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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여행, 겨울의 낭만, 만원의 행복 본문

여행을 가다

춘천 여행, 겨울의 낭만, 만원의 행복

빛무리~ 2016. 1. 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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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3일 수요일, 춘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사에서 '만원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하는 패키지인데, 집결 장소인 서울 시청역까지의 차비를 제외하면 일체의 추가 비용 없이 단돈 만 원에 편안히 여행을 즐긴 셈이다. 중식은 제공되지 않았지만 1인당 온누리상품권 5000원권 한 장씩을 선물로 나눠주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점심까지도 해결할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여행 상품들은 지자체의 후원을 받아서 저렴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하는데, 일단 교통편이 제공되고 따로이 여행 계획을 세울 필요조차 없으니 여러모로 좋다.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은 장소가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무척 아쉬울 수도 있고, 기껏 방문한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는 허무할 수도 있지만, 저렴하다는 큰 장점을 생각하면 그쯤은 감수해야 할 것 같다. 



맨 처음 방문한 장소는 '춘천 막국수체험박물관'이었다. 막국수의 유래와 메밀의 효능 등에 관한 자료를 보고 설명을 들은 후, 여행자들이 직접 메밀을 반죽하여 국수 기계에 넣고 뽑아져 나오는 면발을 구경할 수 있다. 그 후에는 물론 시식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양이 적기 때문에 그걸로 식사를 대신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반죽이 눈앞에서 즉시 국수가 되는 것을 보니 아주 조금은 신기했고, 새콤달콤한 메밀 막국수의 맛도 괜찮았다. 



두번째 방문지는 '강원도립화목원'이었다. 각 지역마다 꼭 하나씩은 있는 수목원이나 생태체험관이 역시 춘천에도 있었던 것이다.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나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아서, 근처에 산다면 젊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오기 좋은 곳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포토존으로 괜찮아 보이는 몇 군데의 장소가 있기에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세번째 방문지는 '춘천 중앙시장 닭갈비 골목'(?)이었는데, 어찌된 셈인지 그 곳에서 닭갈비집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점심식사 맛있게 하시고 2시 30분까지 이 곳으로 모여주세요!" 여행객들을 중앙시장 앞에 내려놓은 후 가이드를 태운 버스는 어디론가 휭하니 가버렸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 일행끼리 흩어졌고, 남편과 나는 일단 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규모가 아담하고 상품도 다양하지 않아서 별로 구경할 것은 없었다. 그나저나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를 먹어봐야겠는데 (막국수는 체험관에서 맛보았고), 아무리 찾아도 닭갈비집이 없는 거였다. 명색이 '닭갈비 골목'이라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별 수 없이 시장 내 떡집에서 인절미와 술떡을 좀 사며 주인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혹시 이 근처에 닭갈비집이 어디 있나요?" 그랬더니 할머니는 "닭갈비집은 저쪽으로 좀 멀리 가야 있는데요" 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뜻밖의 대답을 들은 우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행 일정에 포함된 곳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개별적으로 중앙시장 근처 (수백미터 거리쯤) 에 꼭 둘러보고 싶은 곳 (죽림동 성당) 이 있었다. 그런데 닭갈비집을 찾아 먼 곳까지 헤맨다면 다시 집결 장소로 모이기까지 시간이 빠듯해서, 편안하게 식사를 즐긴 후 여유롭게 죽림동 성당을 구경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분명 그 곳을 '닭갈비 골목'이라면서 내려줬는데, 당최 어찌된 영문일까?) 


"춘천에 왔다고 반드시 닭갈비를 먹어야 할 필요는 없어. 듣자 하니 서울에서 먹는 닭갈비와 별다를 것도 없다던데?" 하면서 우리는 쿨하게 닭갈비를 포기하고 시장 내부의 순대국집에 들어갔다.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남편은 소머리국밥을, 나는 순대국밥을 시켰는데 고기와 내장이 듬뿍 들어가서 매우 즐겁고 흐뭇했다. 나는 맛집 블로거도 아니고 남들 눈에 홍보 활동(?)으로 보일만한 일체의 내용은 다루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그냥 'K식당'이라고 쓸까 하다가. 이곳에서 먹은 순대국이 하도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특별히 '길성식당'이라는 이름을 명시하기로 했다. 춘천 중앙시장 근처에서 마침 배가 고프시다면 '길성식당'의 국밥을 맛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뜨끈한 국밥으로 추위와 허기를 든든히 달랜 후, 우리는 힘을 내어 죽림동 성당으로 걸어갔다. 나는 박해시절 순교자의 후예로서 모태신앙인이며, 남편은 3년 전 나와 결혼하기 직전에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천주교의 성녀들은 주로 동정녀가 많지만, 나의 세례명인 '안나' 성녀에게는 남편이 있었다. 게다가 그 남편도 성인품에 오르신 분으로서 '요아킴' 성인이셨다. 그래서 내 신랑이 영세를 받을 때는 따로 세례명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안나'의 남편이니까 당연히 '요아킴'이었다. 우리는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 유명한 성당이 근처에 있다면 가능한 한 그곳부터 최우선적으로 방문하는 편이다. 


춘천 주교좌 죽림동 성당은 등록문화재 제54호로서 1953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의 목조 계단이 고풍스럽고도 운치있는 모습이었다. 서울 및 인천에서는 보기 힘든 널찍한 마당이 아름다웠고, 푸른 하늘로 높게 솟은 성당의 자태를 보니 언제나 그렇듯 가슴이 설렜다. 성당 뒤편으로는 정말 독특하게도 순교자 성직자 묘역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곳에 모셔진 분들은 6.25 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살해당한 신부님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의 비극을 아주 간략하게 서술해 놓은 안내문을 읽는데도 가슴이 울컥했다. 한동안 잠잠히 가라앉아 있던 경건한 열정이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여행의 다음 일정에 따라 방문한 곳은 '로맨틱 춘천 페스티벌'이었는데, 어두운 밤중이었다면 불꽃 축제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겠지만 대낮이라서 볼 게 거의 없었다. 아이스링크에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이 있었고, 음악 소리가 시끄러웠고, 매우 조잡한 수준의 놀이기구 몇 개가 있었고, 커다란 천막으로 된 휴게실에서는 핫도그나 어묵 등의 음식을 팔고 있었다. 나름대로는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같은 놀이공원 흉내를 좀 내보려고 한 것 같은데, 규모도 너무 작고 내용이 부실해서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옆쪽으로는 반쯤 얼어붙은 의암호가 펼쳐져 있었는데, 그 호숫가를 따라서 마련해 놓은 산책길은 꽤 운치있고 괜찮았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춘천 김유정문학촌'이었다. '동백꽃', '봄봄' 등으로 유명한 작가 김유정의 고향이 춘천인데, 김유정문학촌은 그의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어 김유정의 생애와 작품을 기념하는 곳이라고 한다. 썩 실감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옛스러운 분위기를 살리려 한 듯 몇 채의 초가집이 지어져 있고, 마당에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약간의 해학을 느끼게 해준다. 한창 문학소녀의 기질이 남아있던 20대 초반에 왔다면 좀 더 깊은 감흥이 있었을 듯한데 (병약한 몸으로 불우한 시절을 살다가 29세의 나이로 쓸쓸히 떠나간 젊은 천재 소설가의 인생을 상상하며...) 이젠 별로 그렇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꽤 굵은 진눈깨비가 날렸고, 시청역에 내렸을 때는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해야 했다. 이대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한 후 광역버스를 타고 인천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막걸리 한 병을 사 갖고 와서 남편과 한 잔씩 나눠 마시며 (춘천 중앙시장에서 구입한) 인절미와 술떡으로 저녁을 먹으니 아주 달콤하고도 나른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차갑고 청명한 겨울의 낭만이 가득한 춘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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