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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본문

드라마를 보다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빛무리~ 2013. 6. 3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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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유산' 후속으로 방송되는 드라마의 제목이 특이하더군요. '스캔들'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앞세워 제목이 아예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이랍니다. 제목에서 언뜻 떠오르는 소재는 막장과 불륜과 치정 따위의 그런 것들이죠. 사실 제목만 보고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무심히 포스터를 보고는 의외로 호기심이 동하더라 이겁니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유괴한 유괴범이었다!" 이거 궁금증을 확 자극하지 않습니까? 엄마도 아니고 아버지가... 이런 설정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죠.

 

 

어머니의 경우라면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수차례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전례가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에, 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절망 때문에 순간적으로 약간 제정신을 잃었던 어머니는 남의 아이를 유괴해다가 제 자식으로 삼아 지극정성으로 키우곤 하죠.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그 아이가 정말 자기 아이라는 착각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1995년작 '여(女)'라는 작품인데, 지금 이 드라마에도 출연하는 여배우 신은경씨가 당시 유괴당했던 딸 '용설' 역할을 맡았고, 유괴한 어머니 역할은 김혜자씨였습니다. 최근에는 케이블 드라마 '유리가면'에서 비슷한 설정이 있었던 듯한데, 제가 초반에 잠깐 보다 말아서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마 그런 일은 실제로도 있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건 좀처럼 상상이 되질 않았습니다. 무릇 감성에 쉽게 사로잡히는 여자에 비해 남자는 이성적 측면이 발달한 편이니, 설령 아이를 잃어 상심했다 쳐도 그렇게까지는 안 할 것 같았거든요. 틀림없이 뭔가 충격적이면서도 깊은 사연이 있겠다 싶었죠. 게다가 유괴한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가 무려 조재현이랍니다. 12년 전 드라마 '피아노'에서 37세의 젊은 나이로 애끓는 부정을 열연하여 온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던 그가, 이제 49세의 원숙한 나이가 되어 '아버지' 역할로 돌아온 겁니다. 아, 이거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깊은 사연을 간직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는 (유괴당한) 아들... 기본 설정도 흥미롭지만, 세월의 무게만큼 한층 더 묵직해졌을 조재현의 부성애 연기는 놓치기 정말 아깝잖아요? 더구나 예능 '아빠! 어디가?'를 통해 한창 부성애가 힐링의 코드로 자리잡은 요즘인데 말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주된 테마로 펼쳐질 듯한데, 이 드라마의 제목은 공개된 내용과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유괴한 아이를 자식으로 키울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은 무엇일까? 매우 충격적이며 부도덕한 사건은 또 무엇일까? 그런데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제 머릿속을 맴돌던 궁금증은 뜻밖에도 첫 방송을 시청한 후 모두 풀리고 말았더랍니다.

 

'스캔들'의 도입부는 30세의 어른으로 성장하여 종로경찰서의 형사가 된 하은중(김재원)이 사격 연습을 하다 말고 총을 든 채 뛰어나가는 장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대로 차를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간 하은중은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 아버지 하명근(조재현)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죠. "내가 사랑한 내 아버지는... 나를 유괴한 유괴범이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는 아들... 그런 아들을 처연하게 바라보며 눈빛으로 수많은 말을 전하는 아버지... 살짝 오글거리는 느낌은 있었어도 봐줄 만은 했어요.

 

 

그 신파스런 장면에서 드라마의 시간은 25년 전의 과거로 돌아갑니다. 88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 젊은 형사 하명근은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5살 된 아들 건영과 돌쟁이쯤 되어 보이는 딸 수영을 혼자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네요. 하지만 아빠의 밝은 성격 탓인지 그들 가정은 나름대로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는데, 어느 날 아들 건영이 다니던 유치원 건물이 붕괴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됩니다. 건물이 붕괴되는 장면의 CG 처리는 그야말로 조악한 수준이어서 만화영화가 따로 없더군요. 제 둔한 눈썰미에도 저건 심하다 싶을 정도였으니, 그런 쪽으로 예민한 시청자들은 보다가 채널 돌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쨌든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늦지 않게 뛰쳐 나왔는데, 건영이는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다른 데 안 가고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던 아침의 약속을 떠올리고는 다시 무너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건 너무 억지스런 설정 아니었을까요? 차라리 소식 전달이 늦어져서 건영이 외에도 몇몇 아이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희생된 것으로 처리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지 않았을까요? 어린애의 성격이 아무리 곧이곧대로라도 그 비상사태에, 천장과 벽에 쩍쩍 금이 가면서 우르르 쾅쾅 소리도 무섭게 나고, 모든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죽을 둥 살 둥 밖으로 뛰쳐 나가는데, 5살 짜리가 혼자서 아빠랑 약속을 지킨다고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다니요? 어쨌든 (이렇게 쓰다 보니 제가 너그럽게 봐주고 넘어간 부분이 상당히 많군요..;;) 한 발 늦게 현장에 도착한 아빠가 붕괴되는 건물을 속절없이 바라보는 장면에서 1회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들을 구하려고 애절하게 노력하다가 실패하는 내용은 2회 예고편에 살짝 비춰지더군요.

 

 

1회 방송의 대부분을 차지한 내용은 하명근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태하(박상민)과 그의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장태하는 바로 그 붕괴된 건물의 주인으로서 젊은 나이에 대단히 큰 부를 축적한 인물인데요. 그 부의 밑바탕은 아내 윤화영(신은경)의 친정집 재산이었죠. 장태하는 '천하건설' 대표였던 윤화영의 아버지가 정권에 밉보여 죽게 되자 그 틈에 비열한 수단으로 그의 기업을 차지하고 이름을 '태하건설'로 바꾸어 버렸던 모양입니다.

 

윤화영은 장태하의 법적인 아내지만 남편을 끔찍히 증오하며 1988년 당시 5년째 별거중인 상태군요. 놀라운 것은 장태하와 윤화영 사이에 5살 된 아들이 있는데, 윤화영은 그 아들의 존재를 남편에게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윤화영처럼 능력있고 똑똑한 여자가 왜 그토록 싫어하는 장태하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의 아내가 되어 숨죽이고 살아야 했는지, 그 사연도 이제 차차 밝혀지겠죠. 

 

장태하에게는 또 한 명의 여자가 있으니, 윤화영보다 먼저 만났고 아이도 먼저 낳은 여배우 고주란(김혜리)입니다. 고주란은 딸 주하가 벌써 8살이나 되었는데도 장태하가 윤화영과 이혼하지 않으려 해서 안달이 나 있는 참이네요. 어떻게든 장태하의 호적에 오르고 싶지만, 별로 애정도 없어 보이는 장태하와 윤화영을 갈라 놓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그래도 자식이 있으니 윤화영보다는 자기 쪽이 우세하다 여기고 있었는데, 2회 예고를 보면 윤화영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마구 발악을 하더군요..ㅎㅎ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을 저지른 주체는 단연코 장태하입니다. 물론 작품을 어느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앞으로 장태하의 아들을 유괴하여 자기 아들 대신 키우게 될 하명근의 행동도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더욱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을 저지른 장본은 분명히 장태하입니다. 비열한 수단으로 남의 기업을 차지하고, 싫다는 여자를 강제로 취하고, 제 자식을 호적에 올려주지 않는 등, 장태하의 악행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도 가장 큰 범죄는 바로 '태하프라자 상가' 건물 붕괴 사건이었죠. 

 

붕괴는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무리한 설계 변경으로 옥상의 냉각탑 무게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고 건설업체 측에서 통보를 해 왔고, 해당 건물의 책임자도 벌써 여기저기 금이 가고 있다면서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장태하는 금 간 부분을 대충 시멘트로 땜질하고 페인트를 새로 칠해 감추라고 명령할 뿐이었습니다. 그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고 자기 기업의 이미지만 생각하며 고집을 피우다가, 결국 건물의 일부가 붕괴되기 시작하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지만 때는 늦고 말았네요. 1시간 이내로 완전히 붕괴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장태하는 퍼뜩 묘안(?)을 생각해 냅니다. 부실 시공 때문에 붕괴된 것이 아니라 폭탄 테러를 당해 폭파된 것으로 꾸미겠다는 거였죠. 마침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이니 국제 테러 단체의 소행으로 몰아가기도 쉬울 거라고 여겼을까요?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시점에, 장태하는 그런 꼼수를 부려 자신을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왔으니 급히 대피하라는 전갈을 받은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가게와 식당에서 황급히 앞치마를 두른 채 뛰쳐나왔고, 유치원에 올망졸망 모여 있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인도를 따라 암탉을 쫓는 노랑병아리들처럼 잘 빠져 나왔습니다. 만약 장태하가 좀 더 악랄하게 미리 전갈조차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대피했다면 이 사건의 드라마적 임팩트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었을 듯도 싶은데... 아무리 픽션이라도 너무 끔찍하고 규모가 큰 비극은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비교적 미약하게 표현된 이 사건의 모티프는 다름아닌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였습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사망한 사람은 무려 501명이었다고 합니다. (실종자 6명, 부상자 937명) 사망자의 숫자만 보더라도 당시의 비극이 얼마나 규모가 크고 처참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그런데 당시에도 삼풍백화점의 수뇌부 측에서는 붕괴 조짐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풍문이 들려와 모든 사람을 분노케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알고 있으면서 수백 수천 명에 달하는 손님들과 종업원들의 목숨은 나몰라라 하고 자기들끼리만 속닥속닥 대피했다는 거였습니다. 어떻게 인두겁을 쓰고 그럴 수 있었을까요? 본인들이 대피할 시점까지는 붕괴 조짐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안전한 상태였는데, 그 때 미리 백화점 문을 닫는다 공지하고 사람들을 내보냈다면 재산적 손해는 피할 수 없을 지언정 사람은 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 많은 사람의 목숨을 담보삼아 태연한 얼굴로 기업의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장태하의 모습은, 18년 전 삼풍백화점 수뇌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쯤 되면 무엇이 가장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인지는 명백해진 셈 아닐까요? 마침 이 작품의 첫 방송이 전파를 타던 6월 29일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니, 우연치고는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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