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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킹 투하츠' 이윤지-조정석의 소름끼치는 연기 대결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더킹 투하츠

'더킹 투하츠' 이윤지-조정석의 소름끼치는 연기 대결

빛무리~ 2012. 4. 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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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하(이승기)와 김항아(하지원)의 약혼이 결정되고 김항아가 대한민국 왕실로 옮겨 와 살게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 두 사람의 결합은 매우 삭막한 정략결혼에 가까운 느낌이었죠. 벌써 이재하의 매력에 빠져서 그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김항아는 기꺼이 정든 고향을 떠나 모든 것을 버리고 이 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쏟아지는 것은 온통 차가운 시선들뿐, 아무도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국왕이신 맏아드님의 결정을 마지못해 받아들였지만 역시 북한 여자를 둘째며느리로 맞이하기가 썩 탐탁지 않았던 대비의 까칠함은 물론이거니와, 약혼자가 될 이재하조차 특유의 깐족거림으로 놀려대기나 할 뿐 아직은 마음이 무르익지 않아서 항아의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김항아는 강한 여자였고 이 곳에 올 때부터 모든 어려움을 각오했기 때문에,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도 혼자 꿋꿋이 잘 버텨내고 있었지요.

 

그 때 이재신(이윤지)이 귀국했습니다. 이 천방지축 공주님은 등장하자마자 상큼발랄한 매력으로 칙칙했던 왕실 분위기를 확 바꾸어 버렸지요. 가족들 중 누구보다 먼저 김항아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던 것도 바로 그녀였습니다. 거침없이 "언니~"라고 부르며 항아에게 다가선 그녀는 이재하를 자극하여 갈팡질팡하던 그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깨닫게 했고, 김항아로 하여금 이재하의 솔직한 말을 엿듣게 함으로써,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하던 두 사람의 사랑이 무르익게 되는 촉매제를 마련해 주었지요.   

공주 이재신의 활약은 이제껏 잠시도 쉴틈 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천생 군인으로서 꼬장꼬장하기 이를 데 없는 대위 은시경의 마음을 허물고 예쁜 사랑을 시작하나 싶더니, 하필 선왕 내외가 암살당할 때 그 곳에 찾아갔다가 사고를 당함으로써 더욱 커다란 존재감을 폭발시켰습니다. 현재 공주는 사고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이지만, 그녀가 조금씩 기억을 찾게 되면서 진짜 암살범인 김봉구(윤제문)과 클럽M의 정체가 드러날 테니까요. 이렇게 사건 해결의 키포인트가 됨과 동시에, 중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된 그녀의 존재는 발랄한 천방지축 공주에서 갑자기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평생 걸을 수 없게 된 육신 하나만 해도 충분한 비극인데, 가엾게도 이 공주에게는 사랑의 고통마저 예정되어 있군요. 비서실장 은규태(이순재)가 진짜 변절하여 악인이 된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좀처럼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단순한 실수로 선왕의 휴가지를 발설했고, 그로 인해 선왕 내외가 암살당하자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고 몸부림치다 보니 계속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어느 쪽이든간에, 왕실의 입장에서 볼 때 은규태는 이미 원수가 되었습니다. 고의로 변절했을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단순 실수였다 해도 용서하기는 어려운 일이죠. 어쨌든 은규태는 명백히 선왕 내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현재 국왕인 이재하와 그 약혼녀 김항아 사이를 이간질했으니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국왕의 비서실장으로서 그와 같은 잘못들이 어찌 용납되겠습니까? 이재신과 은시경은 별 수 없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버렸군요.

회를 거듭할수록 분위기가 어두워져 가는 '더킹 투하츠'에서 남녀 주인공인 이재하와 김항아의 사랑은 점점 더 무겁고 처절해집니다. 두 사람의 어깨에는 너무 많은 짐이 지워져 있으니 보는 것만도 약간은 부담스러울 지경입니다. 아버지같은 형을 잃고 삽시간에 국왕의 중책을 맡아야만 했던 이재하의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이 낯선 곳에서 홀로 싸늘한 시선에 둘러싸인 채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날마다 호되게 시달려야 하는 김항아의 고통은, 같은 여자로서 너무 속상한 마음에 눈 뜨고 보기가 힘겨울 정도입니다. 어째서 이재하라는 한 남자를 사랑한 댓가가 그녀에게는 이렇게까지 혹독한 형벌로 돌아오는 걸까요?

 

죄없는 딸이 두 번씩이나 청문회에 소환당하는 것을 지켜본 북한의 늙은 아버지는 분통을 터뜨리며 당장 돌아오라고 소리칩니다. 김항아는 오히려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 버렸지만, 저는 그녀의 눈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저 승냥이들의 마수를 피해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려무나, 가엾은 것..." 아무리 강한 척 해도 김항아는 연약한 여자인데 늑대굴 같은 이 곳에 홀로 던져져 있습니다. 이재하가 그녀를 아무리 사랑하고 믿는다 해도, 말다툼 한 번에 사랑은 흔들리고, 무슨 일만 터지면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메인커플이 깨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솔직히 저는 김항아가 더 이상 이 부당한 고통을 홀로 감당하지 말고, 차라리 사랑을 버린 채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조차 들더군요.

그래서일까요? 상대적으로 이재신과 은시경의 멜로가 제게는 더욱 달콤하게 느껴져 옵니다. 물론 노회한 은규태의 존재로 인해 이 쪽 러브라인에도 비극이 예고되어 있기는 하지만, 각자 한 사람의 몸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이재하와 김항아에 비한다면 차라리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집니다. 9회에서 이 두 사람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등장했을 뿐인데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더군요. 이윤지와 조정석의 첨예한 연기 대결은 그야말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어요.

 

하반신이 마비된 후 침울하게 살고 있는 공주를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었던 은시경은 예쁜 앵무새 한 마리를 들고 그녀를 찾아갑니다. 그 앵무새는 다리를 다쳐서 걷지 못하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된 녀석이었지요. 자기가 열심히 움직이고 운동을 하더니 나아졌다는 애견샵 주인의 말을 듣고, 은시경은 공주에게 힘이 될까 싶어서 그 앵무새를 선물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공주는 성질을 부리며 그의 마음을 뿌리치는군요. "그래서 나도 운동하라고? 야, 이 ××야!!! 어디다 대고 교과서질이야? 이게 좀 놀아줬더니 겁대가리 없이..." 공주의 막말과 욕설에도 아랑곳 없이, 은시경은 앵무새에게 '달려라 하니' 노래를 해보라고 시킵니다. 그런데 앵무새는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빙신, 빙신, 다리 빙신" 이라고 외치네요.

계속해서 "다리 빙신"이라고 외쳐대는 앵무새를 보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은시경과 달리, 공주는 빙그레 웃음지으며 말합니다. "네가 그 아저씨보다 훨씬 낫다. 솔직하잖아... 이리 줘 봐요!" 붙임성 좋은 앵무새는 은시경의 손을 거쳐 공주의 하얀 손가락에 넙죽 올라가 앉는데, 녀석을 쓰다듬는 공주의 표정과 손길은 그지없이 따스하고 애틋하군요. "네 주인이 그러디? 너보고 빙신이라고... 그걸 뭘 또 외웠어?" 동병상련이겠죠. 아무도 감히 공주를 다리 병신이라고 놀리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움츠러드는 마음속에 그 단어는 끝없이 맴돌며 상처가 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 귀여운 앵무새가 곪은 상처를 터뜨려 주었으니, 비로소 치유는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녀석과 함께 지내면서 좋은 말과 노래를 가르치다 보면, 은시경의 바람처럼 공주의 건강도 조금씩 회복되어 가겠지요.

 

실제로 더없이 밝은 성격이었던 사람도 몸을 다치거나 병에 걸려서 많이 아프게 되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상큼하던 공주가 무슨 불량배처럼 거칠게 욕설을 퍼붓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인데, 이윤지의 실감나는 연기 덕분에 정말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더군요. 은시경의 행동이 자신에 대한 호의에서 비롯되었음을 모를 리 없건만, 성치 않은 몸에서 비롯된 자격지심은 그 호의를 동정으로 여기게 했던 거겠지요. 고마운 사람에게 오히려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는 공주의 모습에서는, 몸의 상처보다도 더욱 깊은 마음의 상처가 여실히 느껴졌습니다.

이윤지를 상대하는 조정석의 연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군인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온 은시경, 이 뻣뻣한 남자는 따뜻한 애정 표현을 잘 못합니다. 성벽 위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부터 이미 사랑하게 되어버린 그에게 공주가 퍼붓는 막말이나 욕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만큼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기에 그녀의 말과 행동도 기꺼이 받아들이죠. 하지만 사랑을 해 본 경험도 없고 여자를 대하는데 익숙치도 않은지라, 그의 태도는 참으로 어설프고 쩔쩔매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제가 동물을 하나 가져왔는데 말입니다... 애견샵에서 봤는데 다리가 다쳐서... 그런데 어제 보니까 또 다 나았다고... 알고 보니까 자기가 열심히 운동을 했대요... (공주의 욕설~) 정말입니다!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러니까 공주님께서도 재활 훈련을... (공주의 욕설~) ... 이 애 노래도 합니다. 달려라 하니... (앵무새에게) 해 봐, 아까는 했잖아... 달려라~ 달려라~ (앵무새가 다리 빙신이라고 외침~) 어, 어, 왜 이러지... (식은땀..;;)"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공주 앞에서 은시경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공주에게 힘을 주려는 굳건한 마음으로 찾아왔지만, 깊이 상처받은 그녀의 모습을 막상 눈앞에서 보니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던 거죠. 공주가 포악을 떨어댈수록 그녀를 안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깊어지면서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떨려 옵니다. 은시경의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는 조정석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어요. 조정석은 원래 뮤지컬 배우로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실력자라는데, 앞으로 이윤지와 함께 멋진 듀엣 노래 한 곡 들려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이윤지와 조정석의 훌륭한 연기 덕분에 이재신-은시경 커플은 '더킹 투하츠'의 빼놓을 수 없는 활력소로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은규태의 변절을 확신했었지만, 이제는 그 비뚤어진 행보가 단순한 실수이기를 바라야겠군요. 그래야 이 예쁜 커플에게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가능성이 주어질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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