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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한태진의 실수와 박도경의 죄책감, 당신은 누구 때문에 우는가? 본문

드라마를 보다

'또 오해영' 한태진의 실수와 박도경의 죄책감, 당신은 누구 때문에 우는가?

빛무리~ 2016. 6. 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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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예쁜 오해영(전혜빈)을 사랑하다가 이제는 그냥 오해영(서현진)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남자 박도경(에릭)에게 그의 친구 이진상(김지석)은 물었다. "너 혹시 오해영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흥분하는 거냐? 어떻게 '또 오해영'이야?" 참 얄궂은 인연으로 만나게 된 박도경과 그냥 오해영의 사랑은 그렇게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었다. 얼마나 힘든 사랑이 될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박도경은 그래서 끌리는 마음을 애써 억제하며 시작하지 않으려 했지만, 한없이 순수한 열정으로 다가서는 오해영의 사랑스러움을 끝내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랑의 달콤한 나날은 시작되었지만 야속하게도 너무나 짧았다. 

언젠가는 터질 줄 알면서도 박도경이 차마 터뜨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폭탄을 가차없이 터뜨린 사람은 한태진(이재윤)이었다. "날 망하게 한 놈이 바로 저 놈이야. 날 망하게 해서 구치소에 보내고, 우리 결혼 못하게 한 놈이 바로 저 놈이라고!" 오해영을 사랑해서, 오해영과 결혼하려던 한태진을 몰락시킨 사람은 분명 박도경이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오해영은 자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냥 오해영은 알고 있었다. 결국은 또 예쁜 오해영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해영은 절규했다. 똑같은 이름 때문에 억울한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니었지만 이번처럼 뼈아프기는 처음이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박도경이, 얄미운 그 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오해영'에서는 로맨틱코미디 특유의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설정도 많이 발견되지만, 등장인물의 캐릭터 면면을 살펴보면 의외로 굉장히 현실적이다. 표현이 좀 과하게 되긴 했어도 본질적으로는 어딘가 주변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사람들이 '또 오해영' 안에 모여 있다. 그 중에도 특히 박도경과 한태진의 캐릭터는 현실 속에 무수히 존재하는 '여자 마음을 모르는 남자'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미안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야. 사랑한다고, 죽도록 사랑한다고 했어야지!" 라고 외쳤던 이진상만이 여자 마음을 좀 아는 남자다. 하지만 그조차도 정작 제 눈앞에 다가온 사랑 박수경(예지원)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니 참 답답한 일이다. 


오해영이 왜 슬퍼하는지, 왜 분노하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박도경은 바보처럼 "미안해" 소리만 연거푸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뻣뻣하게 돌아서고 말았다. 한태진을 망하게 하고 자기 결혼을 망쳤다는 사실보다도 그가 예쁜 오해영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사실이 가슴아팠던 오해영의 분노는 "사랑해"라는 한 마디면 거의 다 풀렸을텐데... "난 이제 그 애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아. 내가 지금 사랑하는 건 너야!" 라고 진심을 담아 외쳤더라면 그녀의 눈물을 멈출 수 있었을텐데, 바보.. 바보... 하지만 박도경보다 더 지독한 바보가 있었으니 바로 오해영의 옛 약혼자인 한태진이다. 

'또 오해영' 관련 기사를 읽다 보면 "한태진이 제일 불쌍하다"는 댓글이 적잖이 눈에 띈다.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사업도 망하고 여자도 뺏겼으니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한태진이라는 것이다. 그냥 오해영은 결혼식 전날 버림받고 아파했지만, 얼마 못 가서 박도경과 다시 사랑을 시작했으니 모두 잃은 한태진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런데, 맞는 말이긴 한데, 나는 전혀 그 말에 공감이 되질 않는다. 한태진이 억울한 건 사실이지만, 오해영에게 이별을 고할 때 사용한 방법이 너무 나빴다. "난 너와 결혼할 수 없어. 왜냐하면 네가 싫어졌거든. 난 이제 네가 밥먹는 것도 꼴보기 싫어!" 


그녀를 위해서였다고? 사업이 망해서 무일푼이 됐고 구치소에까지 갇히게 됐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그녀가 기다린다고 할 테니까 미안해서? 아무래도 옥살이를 오래 하게 될 것 같은데, 자기만 기다리다 그녀가 혼자 늙어갈까봐 걱정돼서? 사랑하며 헤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워하며 헤어지는 게 덜 아플 것 같아서? 그녀의 아픔을 덜어주려고, 차라리 자기를 미워하게 하려고 일부러? ... 글쎄, 한태진이 가장 불쌍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남자의 그런 마음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이해가 안 된다. 그냥 미친놈 같다. 오히려 솔직히 말하는 게 훨씬 낫지, 그런 못된 거짓말은 자칫하면 여자의 인생 전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결혼식 전날 그토록 모욕적인 말로 이별을 통보받은 여자가 어떻게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막 구겨 휴지통에 던진 종이처럼, 길거리에서 질겅질겅 씹다가 시궁창에 뱉어버린 껌처럼, 자기 자신이 그런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곤두박질친 자존감은 어쩌면 평생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는 그 누군가의 사랑도 믿지 못한 채, 평생 자기 혐오와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옥바라지를 하며 기다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은 채 애달프게 이별한다 해도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한태진이 선택한 이별의 방식은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태진이 별로 불쌍하지 않다. 그 나름대로는 약혼녀 오해영을 생각해서 그런 거였다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 끔찍한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열 대 맞을 테니까, 아니 백 대 맞을 테니까, 나도 너 꼭 한 대만 때리자... 아무리 망했어도 여자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밥먹는 게 꼴보기 싫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나는 박도경의 저 대사에 깊이 공감했다. 사실 한태진을 망하게 한 박도경의 행위는 무척이나 비열하고 파렴치한 것이었다. 예쁜 오해영과 그냥 오해영을 혼동했든 안 했든, 설령 자기를 버린 약혼녀와 결혼할 남자가 맞다 해도 그렇게 몰락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분명 한태진은 피해자이고 박도경이 가해자인데, 오히려 박도경이 더 불쌍하게 느껴지고 몰입이 잘 되는 이유는 뭘까? 박도경은 어린 시절 아빠의 죽음을 홀로 목격한 후 지워낼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고, 끝없는 사치와 남성편력을 일삼는 엄마에게 평생 시달리는 동안 삶의 모든 활력과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가 집착하는 것은 오직 '소리' 뿐, 아버지의 유업(遺業)을 계승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음향감독이라는 직업에만 올인하고 있을 뿐, 희로애락의 감정까지 모두 퇴색하여 '감정불구'가 되어버릴 만큼 박도경은 고통스런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예쁜 오해영을 만나 사랑하며 좀 회복이 되나 싶었지만, 또 한 번 크게 상처받으며 처참히 망가지고 말았다. 


추측컨대 현재 박도경은 교통사고를 당한 후 혼수상태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중이 아닐까 싶다. 순간 순간 미래를 보는 박도경의 초능력은 그런 설정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한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의 죽음을 너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젊은 남자의 모습은 매우 심상치 않다. "그 여자랑은 이렇게 끝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 여자를 위해서라도... 어차피 난 죽으니까!" 박도경의 지나 온 삶은 죽음보다 나을 것 없이 힘겨웠고, 그냥 오해영을 향한 사랑과 죄책감이 더해지며 고통의 무게는 더욱 커졌다. 그녀에게 상처만 주는 자신을 이젠 버려야 겠다고, 이 버거운 삶의 굴레를 그만 놓아야겠다고 어쩌면 도경은 결심한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박도경의 내면을 지배하는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순간부터 (물론 어린 도경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아왔던 것이다. 엄마의 끈질긴 괴롭힘을 묵묵히 참아 넘긴 이유도 어쩌면 죄책감 때문이었다. 스스로 죄인이라 여기는 마음이 엄마의 부당한 요구에 항거할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오해영을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하는 그녀를 아프게 하고 그녀의 인생을 망쳤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졌으니... 아, 나는 도경이가 너무 불쌍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겠지만, 나는 에릭의 눈빛 연기에 매번 설득당하는 것 같다. 텅 빈 듯 공허하다가, 까불까불하는 오해영을 볼 때 잠시 반짝 빛나다가, 곧바로 어둡게 가라앉으며 죄책감에 짓눌리는 박도경의 감정을 에릭은 놀랍도록 섬세한 눈빛 연기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 12회 예고편에서 오해영은 전화로 박도경에게 "네가 아주 아주 불행했으면 좋겠어!" 라고 울먹이며 말하는데, 수화기를 손에 쥔 채 그 말을 듣는 박도경의 눈빛을 보며 나는 가슴이 저려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 나는 한태진 때문이 아니라 박도경 때문에 울고 있다. 이젠 그만 불행했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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