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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이야기들/구경을 가다

빛무리의 좌충우돌 홍콩 마카오 여행기 <2편>

빛무리~ 2014. 1. 17. 08:10

 

옵션을 선택하지 않고 하루종일 자유 여행으로 계획한 셋째날은 우리끼리 마카오에 들어가기로 했다. 비싼 옵션 비용을 내고 허겁지겁 가이드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면서도 의미있고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라 믿었다. 감기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남편의 컨디션 난조가 염려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천금같은 시간을 호텔방에 주저앉아 쉬면서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간단한 호텔 조식을 마치고 무작정 다시 지하철역으로 나선 우리는 (다행히 호텔은 지하철역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둘 다 어리버리한데 다행히도 거의 헤매지 않고 무사히 마카오 행 페리를 타는 데 성공했다. 배 안에 좌석이 정해져 있는 것을 모르고 아무데나 앉았다가 쫓겨나서 머리를 긁적이며 간신히 제 자리를 찾아가긴 했지만.

 

 

약 한 시간쯤 후 배에서 내리자 홍콩과는 엄연히 다른 나라인 마카오였다. 선착장에는 이미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려는 호객 행위가 가득했다. 우리는 택시 관광을 하라며 붙잡는 손길들을 뿌리치고, 각 호텔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선택했다. '꽃보다 남자'에서 구준표(이민호)가 묵었던 베네치안 호텔이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였다. 화려하고 예쁘게 꾸며놓은 호텔 내부의 풍경들은 개인적으로 내 마음에 들었지만,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을 좋아하는 남편에겐 별로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마침 간단한 오페라 공연이 있어서 노래도 듣고, 건물 내부에 있는 거라고는 믿기 힘든 푸른 빛 운하도 보고, 그 위를 다니는 작은 배 곤돌라도 구경했다. 드라마에서 금잔디(구혜선)가 타고 있던 모습이 생각났지만, 썩 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점심식사도 그 호텔 안에서 해결했는데, 메뉴 선택에 실패했는지 절반 이상 남기도록 맛이 없었다.

 

기왕 마카오에 갔으니 호텔 카지노도 한 바퀴 둘러보긴 했는데, 우리 눈에는 좀 넓고 시설 좋은 오락실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투어버스를 탔지만 옵션 관광을 선택했던 일행을 다음 날 만나서 들으니, 마카오 관광 자체가 옵션이었는데 그 중에도 카지노는 또 옵션이라 추가 요금을 내고 그 (오락실) 구경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유 여행을 선택한 우리는 아침 배를 탔었는데, 가이드는 오전 내내 또 무슨 쇼핑을 하라며 샵에 끌고 다니다가 오후 2시경에나 마카오 행 페리를 태워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 놓고는 또 각 장소마다 30분씩 주는 바람에 제대로 구경할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그 일행 중 나이 지긋해 보이는 어떤 아저씨는, 한국으로 돌아갈 때 남은 홍콩 달러를 모두 가이드에게 수고비로 주고 갈까 했는데 마음을 바꿨다고 하셨다.

 

자유 여행을 선택한 우리의 결정은 탁월했지만, 역시 문제는 컨디션 난조였다. 베네치안 호텔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유명한 세나도 광장이었는데, 무슨 시청 앞 광장 같은 곳에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헤치고 다니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극심한 비염에 족저근막염까지 있는 나는 미리 진통제를 두 알이나 먹었는데도 콧속과 발바닥의 통증이 걸을수록 점점 더 심해졌고, 좀처럼 감기에 안 걸리는 남편은 한 번 걸리더니 독하게 걸려서 멍하고 있었다. 코딱지만한 맥도날드 안에도 사람으로 미어터졌는데, 우리는 커피 한 잔씩을 사들고 눈치 보면서 한 시간 가량 몸을 쉬었다. 그리고는 마카오 최초의 성당이라는 성 도미니크 성당, 앞문만 남고 다 소실되었지만 세계적인 유적지라는 성 바울 성당, 17세기 초에 세워진 몬테 요새를 둘러보았다.

 

정신없이 가이드만 쫓아다니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지만, 역시 사람들의 파도에 치여서 구경다운 구경은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여행이란 게 원래 이런 건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조금이라도 유명한 곳은 전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니, 그렇다고 모처럼 해외에 나갔는데 이름없는 뒷골목만 구경하다 올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어쨌든 천주교 신자인 나에겐 고풍스럽고도 따뜻한 느낌이 우러나던 도미니크 성당이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앞문만 남은 성 바울 성당과 몬테 요새의 작은 대포를 보았을 때는 슬프고 처연한 느낌이 들었다. 왜 인간들은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지 못하고, 예나 지금이나 참혹한 전쟁을 벌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지친 몸을 이끌고 배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홍콩의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일찌감치 쭉 뻗어 잠이 들었다. 잠시 후에 일어날 기막힌 일은 상상도 못한 채로 말이다. 깊이 잠들었던 나는 웬 남자가 우리 객실 문을 쾅쾅 두드리며 뭐라고 외쳐대는 소리 때문에 어렴풋이 잠이 깼다. 시간을 보니 12시를 넘어 새벽 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금세 공포에 질려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일까? 정체 모를 남자는 홍콩말과 영어를 섞어 쓰면서 계속 뭐라뭐라 하고 있었는데, 대충 호텔 프론트 직원이라고 하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우리는 얌전히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와서 잠만 잤을 뿐인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시간에 호텔 직원이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운단 말인가? 나는 잔뜩 겁에 질려서 남편을 깨웠지만, 감기에 취한 남편은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문 밖의 소란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지만, 공포에 질린 나는 한 마디 대꾸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굉장히 험악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들이 적지 않아서, 우리 부부는 "삼합회가 회합을 하나보다"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던 것이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세상에 맙소사!!! 그들은 과연 호텔 프론트 직원이 맞기는 했다. 다짜고짜 마스터키를 이용해서 객실 문을 열더니 한 발쯤 들어서며 뭐라뭐라 하는 것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며 한 쪽 구석으로 피했고, 그들은 다행히 더 이상 들어오지는 않고 문 앞에서만 뭐라뭐라 했다. 그제야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남편이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몇 마디 주고받더니 그들을 내보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데다가 심한 패닉 상태였던 나보다는 그래도 남편이 더 많은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가이드가 우리 룸에 계속 통화가 되지 않는다며 프론트 직원에게 올라가 보라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공포가 살짝 지나가자 분노가 밀려왔다. 시간이 늦은 것 따위를 염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이 황당한 사태의 원인을 물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밤 10시부터 12시 사이에 우리 방으로 계속 전화를 걸었는데 받질 않아서, 무슨 사고가 생겼나 걱정이 돼서 그랬다는 거였다. 무슨 어불성설을... 늦은 밤 시간에 곤히 잠들면 충분히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는 건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확인을 해야만 했다는 것일까? 가이드와는 다음 날 오전 11시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고, 한국행 비행기는 오후 1시 넘어서 출발 예정이었다. 아침 내내 연락이 안 된다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으니 확인이 급했겠지만, 이건 완전히 문제가 다르지 않은가?  

 

그 정도 이유로는 절대 한밤중에 객실 문을 열고 침입한 호텔측의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가이드는 단 한 마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밖에서 그렇게 노크하고 부르는데 왜 대답을 하지 않았냐면서, 하다 못해 인기척만 냈어도 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않았을 거라면서 우리를 탓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더 이상 말을 섞을 이유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호텔측에 제대로 항의하고 싶었으나, 문제를 크게 만들면 그 외국에서 의지할 곳 없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할 것 같았다. 자칫 시비라도 붙게 되면 예약했던 한국행 비행기조차 타지 못하고 발이 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속상하고 억울하고 기분 더럽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꾹 참는 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다음 날 호텔 로비에서 마주친 가이드는 거짓말을 했다. 호텔 측에서는 우리 객실의 전화선이 빠져 있음을 시스템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끼우러 왔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노크해도 인기척이 없으니, 당연히 빈 방인 줄 알고 문을 열었다고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전화선은 빠져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화선을 한 번도 건들지 않았고 그들도 우리가 방에 있어서 손대지 못했는데,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정각에 어김없이 모닝콜이 걸려왔던 것이다. 비상식적인 행동을 저질러 놓고는 끝내 사과 없이 거짓말만 늘어놓는 가이드와 호텔측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남편이 시어머니께 그 일을 말씀드리니 "너희가 신혼부부처럼 보여서 그랬나보다. 아무래도 신혼부부는 패물이나 돈을 많이 갖고 있으니까" 라고 추측하셨다. 글쎄 뭐 그렇게 명백한 범죄 의도가 있었다면 오히려 좀 이해가 되겠다. 

 

비록 돌아와서는 건강 악화로 고생을 하고 있지만, 홍콩 마카오 여행 자체는 즐거웠다. 무엇보다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매우 친절하고 따뜻해서 이미지가 좋았다. (홍콩과 비교되는 바람에 프랑스는 더욱 차갑고 무례하고 불친절한 나라로 기억에 남을 듯..;;) 마지막 날 호텔에서의 불쾌한 경험만 없었다면 전체적으로 다 좋았다고 말할 수 있었을텐데, 그 한 방의 충격이 너무 컸다. 새벽 한 시쯤에 그 일을 겪고는 열이 뻗쳐서 거의 잠을 이루지도 못했으니까. 호텔방 안에서 혼자 밤새 식식거리며 생각하기로는, 일단 무사히 한국에 돌아간 후 여행사와 호텔측에 모질게 항의하고 문제를 일으키려 했었다. 거기서는 위험하고 무서우니까, 사과를 받아내든 손해배상을 청구하든 한국에 와서 하려 했는데, 막상 돌아오니 몸도 아픈 데다가 모두 귀찮아졌다. 쉽지도 않을 것 같고..;; 만약 이 글의 독자들 중 홍콩 여행을 계획하는 분이 계시다면, 설령 전화를 받지 않더라도 절대 한밤중에 객실 문을 열고 들어오지 말 것을 처음부터 호텔측에 약속받으시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다. 그 호텔이 정확히 어디인지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메일 주소를 알려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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