력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는 송태하와는 달리 평온한 입장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도 마치 송태하의 다리에 칭칭 감겨 있는 미역 줄기처럼 (표현이 좀 그렇긴 합니다만, 급박한 상황에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을 추스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연상된 이미지였습니다..;;)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달라붙어서 제주도까지 옵니다.

원손을 구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송태하의 원대한 포부를 듣고 "큰 일을 하시는데 방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혼자 가셔요" 라고 말하는 순간, 언년이가 갑자기 예뻐 보였습니다. "드디어 네가 정신을 차렸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언년이는 송태하의 한 마디에 곧바로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송태하의 말은 사실 별 것도 아니었습니다. "남녀가 유별하지만, 손은 계속 잡겠습니다. 뛰어가야 하니까" ... 분명히 혼자 가시라고 했건만, 못 들은 체하고 무조건 그녀를 데려가겠다는 태도였지요. 나름 멋진 대사이긴 했지만,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큰 일 하시는 분께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고' 모처럼 갸륵한 결심을 했나 싶더니만, 언년이는 저 단순하면서도 마초스러운 대사 한 마디에 홀랑 넘어가서 그 남자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아 버리니... 그녀가 방금 했던 말은 창피하고 무색하고 민망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혼자 보낼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쫓아다니기 미안하니까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였던 건가요? -_-


송태하와 동행하게 되면서, 어떤 식으로든간에 그들의 멜로라인이 연결될 것임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언년이는 좀 더 망설여야 했고,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고, 좀 더 오랫동안 조심스러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손을 덥석 잡고, 그 남자의 칼을 어루만지며 기다리고, 거침없는 포옹과 키스에 자기 몸을 맡기지는 말아야 했습니다.

이건 완전히 송태하에게 홀딱 빠진 여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 물론 충분히 반할만 하긴 했습니다. 송태하는 완벽한 남자인데다가, 수차례 그녀의 목숨을 구해 주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이렇게 빨리 눈에 하트를 떠올리면, 언년이는 오갈데 없는 쉬운 여자가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언년이가 새색시의 신분으로 첫날밤에 도망친 이유는 "새신랑이 맘에 안 들어서" 라는 이유 밖에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결코 "대길 도련님에 대한 사랑과 의리"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최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고, 송태하는 받아들일 수 있는 언년이의 마음을 달리 무어라 표현하겠습니까? 어차피 대길이 아닌 다른 남자와도 사랑할 수 있는 그녀였는데 말입니다.

물론 도망칠 당시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요. 굳이 애써서 이해를 하자면 뭐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내 삶에 도련님 이외의 남자는 없어" 라고 생각했겠지만, 세상에 이렇게 멋진 사내가 존재할 줄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 그야말로 뒷간에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게 되어 버린 셈이지요. 


3. 송태하 - 세자 저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원손마마를 구하기에 앞서, 제가 연애를 좀...


어린 원손 이석견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그 상황에서 언년이에게 "다시 돌아오겠다"는 메시지를 남기느라 무기를 두고 가는가 하면... 원손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급히 배를 출발시켜야 하는 상황인데 일각도 아니고 이각을 지체하면서까지 언년이를 데리러 가더니... 그녀를 만났으면 얼른 들춰업고라도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 마땅하건만, 한가롭게 끌어안고 키스나 하고 있는 충신(忠臣) 송태하 장군...

이 어이없는 설정이 송태하의 캐릭터를 얼마나 치명적으로 망가뜨렸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많은 분들이 수없이 지적해 주신 부분이니 저는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한 매력을 느끼고 있던 캐릭터인데, 정말 허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


'추노'는 정말 재미있지만, 저는 세 명의 주인공 모두 그 감정선을 따라잡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선덕여왕'에서는 주요 인물부터 단역에 이르기까지 그 생각과 감정선이 뚜렷하게 잡혀서 몰입에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추노'에서는 도무지 뚜렷하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네요. 편지를 쓰고 싶은데 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전에 썼던 '송태하의 편지'와 '언년이의 편지'는... 취소하고 싶을 지경이에요. 10회에서 그들의 충성과 사랑이 초라하게 빛을 잃었거든요.

계속 이러지는 않겠지요? 일시적인 흔들림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알찬 내용으로 만회한다면 이제껏 잃었던 설득력도 되살릴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래도 11회를 기다립니다.


* 덧붙이기 : 저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원손 이석견 역을 맡은 아역배우 김진우군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한섬이가 원손을 안고 달릴 때부터 조마조마한 것이, 어린애를 안고 너무 거칠게 뛰는지라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아기는 시종일관 무표정이었습니다. 너무 어리기 때문에 연기와 실제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넘어지거나 말거나, 자기를 끌어안은 채로 칼싸움을 하거나 말거나, 마치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말끄러미 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놀라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정말 신기하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귀엽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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