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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사진전, 기자와 블로거의 삶을 돌아보다 본문

여행을 가다

퓰리처상 사진전, 기자와 블로거의 삶을 돌아보다

빛무리~ 2014. 7. 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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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땡볕이 내리쬐던 7월 초순 어느 날,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퓰리처상 사진전'을 관람하고 왔다. 230여 점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사진들과 더불어 한켠에는 한국전쟁 특별전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대략 90% 가량의 사진들은 전쟁과 테러, 자연재해나 굶주림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 촬영 기술이 좋았던 것인지 포토샵 처리가 절묘했던 것인지 마치 필름 영화의 장면 장면을 캡처해 놓은 듯 느껴졌다. 어쩌면 사진 속에 담긴 모습들이 너무 처참해서 현실이 아닌 영화라 생각하고 싶은 무의식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고 부인해서도 안 될, 준엄한 현실의 증거 자료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사진 속 인물들보다 그 사진을 찍은 기자들의 감정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실제로 전쟁이나 테러 상황을 취재 촬영하다가 목숨을 잃은 기자들도 적지 않았고, 전시된 사진들 옆에는 간략하게나마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는데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기자들의 소회(所懷)는 압축된 문장 속에서도 더없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고귀한 희생 정신이었으며 철두철미한 직업 의식이었다. 기자들도 사람인데 어찌 총칼과 피바람 앞에 두려움이 없었으랴! 하지만 그들의 사명감은 목숨의 위협조차 불사할 만큼 강하고 절실했다.  

 

한 장의 사진을 남김으로써 그들은 세상에 알려져야 할 진실을 전할 수 있었고, 용기의 필요성을 외칠 수 있었고, 참혹한 현실 속에 피어나는 사랑과 희망의 씨앗을 전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삶의 보람과 희열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정신을 잘못 이해한 대중의 혹독한 비판에 휩싸여 모진 고통을 받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Wating game for Sudanese child, 1994)을 촬영해 세상에 발표한 후, 3개월만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사진작가 케빈 카터의 예를 들 수 있겠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 '독수리와 소녀' 등 다른 명칭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온 몸의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작은 소녀가 웅크린 뒤쪽에 매서운 독수리 한 마리가 앉아 소녀를 노려보는 듯한 사진이다.

 

 

수단 남부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1994년 <뉴욕 타임스>에 실려 발표된 후 아프리카의 고통을 상징하는 세계적 아이콘이 되었고, 케빈 카터는 그 해의 퓰리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카터에게 돌아온 것은 기쁨이나 명예보다 호된 질책과 고통이었다. 이 사진을 본 많은 사람들은 "위험에 처한 소녀를 구하지 않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다"는 이유로 케빈 카터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돕기보다 사진 찍기에 더 집중한 사진가는 그 현장에 있던 또 한 마리의 독수리에 불과하다"는 신랄한 비판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수단에서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기자들과 원주민의 접촉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으며, 카터는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즉시 독수리를 쫓고 소녀를 구해냈다.

 

아프리카의 참혹한 현실을 사진에 담기 위해 그 곳까지 날아간 사진작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사진 촬영을 포기하고 아이부터 구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한다면 사진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지는 셈이다. 사진을 찍는데는 불과 몇 초의 시간이 걸릴 뿐이며, 그 사이 독수리가 소녀를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면 늦지 않게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다행히 그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고, 카터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아프리카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는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게다가 이 사진을 통해 거두어진 성금과 수익금이 수단에 전해지자 카터의 주변 사람들은 "좋은 일을 했다"면서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러나 '비정한 카메라맨'을 질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가열되었고, 카터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었다.

 

 

곧 "도와주지 못해서, 안아주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했다"는 말만 되뇌이며 자책과 우울에 시달리던 케빈 카터는 결국 3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의 일부 내용은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우선 정말로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인생의 고통이 기쁨을 뛰어넘어, 더 이상 기쁨이 없는 지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생생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살인, 시체, 분노, 고통, 굶주림, 상처투성이 아이들, 히히덕거리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정신나간 무리들... 그와 같은 지독한 기억들이 나를 괴롭힌다..."

 

섬세하고 예민한 성품의 카터는 참혹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을 때마다 가슴속에 새겨진 잔영을 떨쳐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절친한 동료였던 켄 위스트부르크가 자신의 눈앞에서 촬영 중 총격을 받고 사망한 후로는 우울증이 한층 심해졌다. 자신의 작품이 유명해지고 명성이 높아질수록 케빈 카터의 심적 고통은 더해만 갔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받게 된 퓰리처상은 오히려 치명적 독이었다. 게다가 소녀를 구하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는 이유로 대중의 호된 비난까지 쏟아졌으니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격이라, 케빈 카터는 그렇게 33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기자와 사진작가, 블로거는 제각각 맡은 영역이 다르지만, 글이나 사진을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세상 그 어떤 일인들 애로사항이 없을까마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란 생각보다 참 쉽지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기에, 기자나 사진가가 아무리 좋은 뜻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는 전혀 다른 식으로 전달될 수가 있는 까닭이다. 대중은 한 편의 기사, 한 장의 사진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험과 고통이 따랐을까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주 쉽게 비난하고 물어뜯는다.

 

얼마 전, 배우 김민준이 허락없이 자신을 촬영하던 기자들을 향해 가운뎃 손가락을 올려 욕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해당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은 거의 대부분 김민준을 옹호하며 기자들을 함께 욕했다. 그와 같은 반응에 내가 놀란 이유는 기자들을 향한 대중의 불신과 혐오가 이 정도까지 극대화된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절대로 기자들의 무분별한 행동을 옹호해 줄 생각은 없다. 분명 기자들이 먼저 잘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김민준의 대응 역시 비판받아 마땅했다.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욕으로 대응한 것이 어찌 잘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대중은 기자들을 얼마나 혐오했던지, 욕한 사람을 잘했다고 칭찬하기에 이르렀다. 분명히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속칭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불리는 기자들의 눈살 찌푸려지는 행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어느 직업엔들 쓰레기가 없겠는가?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느 직업엔들 열정과 성실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없겠는가? 기자나 사진작가나 블로거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중에는 쓰레기도 있겠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사진을 찍어 세상에 좋은 메시지를 전하려는 사람들도 분명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술가들도 항상 명작만 지어낼 수는 없듯이 기자들도 항상 좋은 기사만을 써낼 수는 없다. 줄곧 알차고 좋은 기사를 쓰던 기자도 어느 날은 좀 부실하거나,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기사를 써낼 때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럴 때 대중은 가차없이 말한다. "기레기야, 앞으로 넌 글쓰지 마라!"

 

케빈 카터가 찍은 '수단의 굶주린 소녀' 역시 많은 사람에게 거부감을 준 작품이었다. 그 사진에 담겨있는 작가의 정신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왜곡의 프리즘을 거쳐 받아들인 사람들 눈에는 또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비정한 사진가가 철저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찍어낸 사진에 불과했다.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그렇게 믿은 사람들은 카터를 쓰레기라 비난했고, 그들이 원하던 대로(?) 카터는 쓰레기처럼 세상에서 치워지고 말았다. 카터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더 이상 그의 사진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쉽게 비난을 퍼붓던 사람들은 과연 속이 시원했을까? 그들이 진짜 원한 것이 그런 결말이었을까?

 

 

'기자를 욕하는 문화'가 그야말로 창궐하는 시대에, 기자 비슷한 블로거로 살아가는 일 역시 만만치는 않다. 지난 며칠간 글을 쓰지 못한 이유 중에는 극심해진 더위 탓도 있었지만, 특별한 이유없이 삐딱한 시선으로 물어뜯으려는 댓글들에 회의를 느낀 탓도 있었다. 물어뜯는 사람들은 그저 장난삼아 한 번 그래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당하는 사람한테는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아무도 모른다. 약 2시간 30분에 걸쳐 퓰리처상 사진전을 관람하는 동안 내 마음속을 가득 채운 것은, 세상의 몰이해 속에서도 자신의 일에 목숨 걸고 최선을 다했던 기자들을 향한 연민과 공감과 존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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