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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VS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몇 가지 비교 분석 본문

드라마를 보다

'나인' VS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몇 가지 비교 분석

빛무리~ 2014. 3. 2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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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13년 한 해 동안 혼이 쏙 빠지게 몰입하며 보았던 드라마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인 : 아홉 번의 시간 여행' 2편이었다. '너목들'에서는 남주인공 박수하(이종석)의 매력에 홀려 정신을 못 차렸다면 '나인'에서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 여행의 결과를 궁금해하느라 매 순간 가슴을 졸이곤 했다. 어느 덧 '나인'이 방송된지도 1년이 넘어가는데, 요즘은 그렇게 내 마음을 강렬히 사로잡는 작품이 없다. 원래는 '신의 선물'에 가장 큰 기대를 걸었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다른 작품이었다. 구성이 너무 복잡 산만하고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추리할 것이 너무 많아서, 정작 딸 샛별이(김유빈)를 향한 김수현(이보영)의 뜨거운 모성은 정신없는 껍데기 속으로 숨어버린 느낌이다. 가뜩이나 복잡해서 어지러운데 옥에 티는 또 어찌나 많은지, 각 장면 장면의 신뢰성이 떨어지니 애써 추리를 해 보려다가도 의욕이 사라지고 만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좀 단순하게 만들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행복하게 빠져들 작품이 없어 허전하던 차에,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접하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드라마 '나인'의 모티브가 된 소설인데, 송재정 작가가 입장을 밝히기 전에는 표절 논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책을 읽은 후 나의 판단에는 송작가의 해명대로 모티브 차용이라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표절이라는 잣대를 적용하기에는 구체적 내용과 에피소드가 너무 달라서 '시간 여행의 방식'과 '시한부 인생'이라는 두 가지 주요 모티브 외에는 모든 면에서 거의 상관없는 작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소설보다는 드라마 쪽이 등장인물도 훨씬 많고 에피소드도 복잡하다. 소설에는 악역이 등장하지 않고 주요 인물 3~4명만 활동하며 그들의 감정선이 주로 부각되지만, 드라마에는 모든 갈등의 원흉인 절대 악역이 등장하며 내용의 범위 역시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된다.

 

 

책을 집어들자마자 손에서 놓지 못하고 대략 3시간만에 독파했는데, 이렇듯 독서의 재미에 푹 빠져본지가 당최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드라마와 책 중 어느 것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냥 재미삼아 몇 가지의 비교 분석을 해 보고자 한다. 이 리뷰는 물론 개인적 감상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며, 감동적인 작품의 여운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은 노력의 일환이다.

 

1. 주인공

 

'나인'의 박선우(이진욱)는 38세의 방송국 앵커이다. 그는 죽은 형 박정우(전노민)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간 여행의 매개체인 9개의 향을 손에 넣는데, 1대의 향을 피울 때마다 20년 전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박선우는 젊은이답게 욕심이 많고, 운명이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편이다. 그는 시간 여행을 통해 20년 전 화재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도 살리고, 히말라야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형도 살리고, 뇌종양에 걸려 죽어가는 자신도 살리려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속속 발생하면서 현실은 점점 꼬여간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의 엘리엇 쿠퍼는 60세의 외과의사이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던 중 신비로운 노인으로부터 10개의 알약을 얻는다. 1개의 알약을 먹고 잠이 들면 30년 전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데,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대략 20분에 불과하니 향 1대가 타오르는 시간과 엇비슷할 듯 싶다. 엘리엇의 소망은 아주 단순하다. 목숨처럼 사랑했던 한 여인, 30년 전에 죽은 그녀를 꼭 한 번만 다시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박선우와 달리 엘리엇은 시간 여행을 통해 운명을 바꾸고자 하지 않았다. 사고로 인한 그녀의 죽음도, 폐암 때문에 머지않아 닥쳐올 자신의 죽음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끝내 안타까움을 이기지 못해 그녀를 살려내고 만다.

 

2. 주인공의 여자

 

'나인'의 주민영(조윤희)은 방송국 기자로서 오랫동안 박선우를 짝사랑해 온 후배이다. 박선우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는데, 시간 여행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가 뒤틀리고 만다. 과거로 돌아간 박선우는 형 박정우의 쓸쓸한 죽음을 막기 위해 그가 사랑하던 여자와 결혼하도록 도와주는데, 공교롭게도 주민영이 그 여자의 딸이었고 20년 후의 현실에서 그들은 삼촌과 조카 사이가 되어버렸다. (연인 사이가 가족 관계로 얽히는 이 부분은 한국 드라마 특유의 막장 요소에 가까웠다는..;;) 운명을 바꾸려고 과욕을 부린 결과, 박선우는 자신의 사랑을 잃을 지경에 처했지만 그렇다고 형의 인생이 행복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의 일리나는 엘리엇 쿠퍼의 오랜 연인이자 단 하나의 사랑이다. 일리나가 사고로 죽은지 10년 후 엘리엇은 잠깐 스치듯 만났던 여인으로부터 딸 앤지를 얻게 되고, 그 이후 20년의 삶에서 앤지는 엘리엇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존재가 된다. 과거로 돌아간 엘리엇이 처음에 일리나의 죽음을 막으려 들지 않았던 이유도 앤지 때문이었다. 일리나가 살아서 평생을 그와 함께 한다면 앤지는 태어나지도 못할 테니까. 그러나 혈기방장한 30세 엘리엇은 무조건 일리나를 살려낼 방법을 알려달라 떼쓰고, 다시 보게 된 일리나의 사랑스런 모습에 마음이 흔들린 60세 엘리엇은 결국 그녀를 살리고 만다.

 

하지만 앤지를 포기할 수도 없었기에 젊은 엘리엇은 늙은 엘리엇과 약속한 대로 일리나와 헤어지는데, 그 선택은 또 다른 비극을 몰고 온다. 나는 늙은 엘리엇의 고집이 좀 이해되지 않았다. 태어난 자식의 인생이 불행해진다면 그거야 못 참을 일이지만, 앤지가 태어나지 못할 운명이라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일리나와의 사이에서 다른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 될 것 아닌가? 젊은 엘리엇도 그렇게 주장했지만, 늙은 엘리엇은 꼭 앤지를 원할 뿐이며 다른 어떤 아이와도 앤지를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30세의 젊은 엘리엇도 나와 마찬가지로 부모가 안 되어봐서 부모의 마음을 몰랐던 것일까? 어쨌든 그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늙은 엘리엇과의 약속을 지켰고, 10년 후 갓난아기로 태어난 앤지를 만났다. "반갑다, 앤지!" 딸에게 첫 인사를 건네는 그 장면에서 나는 저절로 눈물이 솟구쳤다. 엘리엇은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가!

 

3. 단짝 친구

 

 

'나인'의 한영훈(이승준)은 박선우와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함께 해 온 친구다. 박선우가 시간 여행의 비밀을 가장 먼저 털어놓으며 도움을 청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모든 사정을 알게 된 한영훈은 20년 전의 과거에서나 현재에서나 항상 박선우의 곁에서 그를 돕는 든든한 응원군이다. 각종 사건에 휘말리던 박선우는 다른 사람들의 일에만 신경쓰다가 정작 자기 자신을 구하지 못하고 뇌종양으로 숨을 거두는데, 18세 고교생 한영훈은 시간 여행을 왔던 미래의 박선우가 떨어뜨리고 간 약봉지를 발견함으로써 친구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한 번도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가까운 곳에서 힘이 되어주며 100% 신뢰와 의리를 나누는 친구라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개인적으로는 주민영과의 사랑보다 한영훈과의 우정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의 매트는 19세 때 엘리엇과 만나 생사지교의 친구가 되었다. 열차 사고 현장에서 죽을 뻔한 매트를 엘리엇이 구하면서 시작된 관계였다. "언젠가 나도 꼭 한 번은 네 목숨을 구할 거야!" 매트는 굳게 다짐했고, 30세가 될 때까지 매트와 엘리엇은 동성애자로 오해받을 만큼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였지만, 60세 엘리엇이 시간 여행을 오면서 괜한 불똥이 매트에게로 튀어 그들은 절교하고 만다. 젊은 엘리엇은 늙은 엘리엇과의 약속 때문에 시간 여행의 비밀을 매트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고 일리나와 헤어진 까닭도 밝힐 수가 없었는데, 매트는 또한 일리나의 친구이기도 했으므로 비밀을 유지하면서 교우 관계를 지속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훗날 매트는 결국 처음 만나던 날의 약속을 지켜낸다. 무려 30년 동안을 절교 상태로 지냈는데도 기꺼이 친구를 위해 목숨거는 우정이라니, 매트 역시 한영훈 만큼이나 감동적인 친구였다.

 

4. 악역과 기타 인물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의 등장인물은 엘리엇, 매트, 일리나, 앤지의 4명으로 간단히 압축되지만, '나인'의 등장인물은 상당히 많고 인물간에 얽힌 관계도 복잡 다양하다. 가족 구성원도 엘리엇에게는 딸 앤지 뿐이지만 박선우에게는 20년 전에 죽은 아버지(전국환)를 비롯하여 정신병원에 입원중인 어머니(김희령), 죽었다 살았다를 계속 반복하는 형(전노민), 형수가 되었다 장모가 되었다 하는 김유진(이응경), 조카와 연인 사이를 오가며 위험한 사랑의 줄타기를 하는 주민영(조윤희)까지 스펙터클한 4명의 가족이 존재한다.

 

또한 '나인'에는 소설에 없는 악역이 등장하는데, 최진철(정동환)은 20년 전 박선우 아버지의 죽음과도 깊은 연관이 있고 그 이후 모든 비극의 원흉이며, 20년이 흐른 현재 시점에서도 박선우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악의 축이다. 게다가 최후에는 형 박정우의 친아버지로 밝혀져 안타까운 (이런 웰메이드 드라마조차도 막장스런 출생의 비밀을 피해갈 수 없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최진철과 얽힌 사건 해결에는 박선우의 직장 상사 오철민(엄효섭)이 큰 도움을 주면서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5. 엔딩과 주제 의식

 

 

30년 전 엘리엇의 갑작스런 이별 선언에 충격받은 일리나는 투신 자살을 시도하며 중태에 빠지지만, 60세 엘리엇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 능란한 외과술로 그녀를 소생시킨다. 비록 후유증이 남아 장애인이 되었지만 일리나는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수의학 분야의 권위자로 우뚝 선다. 엘리엇의 딸 앤지는 무사히 출생하여 예쁘게 성장했고, 엘리엇이 폐암으로 사망한 후 그가 남긴 편지를 읽고서야 모든 사정을 알게 된 매트는 마지막 한 알의 알약을 먹고 과거로 돌아가 젊은 골초 엘리엇에게 흡연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리하여 20년 후 현재는 일리나와 엘리엇이 살아있고 매트와의 관계도 회복되었으니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다.

 

'나인'의 엔딩은 열린 결말이었다. 모든 갈등이 해결되어 완벽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가 싶었으나, 마지막 1대의 향을 피우고 최후의 시간 여행을 떠났던 박선우는 과거에 갇혀 돌아오지 못했다. 박선우와 주민영의 결혼식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신랑 때문에 취소되고, 박선우의 행방을 쫓던 한영훈은 그가 과거에 갇힌 채 악인 최진철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오열한다. 그러나 완전한 비극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시간 여행자 박선우는 죽었지만 그 당시 18세 소년이었던 박선우의 인생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38세의 현재 시각에 도달했을 때 그가 시간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보면 우주의 섭리에 순응하며 함부로 운명을 바꾸려 하지 않았던 엘리엇은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시간 여행의 혜택을 이용해 너무 쉽게 운명을 바꾸려 했던 박선우는 그 벌을 받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 또한 개인적 생각일 뿐이다. 주제 의식은 소설 쪽에서 훨씬 명확히 드러나는데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주제는 '영원한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사랑'에는 물론 '우정'도 포함된다) 엘리엇이 시간 여행을 떠난 이유는 일리나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고, 일리나를 살려낸 이유도, 몇 차례나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사랑이었다. 마지막 알약을 이용해 매트가 시간 여행을 떠난 이유도 죽은 친구 엘리엇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다. 30년이 아니라 300년을 헤어져 있어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벗어나도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

 

'나인'의 주제는 비교적 희미하다. 복잡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기는 했는데, 그것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히 표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한영훈에게 남긴 최후의 음성 메시지에서 '그 오랜 시간 동안, 몇 차례나 거듭된 삶 속에서 항상 내 곁에 있어주고 힘이 되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 작품의 주제는 '함께 있는 사람의 소중함'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시간 여행이란 불가능한 것이기에, 시간 여행을 테마로 삼은 작품의 주제는 대동소이하다. 현재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나인'을 시청한지 1년만에 그 모티브가 된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읽으며,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영원한 사랑의 감동을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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