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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십시오. 이 더딘 발걸음을

빛무리~ 2015. 8. 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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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많이 지어
부끄러움뿐인 제가
땅에 엎디어 울 수도 없는
돌이 되어 서 있음을
용서하십시오

부드러운 올리브나무 잎새로
가늘게 들려오는 당신의 신음소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고 피 흘리신
당신의 그 처절한 괴로움으로부터
늘 멀리 달아나고자 했습니다

당신을 섬기면서도
당신의 길을 따르기는
쉽지 않았던 세월을 돌아보며
오늘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으로나
당신 곁에 머무르려는 저를
용서하십시오 

                                      이해인 - 기도 일기 



이해인 수녀님은 이 시를 1977년 여름, 겟세마니에서 쓰셨다고 한다. 겟세마니는 예루살렘의 동쪽 올리브 산기슭에 있는 동산이다.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마친 뒤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제자인 유다의 배신으로 그가 데려온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에게 붙잡혀 끌려간 후 십자가형 선고를 받으셨다. 

1977년이라면 이해인 수녀님이 33세 되시던 해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의 나이가 33세였다. 예수님과 같은 나이에, 예수님의 처절한 고난이 시작된 그 장소를 방문했던 수녀님의 마음이 위에 소개한 시 '기도 일기'에 생생히 표현되어 있다. 전체가 모두 그렇지만 특히 첫 연의 "부끄러움뿐인 제가 땅에 엎디어 울 수도 없는 돌이 되어 서 있음을 용서하십시오" 라는 구절이 가슴을 세차게 두드린다. 

문득 우리 집 거실 벽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니, 성지 가지의 푸른 빛이 어느 새 갈색으로 바래어 있다. 여전히 머뭇거리며 다가서지 못하는 나를, 예수님은 그렇게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리신다. 아직도 차가운 돌덩이처럼 무겁게 제 자리에 서 있는 나를,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재촉도 없이 묵묵히 기다리신다. 부디 용서하십시오. 이 더딘 발걸음을... 하지만 오늘도 당신을 향해 나아가고 있나이다. 중얼거리며 다시 올려다 보니, 마치 알고 있노라는 응답인 듯 가슴 속에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간다. 8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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