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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이소라, 슬픔의 여신으로 돌아온 그녀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나는 가수다' 이소라, 슬픔의 여신으로 돌아온 그녀

빛무리~ 2011. 10. 3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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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공연의 제2부 순서는 '나가수' 원년 멤버들의 무대로 꾸며졌습니다. 원래의 계획과 달리 갑작스레 순위가 매겨지는 경연을 하게 되는 바람에 적잖은 당혹감을 드러내는 가수들도 있었지만, 어차피 선호도 조사 형식일 뿐 탈락과는 관계가 없는지라 지나친 부담보다는 적절한 긴장감을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승의 영광이 김연우에게 돌아갔다는 사실 또한 매우 기분 좋은 결과였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조기 탈락 멤버였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5개월 동안 칼을 갈며 설욕의 무대를 준비했다고 하니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겠지요. 명예 졸업보다 더 행복한 1위라며 마음껏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흐뭇했습니다.

하지만 김현식의 원곡에서 전해지는 쓸쓸한 느낌을 좋아했던 저로서는, 김연우에 의해 재해석된 '내 사랑 내 곁에'를 받아들이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후렴구를 화려하게 편곡했다는 김연우의 말 그대로, 원곡과는 전혀 다른 장중하고 화려한 노래로 탈바꿈했더군요. 김현식의 노래가 통기타 독주라면, 김연우의 노래는 오케스트라 공연 같았습니다. 물론 매력이 넘치고 흠잡을 데 없는 무대였지만, 저의 감성과는 좀 방향이 달랐습니다.

제 마음을 흔들어 놓은 가수는 김연우에 이어서 등장한 김범수와 이소라였습니다. 저는 2부 공연이 시작될 때부터 이 두 사람의 무대를 가장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그들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그런데 두 사람이 내뿜는 분위기는 완전히 극과 극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슬픈 노래를 선곡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범수는 벅찬 기쁨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으며, 이소라는 가슴이 에이도록 쓰라린 슬픔의 정서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인 김범수는 자기 인생에 찾아온 절정기를 아직도 만끽하고 있는 중인 듯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얼굴 없는 가수로 지내야 했던 오랜 세월의 설움을 깨끗이 씻어내고, 비주얼 가수로 재탄생한지도 어느 덧 6개월을 훌쩍 넘기고 있군요. 볼수록 김범수는 참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릇 인생에 있어 기쁨과 영광의 시간들은 그리 길지가 않거든요. 


그러니 누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누리고 행복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귀한 순간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흘려보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시절의 자기가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게 되는, 그런 어리석은 경우도 많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김범수는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마음껏 누리는 듯해서 정말 보기가 좋았습니다.

명예 졸업 후 한동안 못 보던 사이에 김범수의 무대는 또 진화했더군요. 한결 더 성숙해지고 여유로워졌다고나 할까요?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에 비해서는 역시 좀 화려한 느낌이 있었으나, 그래도 원곡의 느낌은 충분히 살아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김범수가 노래의 전반부에서 보여준 극도로 절제하는 창법이 인상적이더군요. 그 자신도 인터뷰에서 말하길 "도입부에서는 가사의 내용에 중점을 두고, 속삭이듯 이야기하듯 노래하겠다"고 했었는데, 오히려 후반부의 폭발적 고음보다 전반부의 느낌이 더 좋았습니다.

순위와 상관없이, 아껴주신 팬들을 위한 감사의 무대를 선물해 드리고 싶다던 말처럼, 그렇게 힘을 쭉 빼고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속의 여유로움을 드러낸다고 저는 생각되었습니다. 마음껏 행복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사함을 잊지 않고 보답하려 하는 그 자세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와 달리 이소라는 참 많이 아파 보였습니다. 물론 그녀 역시 마음은 여유로운 듯했어요. 꼴찌를 해도 괜찮다면서, 워낙 훌륭한 가수들과의 경연이니까 기분나쁠 것은 전혀 없다면서 인터뷰하던 모습도 그랬거니와, 선곡 자체에서부터 그녀가 순위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무려 2천여명이 집결한 야외무대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고음 위주의 폭발적 무대를 선보여야 할 터인데, 그녀가 선택한 이현우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는 너무도 잔잔한 발라드였으니까요. 게다가 편곡된 노래는 원곡보다도 더욱 호젓하고 잔잔했습니다.

이소라의 노래를 듣는 동안 "너무 아프고 쓸쓸하면 눈물조차 흘릴 수 없다"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었습니다. 하우스밴드와 코러스의 화려한 도움들을 모조리 마다하고, 오직 피아노 하나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이소라의 깊은 목소리에서 그런 것이 느껴졌습니다.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슬픔 그 자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짙은 슬픔의 정서가 가득 담겨져 있는데, 정작 눈물은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담담한 표정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휘저을 뿐이었습니다. 

지금의 이소라를 보면서야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녀가 한때는 상당히 뚱뚱하고 육중한 체격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가수'에서 하차하던 수개월 전의 모습과 비교해도 지금은 더욱 말라서 볼까지 움푹 패인 듯 보이는군요. 게다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머리까지 삭발해 놓은 바람에 그녀의 모습은 더욱 파리하고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실제로도 이소라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호주 공연에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단지 한 곡의 노래를 부르고 몇 마디의 인터뷰만 했을 뿐, 그 외의 자리에는 전혀 참석하지 못했으니까요. 심지어 순위를 발표할 때도 매니저 이병진이 그녀의 자리에 대신 앉아 있었을 정도입니다.

무엇이 이소라의 몸과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하는 걸까요? 언젠가 그녀는 "내 인생에는 더 이상의 사랑이 없기를 바란다"는 식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려워서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서 말이지요... 독신의 연극배우 김지숙은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아직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사랑을 기다린다면서, 이제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뜨고 싶다는 말을 하던데, 그녀에 비해 훨씬 젊은 이소라는 왜 "이젠 내게 사랑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걸까요? 도대체 얼마나 아픈 사랑을 겪고 지나왔으면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걸까요?

"어두웠지만, 나는 알 수 있었어... 그대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그대 곁을 이제 떠나는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댈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대만을 사랑하는 걸... 잊을 수는 없지만...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처절하게 노래하는 이소라는 그대로 슬픔의 여신이었습니다. 슬픔이 극도에 달하니 오히려 기이한 희열감마저 느껴지더군요.

제게는 무엇보다 강렬했던 이소라의 무대가 JK김동욱의 밋밋했던 '상록수'보다도 뒤처져서 최하위를 차지했다는 건 좀 어이가 없었지만, 어차피 그녀 본인이 순위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으니 저도 상관없습니다. 깊어가는 이 가을, 가슴 깊이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게 해 준 슬픔의 여신 이소라에게 감사하며, 부디 그녀의 심신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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