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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캐슬' 이수임(이태란)의 정의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SKY 캐슬' 이수임(이태란)의 정의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

빛무리~ 2018. 12. 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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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제목이자 배경은 '대한민국 최고 명문인 사립 주남대학교의 초대 이사장이 서울 근교의 숲속에 세운, 대학병원 의사들과 판검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들이 모여 사는 유럽풍의 4층 석조저택 단지'를 지칭하는 ''SKY 캐슬' 이다. 서울 근교라고 설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서울 강남의 신흥 부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대대로 부모에게서 큰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특출한 (학업) 능력으로 대한민국 상위 1%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꼭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고 싶어 몸부림치는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현재 그들이 누리는 삶의 특권은 1차적으로 최고의 학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자녀들의 학벌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유현미 작가의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은 2012년 '각시탈' 이후 6년만인데, 작가 특유의 신중하면서도 호쾌한 스토리 전개에 새삼 경탄하며 몰입하여 보고 있는 중이다. 등장 인물들은 대부분 자녀의 성적 향상에 과도한 집착을 기울이는 욕망의 화신들인데, 특히 주인공 한서진(염정아) 캐릭터에서 그 욕망의 광기는 정점을 이룬다. 

가난한 선지국집 딸로 태어나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가정 폭력까지 당하며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내던 곽미향(염정아)은, 대대로 의사 명문 집안의 아들인데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 타이틀에 서울 의대를 졸업한 강준상(정준호)을 유혹해 그의 아내 자리를 차지하면서 인생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이후 '한서진'으로 재탄생한 그녀는 현재 큰딸 강예서(김혜윤)를 서울 의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폭주하는 중이다. 

 

특히 그녀가 이 문제에 목숨 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어머니 윤여사(정애리)로부터 최소한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다. '한서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윤여사는 현재까지도 그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예서를 서울 의대에 진학시키는 데 성공하면 비로소 인정해 주겠노라며 선심쓰듯 약속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학창시절을 알고 있는 반갑지 않은 옛 친구 이수임(이태란)과 그 가족이 SKY 캐슬의 새 입주자로 들어오면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던 한서진의 계획은 삽시간에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고아 출신 의사 남편 황치영(최원영)과 결혼하여 전처의 아들인 황우주(찬희)까지 양육하고 있는 이수임은 어쩌면 욕망으로 가득찬 SKY 캐슬에 어울리지 않는 정의로운(?) 인물이었던 것이다. 

동화작가인 이수임은 부모들의 집착 속에 상처입고 망가져가는 아이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세상을 바꿔 보겠노라며, SKY 캐슬 내부에서 일어난 비극을 소재삼아 소설을 쓰려는 중이다. 아들 박영재(송건희)를 서울 의대에 합격시키면서 SKY 캐슬 귀부인들의 워너비맘으로 등극했던 이명주(김정난)가 자살을 하게 된 배경에는 과도한 입시 경쟁을 둘러싼 가족 내부의 비극이 있었다. 

 

심약하고 예민한 성품의 박영재는 무조건 공부만을 독촉하는 부모의 등쌀에 못이겨 신경쇠약을 앓고 있었는데, 감옥같은 집안에서 그의 숨통을 틔어주는 유일한 존재는 입주도우미인 연상의 애인 가을이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엄마 이명주는 가을이를 두들겨 패서 내쫓아 버리고, 부모를 원망하며 절망에 빠져 있던 영재에게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은 섬뜩한 제안을 한다. 

 

부모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일단 부모가 원하는 대로 서울 의대에 합격한 후, 부모와의 인연을 단칼에 끊고 진학마저 포기함으로써 실망과 치욕을 안겨주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는 조언이었다. 달리 도망칠 구멍이 없던 영재는 그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였고, 미친듯이 공부에 올인하여 서울 의대에 합격한 후 가출을 해버린다. 부모를 향한 복수의 계획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태블릿을 보란듯이 남겨둔 채였다. 

 

아들 영재로부터 인연 끊겠다는 말을 들은 이명주는 결국 자실을 하고, 온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박영재는 뒤늦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종적을 감춰 버렸고, 그의 아버지 박수창(유성주)도 주남대병원 신경외과 과장 자리를 내놓은 채 멀리 떠나갔다. 학벌을 향한 광기와 집착이 끝내 죽음을 불러온 경우였다. 

 

하지만 이수임의 소설 집필 소식은 SKY 캐슬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밝히지는 않더라도 그 소설이 SKY 캐슬을 배경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은 자연스레 세상에 알려질텐데, 그렇게 되면 동네 집값도 떨어지고 모든 입주민에게 피해가 갈 거라는 주장이었다. 

 

이웃들의 압박 속에 사면초가에 처한 이수임은 반발하다가 얼결에 한서진(곽미향)의 과거를 폭로하고, 숨겨왔던 정체가 들통난 한서진은 은연중에 멸시와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서글프게도 한서진을 가장 날카롭게 공격하는 인물은 그녀의 목숨줄인 큰딸 강예서와 충직한 심복이었던 진진희(오나라)였다. 

 

그런데 온통 비뚤어진 욕망과 거짓으로 점철된 한서진의 캐릭터가 시청자로부터 질타와 동시에 동정표를 얻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의의 사도처럼 표현된 이수임의 캐릭터는 더 큰 비난과 비웃음을 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수임에게 동조하는 시선도 없지 않으나, 정의를 가장한 위선이라는 시각이 압도적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한껏 정의로운 척 세상을 바꿔 보겠다지만, 그녀의 소설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그녀 자신이나 가족이 아니라 명백한 타인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수임에게도 20년 전 교생 시절에 만났던 학생 '연두'의 기억이 아픔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연두는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 연두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쓰는 소설이라면 그렇게까지 이웃들의 반대에 부딪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수임은 최근 SKY 캐슬 내부에서 발생한 비극을 소재로 타인들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그 소설이 발표되면 SKY 캐슬 입주민들과 특히 살아남은 박영재와 박수창이 입게 될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무리 정의를 목적으로 하는 일이라도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정작 자기는 한 방울의 희생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타인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무슨 정의일까? 정의를 위해 앞장선다면 당연히 솔선수범하여 자기가 먼저 희생한 후에야 비로소 타인들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박수창을 만나본 후 그가 거절하는 이유를 직접 듣고서야 수긍한 이수임은 일단 집필을 멈춘 것 같지만, 애초 그녀의 계획이 부당한 것이었음은 명백하다. 이수임은 매우 소탈하고 인간적이며 정의롭고 오지랖이 넓은 캐릭터인데, 그 소설 집필에 관한 내용만 본다면 오히려 이기적인 위선자로 보일 지경이니 약간은 착오적인 인물 표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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