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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한 조선 궁녀의 주체적인 사랑과 일생 본문

드라마를 보다

'옷소매 붉은 끝동' 한 조선 궁녀의 주체적인 사랑과 일생

빛무리~ 2022. 1. 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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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에게 주체적인 삶이란 본질적으로 추구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되, 특히 궁녀에게 있어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왕의 눈길 한 번 받지 못하더라도 평생 왕의 여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궁녀들의 입장에서, 왕의 선택과 사랑은 무조건 환영할 수밖에 없는 축복이었을 거라고 (우리는) 당연히 믿어왔다. 설령 그 왕이 늙고 못생기고 성질까지 나쁜 최악의 인물이라 해도, 설마 왕의 선택을 거부하거나 달갑지 않게 여기는 궁녀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 성덕임(이세영)


임금에게 단 한 번의 은혜로운 선택만 받아도 단숨에 신분이 상승되어 고된 노역에서 해방될 수 있고, 그에 더해 지속적인 총애를 받거나 왕손이라도 낳게 되면 수많은 사람이 떠받들고 부러워하는 달콤한 권력을 움켜쥠은 물론, 여자로서 사랑받는 기쁨과 어머니로서 자식을 품을 수 있는 행복까지도 누릴 수 있는데, 아무려면 평생 홀로 궁궐 안에서 남의 시중이나 들며 노동이나 하다가 백발로 늙어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는가 말이다. 아마도 99%의 궁녀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소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은 궁녀의 존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이 작품 '옷소매 붉은 끝동'을 접하면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원작 소설을 집필한 강미강 작가의 공로라고 해야 할 것이지만, 독창적인 발상이라기보다는 실존 인물인 '의빈 성씨'의 인생에 심혈을 기울여 집중하고 몰입한 결과 얻어낸 날카로운 통찰력이었다고 여겨진다. 의빈 성씨는 궁녀 시절부터 정조 임금의 사랑을 받았으나 놀랍게도 후궁이 되라는 왕의 명을 수차례나 완곡히 거절했었다고 한다. 

 

못난 임금도 아니고 조선 최후의 명군이자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정조대왕은 짐작컨대 인격적으로나 남성적으로나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임금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결벽하다 할 만큼 여성 편력이 없는 왕이었다니, 그런 임금이 콕 집어 "너를 사랑한다. 내 여자가 되어 다오!" 라고 말한다면, 그 어떤 궁녀라도 기뻐하며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의빈 성씨는 거절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강압하고 싶지 않았던 정조는 10년이나 애태우며 기다린 끝에 겨우 그녀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의빈 성씨가 아직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정조가 얼마나 슬퍼하며 애통해했는지도 기록에 남아 있다. (조선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위대한 남성으로부터 그 정도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면, 언뜻 생각하기에 의빈 성씨의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만하고 행복했을 것 같다. 비록 아들인 문효세자가 어린 나이에 홍역으로 숨을 거두는 비극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변치 않은 남편(왕)의 사랑과 위로가 있었기에 슬픔 속에서도 절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정조가 의빈을 사랑했음은 확실한데 반해, 의빈이 정조를 사랑했는지 여부는 사실 알 수가 없다. 이 작품에서 누차 언급된 대로 "아무도 궁녀의 마음 따위는 알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녀에게 임금의 사랑이란 감히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임금을 사랑하는 것 또한 궁녀의 의무였으니, 사랑받는 궁녀(후궁 포함)는 당연히 임금을 사랑했을 거라고 누구나 짐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음'을 작가가 포착한 데서 이 작품은 시작된다. 

물론 의빈 성씨가 왜 정조의 승은을 몇 차례나 거절하며 왕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었는지, 그녀의 진정한 속마음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생각해 온 평범한 궁녀가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녀는 자유롭지 못한 사회 속에서, 가장 얽매인 신분을 지녔음에도 감히 주체적 인생을 꿈꾸었고, 할 수 있는 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인물로 보여진다. 다만 신분의 제약이 너무나 뚜렷했기에 이와 같은 여주인공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작업은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옷소매 붉은 끝동'의 성덕임(이세영)은 더없이 매력적이고 사랑스런 여주인공으로 찬란하게 탄생했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대성공이다. 원작의 강미강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이 쉽지 않은 작품을 드라마로 각색한 정해리 작가의 필력도 정말 대단하다고 나는 느꼈다. 또한 정지인 감독의 영상도 좋았고, 몰입감을 더해주는 OST도 좋았다. 특히 막판에 공개된 이선희의 '그대 손 놓아요'가 애절한 영상과 함께 흐를 때는 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 오랜만에 충족한 마음으로 시청한, 거의 흠잡을 곳 없는 드라마였다. 

이제 '옷소매 붉은 끝동'은 오늘 밤 마지막 2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부디 끝까지 힘을 잃지 말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 주기를, 서로에게 닿을 듯 닿지 못하며 애태우던 이산(이준호)과 성덕임의 사랑이 곱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역사의 기록으로 이미 우리는 그 사랑의 서글픈 결말을 알고 있지만, 설령 길게 지속되지는 못한다 해도,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질 만큼 충만한 사랑으로 그들이 행복하기를 나는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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