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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네 식구들' 최상남, 남편으로서 자격 미달인 이유 본문

드라마를 보다

'왕가네 식구들' 최상남, 남편으로서 자격 미달인 이유

빛무리~ 2014. 1. 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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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자격이 있을까? 사랑에도 권리가 있을까? 원칙적으로는 '없다'가 정답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경제력이나 학벌, 외모 등의 조건이 사랑의 순수성을 퇴색시킨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이와 같은 외적 조건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사랑을 가로막는다. 게다가 최근에는 사랑의 개념 자체를 변질시켜 외적 조건들과 합쳐 버리는 기이한 주장까지 나타났다. "사랑은 총체적인 거잖아!" 라고 외치던 '청담동 앨리스'의 문근영을 기억하시는가? 돈이 많거나 잘생겼다는 조건 역시 그 사람의 일부이기에 함께 사랑하는 것이며, 따라서 돈 많은 남자를 의도적으로 유혹하는 행위 역시 사랑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나는 그 뻔뻔한 주장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할 지경으로 소름이 끼쳤다.

 

차라리 솔직한 태도로 욕망을 인정한다면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었으련만, 어딜 감히 사랑과 욕망을 동일한 개념으로 취급하며 그것도 사랑이라고 지껄이다니! 그 주장에 동의한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묻고 싶다. 나중에 그 남자가 폭삭 망해서 길거리에 나앉을 신세가 된다면, 게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얼굴을 심하게 다쳐 흉칙한 몰골로 변해 버린다면 가난하고 못생긴 그의 곁에 남을 수 있겠는지를. 글쎄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사랑은 총체적인 것인데, 그 총체적 조건 중에 두 가지가 변해 버렸으니까 사랑도 변하는 게 당연하다고 대답할까? 정말 사랑은 제멋대로 바꾸고 뒤집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이 뭔지를 모른다면, 차라리 사랑을 입에 담지 말기를 권하고 싶다.

 

 

'왕가네 식구들'의 셋째딸 왕광박(이윤지)은 매우 답답하고 맹추같은 구석이 있지만, 어쨌든 진정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여자다. 대학 나와서 교사까지 하던 그녀가 중졸 출신의 육체 노동자인 최상남(한주완)과 결혼했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학벌이라는 외적 조건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못된 시아버지 최대세(이병준)의 끝없는 구박에 시달리면서도 시월드에 들어가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더욱 그녀의 진실한 사랑을 증명해 준다. 최상남이라는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왕광박은 처음부터 희생을 감수하려 했던 것이다. 사랑이 위대한 이유는 상대를 위해 고통마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최상남도 왕광박을 사랑했을까? 그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최대세는 새 며느리 광박에게 마구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화를 냈다. 나름대로는 잘못 전달된 편지 때문에 화가 났고, 곧장 오라고 했는데 처갓집에 들렀다 온 것 등의 이유를 주워섬길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다. 원래 이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 때 마침 채널이 맞춰져 있었는데, 내 옆에서 그 장면을 함께 본 남편이 기막히다는 듯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이네요. 자기 집안이 저런 상황이면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지 말았어야죠!" 그렇다.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최상남의 선택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못난 것이었다. 감히 사랑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결혼 생활 내내 왕광박은 시아버지의 온갖 트집과 구박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갑자기 나타난 시어머니 오만정(이상숙)의 등쌀마저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오만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최상남의 생모이긴 하지만 일말의 애정도 없이 버리고 달아났을 뿐 아니라, 가족들의 재산을 모조리 훔쳐감으로써 동생 오순정(김희정)의 인생까지 망가뜨린 장본인이다. 한 때 잘나가는 다방 마담이었음을 자랑으로 여기는 오만정은 마침 돈이 떨어지고 비빌 곳이 없게 되자 뻔뻔한 얼굴을 쳐들고 엄마랍시고 최상남의 집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다른 식구들이 모두 집을 비우고 며느리 왕광박 혼자만 집을 지키고 있을 때를 노려서 번번이 들이닥치는 것이다.

 

 

오만정은 왕광박에게 시어머니 노릇을 하면서 밥을 차려내라 호령하고, 밥을 차려주면 반찬과 국 등을 일일이 트집 잡으며 구박을 한다. 심지어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냐는 식의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게다가 날강도처럼 5천만원씩이나 되는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까지 한다. 이러한 오만정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결혼을 뒤집기에 충분한 폭탄이다. 결혼 전에는 분명히 없었던 시어머니가 결혼 직후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만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인데, 설상가상 생면부지의 며느리에게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피를 빨아 먹으려 하다니! 그 모든 이야기를 남편 최상남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왕광박의 모습은 답답해서 팔짝 뛸 지경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최상남을 진짜 사랑하니까.

 

어려서부터 모성 결핍에 시달려 온 최상남은 비록 그런 인간일망정 엄마가 돌아와 준 것을 기뻐하며 행복해하고 있다. 자식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의 존재로 인해 감당해야 할 고통들에서는 한 발 비켜서 있다는 게 문제다. 자기 엄마의 실체를 모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아니,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설령 눈치가 곰탱이라서 전혀 몰랐다고 해도, 아내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40회에서의 태도를 볼 때 최상남은 남편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아니, 이런 식이라면 그에겐 사랑할 자격이 없다. 서로 사랑하는데 왜 한 쪽에서만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받아들이며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 최상남은 사랑의 단물만 쪽쪽 빨아먹을 뿐, 사랑의 고통은 전혀 감당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에서 파생된 모든 고통은 오직 왕광박의 여린 어깨에만 지워져 있다. 가족들과 사이가 좋은 경우에도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광박은 노골적으로 자기를 미워하거나 이용해 먹으려 하는 시부모(?)의 모진 구박을 견뎌내면서 시집살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랍시고 최상남은 중간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기한테 시집 온 이상 그쯤은 견뎌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남자라면, 결혼 직후에 갑자기 나타나서 뻔뻔하게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 드는 엄마가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아내에게 미안해할 것이다. 본의 아니게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결혼한 셈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최상남은 눈꼽만치도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왕광박은 자기가 오만정에게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를 남편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자기한테도 엄마가 있게 되었다고 행복해하는 최상남에게 그런 말을 하면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돈을 요구하는 오만정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왕광박은 처녀 때부터 모아 두었던 돈을 오백만원씩 두 차례에 걸쳐 내어주며 제발 떠나 달라고 부탁하는데, 그 때 집안에 들어선 최상남은 무조건 엄마의 편에 서며 아내에게 도끼눈을 부릅뜬다. 남편의 마음에 상처가 될까봐 혼자 모든 것을 참아내던 왕광박의 자세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최소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티스푼 한 수저 만큼이라도 있다면 "내 눈으로 다 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해?" 하면서, 자기 말을 좀 들어 달라고 애원하는 광박을 매몰차게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상남은 왕광박을 사랑하지 않는다. 상대에게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게 무슨 사랑인가? 자기 부모 때문에 아내가 그렇게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모르는 것도 ××이고, 알면서 내버려 둔다면 더욱 나쁜 놈이고, 아내의 말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구제불능의 쓰레기다. 어디서 굴러먹다가 단꿀 냄새를 맡고 기어들어온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등골에 빨대를 꽂아 넣고, 사상 최악의 무개념 시아버지는 거리에서 안사돈과 마주쳐 언성을 좀 높였다고 집에 와서 며느리에게 화풀이하며 "친정 출입 금지!"를 선언하는데, 말로만 사랑한다면서 아내를 이런 지옥에 끌어다 내팽개쳐 놓고 나몰라라 하는 최상남은 단언컨대 남편의 자격도 없고 사랑할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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