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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에릭, 이제 눈빛으로 연기하는 배우 본문

드라마를 보다

'또 오해영' 에릭, 이제 눈빛으로 연기하는 배우

빛무리~ 2016. 5. 1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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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또 오해영'은 방송 5회만에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초대박이라 할 수 있는 5%의 시청률을 넘기며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그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은 여주인공 오해영 역을 맡은 서현진이다. 이 드라마에는 동명이인으로서 두 명의 오해영이 등장하는데 서현진의 (흙)오해영은 명랑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평범한 여성이고, 전혜빈이 맡은 (금)오해영은 눈부신 미모와 출중한 능력을 겸비해 어딜 가나 주목받는 여성이다. 얄궂게도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같은 학교를 다니며 늘상 비교되는 운명에 처하는데, 결국 (흙)오해영은 (금)오해영의 그림자처럼 취급되며 억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특히 '예쁜 오해영'과 구별하기 위해 '그냥 오해영'으로 불려야 했던 기억은 쓰라린 상처로 남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두 여자의 악연은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는 결혼까지도 (흙)오해영은 암암리에 (금)오해영의 영향을 받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32세가 된 (흙)오해영은 훤칠하고 잘나가는 젊은 사업가 한태진(이재윤)과 결혼을 약속하며 한창 달콤한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황당하게도 결혼식 전날 일방적인 파혼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한태진은 "그냥 네가 싫어졌어. 밥 먹는 모습조차도 보기 싫어!" 하면서 이별을 선언했는데, 사실은 누군가의 음모로 인해 사업이 망하고 설상가상 사기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면서 차마 솔직한 말을 할 수 없어 그랬던 것이다. 


한태진의 사업을 망하게 하고 구속되게 만든 사람은 박도경(에릭)이었다. 영화 및 드라마의 음향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박도경은 평소 한태진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는데, 순전히 오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박도경은 (금)오해영과 결혼하려다가 버림받은 남자였다. 결혼식 당일에 신부가 나타나지 않아서 온갖 망신과 더불어 깊은 상처를 끌어안게 된 박도경의 마음 속에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소식을 끊은 (금)오해영을 향한 분노가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젊은 사업가 한태진이 '오해영'과 결혼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어 더욱 분노했고, 결국 박도경은 (금)오해영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한태진의 사업을 망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도경이 던진 돌에 맞아 결혼이 깨지고 상처입은 사람은 예전에 그를 버렸던 약혼녀가 아니라 전혀 알지도 못하는 다른 여자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박도경은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그 무렵 도경에게는 이상한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벌어질 일들이 눈앞에 한 발 먼저 영상처럼 떠오르는 것이다. 특히 그 영상 속에 자주 등장하는 낯선 여인은 그의 마음 속에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우연처럼 거리에서 스치듯 만나고 운명의 장난처럼 셋집 옆방으로 이사를 온 그녀는 바로 (흙)오해영이었다. 깊은 죄책감을 갖고 있던 도경은 최선을 다해 그녀를 배려하고 위해 준다. 


무척이나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으면서도 대책없이 밝고 긍정적인 (흙)오해영의 캐릭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서현진은 그런 오해영의 밝은 성격 뒤에 감춰져 있는 여린 마음까지 섬세한 터치로 표현하며 한창 물 오른 연기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나에게 (흙)오해영은 크게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전혀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매우 조심스럽고 소심하며 답답할 만큼 신중한 나의 성격으로는, 매사에 거침없고 목소리가 크며 주책 성향이 다분한 (흙)오해영을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해영의 깁스한 팔을 본 이웃집 아줌마가 왜 그렇게 됐냐고 묻는데 다짜고짜 "술 먹고 자빠졌어요" 하면서 깔깔 웃어대다니!


 

더욱이 자존심을 세운답시고 한태진에게 파혼당한 후 자기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는 거짓말까지 했던 터라, (흙)오해영의 부모님은 날마다 속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훨씬 당당했을텐데... 게다가 맞선남이 오만을 떨면서 무례하게 굴고 자기에게 관심을 안 보인다는 이유로 급 흥분해서 "그러지 말고 우리 딱 열 번만 만나봐요. 열 번 안에 내가 반드시 그 쪽 자빠뜨린다!" 라고 외치는 부분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언어 선택의 천박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런 식으로 자존심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황당했다. 재수없게 똥 밟은 셈 치고 툭툭 털며 일어서면 그만일 것을... 오해영이 맞선남에게 했던 말과 행동은 동네방네 흉한 소문으로 퍼졌고, 뻗치는 망신살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게 된 부모님은 강제로 해영을 독립시키기에 이른다. 


급히 셋방을 구하다가 이사 온 곳이 하필이면 박도경과 판자문 하나를 사이에 둔 옆방이었으니, 두 사람의 인연은 벌써 오래 전부터 단단한 끈으로 묶여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금)오해영이 결혼식날 훌쩍 떠나버린 것도, 박도경이 오해로 인해 한태진의 사업을 망하게 한 것도 결국은 (흙)오해영과 박도경의 만남을 위해 준비된 일들이었던 셈이다. 도경의 눈앞에 자꾸만 (흙)해영 모습이 나타나는 것 또한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을 의미한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강력한 힘에 이끌려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박도경 쪽에서는 죄책감과 연민이 차츰 사랑으로 변해가는 중이고, 파혼당한 후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처럼 느끼던 (흙)해영은 도경에게서 든든함과 자상함을 느끼며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서현진의 연기력도 훌륭하지만, 나는 특히 이번 드라마에서 남주인공 에릭의 연기 변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돌 출신으로서 매혹적인 외모와 분위기를 자랑하지만 상대적으로 연기력은 뛰어나지 못하다고 생각한 배우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일단 눈빛부터가 다르다. 애틋한 눈빛, 서글픈 눈빛, 곰곰이 생각에 잠긴 눈빛,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눈빛 등... 혼자 있을 때나 누군가를 상대할 때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눈빛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금)오해영에게는 애증과 분노를, (흙)오해영에게는 연민과 아픔을, 음향 작업을 할 때는 열정과 예민함을, 에릭의 눈빛은 매 순간마다 여실히 드러낸다. 훌륭한 연기는 '몰입'에서 비롯되는 법인데, 이제 그는 제대로 '몰입'할 줄 아는 배우가 된 것 같다.  


자꾸만 환상 속에서 (흙)오해영의 모습이 보이는 것 때문에 도경은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는데, 의사가 묻는다. "옆집 여자(흙해영)를 생각하면 가장 강하게 드는 이미지가 뭐예요? 제일 강렬한 기억..." 그러자 박도경의 눈에 금세 잔잔한 아픔이 차오른다. "짠해서 미치겠어요... 내가 던진 돌에 맞아서 날개가 부러졌는데, 바보처럼 내 품으로 날아들어온 새 같아요... 빨리 나아서 날아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든 빨리 낫게 해서 날아가게 해주고 싶은데... 그러다가 행여나 좋아질까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차마 자기 자신조차도 인정하기 힘들었던 감정을 의사에게 털어놓으며, 끝내 도경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오해로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던 탓에, (흙)해영을 향한 도경의 감정은 죄책감에 가로막혀 있다. 그 죄책감은 사랑을 불붙이는 시작점이기도 했지만,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만드는 큰 장벽이기도 하다. (금)오해영이 다시 나타나긴 했지만, 5회까지의 전개를 볼 때 박도경의 마음이 다시 그 쪽으로 향하게 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미 그의 마음 속에는 (흙)오해영의 존재가 더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나중에 그녀가 알게 되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는 괴롭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마냥 해맑기만 한데, 이 남자는 홀로 고뇌에 빠져 있다. 


"짠해서 미치겠어요.." 라고 말하며 그 눈에 조용히 차오르던 눈물을 보는 순간, 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에릭은 어느 순간, 소리 없이, 배우로서의 한 경계를 넘어선 듯한 느낌이다. 정유미와 열연했던 '연애의 발견'에서도 무척이나 성숙해졌음을 느꼈는데, 차후 연기의 스펙트럼을 좀 더 넓힐 수만 있다면 대단한 명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12년 전 드라마 '불새'에서 이은주를 향해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내 마음이 불타고 있잖아요!" 라는 대사를 치던 모습이 떠오른다. 대사도 그렇지만 어설픈 연기 때문에 정말 오글거려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그때도 나름 귀엽고 매력은 있었지만 ㅎㅎ) 어느 덧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니 괜시리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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