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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결혼하는 여자' 이지아, 욕망 쫓은 재혼의 불행한 말로 본문

드라마를 보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이지아, 욕망 쫓은 재혼의 불행한 말로

빛무리~ 2014. 1. 5.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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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가 벌써 16회까지 방송되었음에도 시청률은 경쟁작 '황금무지개'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황금무지개'가 일주일 먼저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역전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김수현의 이름값도 이제는 그 효력이 떨어진 걸까? 등장인물 각각의 뚜렷한 개성과 치열한 심리 묘사도 여전하고, 칠순을 넘긴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통통 튀는 대사의 재미도 살아있건만, '세결여'가 김수현의 전작들 만큼 대중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주인공 오은수(이지아)의 캐릭터가 시청자와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김수현 드라마의 시청층은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중년 이상 시청자들의 몰입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반향이 극대화된다. 2007년작 '내 남자의 여자'가 그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중년부터 노년까지의 모든 여성 시청자들이 착한 김지수(배종옥)에게 몰입하여 함께 울고 웃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는 불륜녀 이화영(김희애)이었고 그녀를 '공공의 적'으로 삼아 신나게 욕하면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높은 시청률을 이끄는 힘이긴 했지만, 공감과 몰입은 오직 김지수의 캐릭터에 집중되었다. 심지어 너무 착해서 답답한 지수를 대신해 친정 언니 은수(하유미)가 시원스레 이화영의 머리채를 잡아 주었더니 하루 아침에 '국민언니'로 등극하고 말았던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 여성들은 이혼을 두려워했고, 남편이 불륜을 저질러도 애써 실수라 여기며 용서하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는 대전제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결혼 자체의 무게감이 지금보다는 훨씬 컸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깨뜨릴 수 없는 절대적 의미였던 탓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 속에 결혼에 대한 인식도 급격히 달라졌고, 새털처럼 가볍다는 표현은 과장이지만 이제 더 이상 결혼은 절대적 의미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늙지 않는(?) 김수현 작가는 번뜩이는 감각으로 이러한 세태를 예민하게 캐치하고 작품에 반영시키는데, 그렇게 탄생한 드라마가 바로 '세결여'다. 하지만 작가보다 훨씬 둔감한 시청자들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다 못해 한 발짝 앞서 나가는 작가의 발걸음을 따라잡지 못하였다.

 

 

동성애 커플의 파격적인 사랑을 다루었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적잖은 논란이 일었지만, 엄마 김해숙이 든든한 존재감으로 작품의 구심점을 맡아 주었기 때문에 역시 시청자는 몰입할 수가 있었다. 솔직히 직접 경험해 본 게 아닌 이상 동성애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몰입할 수 있는 시청자는 드물었을 텐데, 남다른 성향을 타고난 자식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엄마의 뜨거운 눈물을 통해 모든 시청자와의 공감대 형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세결여'에는 그러한 구심점이 없다. 두 개의 중심축은 오은수와 오현수(엄지원) 자매가 맡고 있는데 둘 다 대중적 공감이 쉬운 캐릭터는 아니다. 자매의 엄마 오미연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김해숙과 달리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 시청자는 누구에게 몰입할 수 있을까?

 

먼저 주인공의 언니인 오현수를 살펴본다. 그녀가 삼십대 중반이 되도록 모태솔로인 이유는 어릴 때부터의 친구인 안광모(조한선)에 대한 짝사랑을 접지 못해서였다. 이 바람둥이 녀석은 현수의 애타는 시선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수십 년 동안이나 그녀 눈앞에서 수많은 여자들을 희롱해 왔다. 급기야 현수의 또 다른 소꿉친구인 박주하(서영희)를 유혹하여 동침한 후, 어영부영 코가 꿴 상태에서 결혼식장까지 들어섰다가 파토내고 달아나는 미친 짓을 저지른다. 그런데 오현수-안광모-박주하, 이 세 사람의 기묘한 삼각관계는 놀랍게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계속된다. 도저히 눈 뜨고 서로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한 집에서 뒹굴며 하하호호 지내는 것이다. 게다가 이 마당에 안광모는 갑자기 오현수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다며 들이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삶의 방식을 공감은 커녕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욱이 중년 이상의 시청자 중에서 말이다.

 

주인공 오은수가 첫번째 이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에는 상당한 설득력과 몰입도가 있었다. 못된 시어머니 김용림과 노처녀 시누이 김정난의 존재는 굳이 악행을 시시콜콜 주워섬기지 않아도 그냥 있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첫 손주를 임신한 며느리에게 보기 흉칙하고 남세스러우니 배를 집어넣고 다니라며 매일 구박하는 시어머니를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벌레 보듯 징그럽고 혐오스런 시선을 무려 4년이나 견뎌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누구나 생각했을 법하다. 부유한 시가에 위자료 한 푼 요구하지 않고 오직 아이의 양육권만 움켜쥔 채, 어린 딸 슬기를 부둥켜 안고 가난한 친정의 서늘한 골방에 다시 몸을 누였을 때까지도 모든 시청자는 오은수를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모두 회상으로 처리되었다.

 

 

드라마의 출발 지점에서 오은수는 벌써 재혼한 상태였다. 그녀의 두번째 시가는 첫번째 시가보다 훨씬 더 큰 부자였다. 갓 서른에 애 딸리고 돈 없는 이혼녀가 되었나 싶더니만, 눈 깜박할 사이에 재벌가의 외아들을 덥석 물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재혼에 성공한 그녀였다. 남편도 재혼이긴 했지만 딸린 자식도 없고 몇 개월 살지도 못했다 하니, 누가 봐도 오은수 쪽에서 땡 잡은 결과였다. 인품 훌륭한 시부모는 며느리의 과거를 흠 잡지 않고 기꺼이 받아 주었지만, 어린 딸을 데려오는 것은 허락받지 못했다. 여기서부터 오은수 캐릭터는 대중의 정서와 멀어진다. 이혼하자마자 재벌 아들이 달라붙는 범상찮은 전개도 그렇거니와, 무책임하게 자식을 떼어놓고 재혼하겠다는 오은수의 결정에도 공감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남편 김준구(하석진)는 몇 년 후 분가하면서 꼭 슬기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은 허황된 공수표 남발에 불과했다.

 

유명한 쇼핑 호스트로서 사회생활도 해 볼 만큼 해 본 오은수가 그토록 세상 물정을 몰랐을까? 김준구는 절대 부모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시부모의 허락하에 딸을 데려가지 못한다면 그 이후에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아니, 허황된 약속이나마 애써 믿고 싶어했을 뿐 속으로는 이별을 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울며 불며 매달리는 어린 딸을 친정 부모에게 떠맡긴 채, 김준구의 손을 잡고 으리으리한 대저택의 높은 문턱을 넘어섰다. 엄마보다는 여자를, 희생보다는 욕망을 선택한 것이었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그것이 명백한 현실이었다. 나중에야 비로소 오은수는 털어놓는다. 솔직히 너무 좋은 자리라서 놓치기 싫었다고, 이혼녀라고 비웃던 사회의 시선 앞에서 잘나 보이고도 싶었다고.

 

하지만 느닷없이 부모와 생이별하게 된 딸의 고통은 컸다. 유치원 동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살지 않으니 너는 고아라고 슬기를 놀려댔다. 기껏 함께 살자고 데려오더니 금방 떼어놓고 시집가버린 엄마를 원망하던 슬기는 아빠네 집으로 가겠다며 떼쓰기 시작하고, 슬기 문제로 몇 차례 전남편(송창의)과 만났던 오은수는 시집의 오해를 받아 곤경에 처하고 만다. 결국 은수는 아이를 전남편에게 보내고 가끔씩 만날 수 있었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데, 그래도 아이가 아빠네 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현재의 생활에 충실하려 한다. 그러나 진짜 폭풍은 이제 시작이었다. 남편 김준구가 결혼 전부터 교제해 온 여배우 이다미(장희진)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던 것이다.

 

 

결혼 후에도 김준구와 몇 차례나 만났으며 외국에서 잠자리까지 함께 했다는 이다미의 폭로는 오은수의 내면을 휘저어 놓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대뜸 시어머니에게 "아무래도 못 살겠습니다" 통보하고는 곧장 친정으로 향한다. 본인은 쉽지 않았다지만, 아무리 봐도 참 쉽다. 나 같으면 가여운 친정 부모에게 "저 또 이혼해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야, 영문 모르는 시아버지에게 억지로 웃으며 "아버님, 다녀 오셨어요?" 하는 편이 훨씬 쉬울 것 같은데, 오은수는 낯빛 감추고 그럴 자신이 없다며 단 몇 시간만에 쪼르르 친정행을 택한 것이다. 며칠 후 그녀는 친정 엄마에게 말한다. "나 이 사람 별로 안 좋아했나봐. 만약 슬기 아빠였다면 아무리 미워도 붙잡고 살았을 것 같은데, 이 사람한테는 그게 안 되네!"

 

욕망을 쫓아 선택한 재혼의 말로는 비참했다. 애당초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신뢰가 깨어지자 갈등을 봉합할 재료가 전무했던 것이다. 일곱 살 난 딸에게마저 "엄마도 여잔데, 여자로서 행복하면 안 되는 거야?" 라고 당당히 욕망을 선언하며 얻어낸 자리였지만, 욕망이 허무하게 사그라진 후 그녀에겐 무엇이 남았나? 어린 딸은 아빠에게 돌아갔고 전남편은 재혼했다. 남편은 제발 한 번만 용서해 달라며 매일 처가에 찾아와 빌고, 친정 부모는 인생이 다 그런 것이라며 스쳐 지나듯 참고 살기를 종용한다. 그러나 잠시 시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무슨 소용이랴. 금 간 항아리와 떠난 마음은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이제 은수에게 남은 것은 두 번 이혼한 여자라는 꼬리표와 자식을 향한 그리움 뿐, 일말의 깨달음이 있었다면 부디 세번째 선택은 욕망을 쫓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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