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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한 폭의 수채화같던 지원과 종석의 스쿠터 여행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한 폭의 수채화같던 지원과 종석의 스쿠터 여행

빛무리~ 2011. 10. 2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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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제23회에서 이적은 처음으로 '미래의 아내' 될 사람의 '손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고편에서부터 지대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였죠. 설마 벌써 드러내려는 건가? 그건 너무 김병욱답지 않은데? 그래도 혹시나 하고 시청했지만, 역시 헛된 기대는 금물이었습니다. 윤계상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서 방문한 이적은, 무려 5명이나 되는 여자의 손맛을 골고루 보게 되었거든요. 무슨 막장드라마는 아닐 테니까 유부녀 윤유선은 제외한다 해도, 가능성 있는 후보가 무려 4명이나 되었습니다.

용돈을 뜯어내려고 어깨를 안마해 준 수정이(크리스탈)의 얄미운 손맛, 자신의 치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하려고 이적의 입을 틀어막다가 손가락을 밀어넣어 버린 백진희의 짭짤한 손맛, 하이파이브를 하려다가 이적의 뺨을 철썩 때려버린 박하선의 매운 손맛, 그리고 솜사탕을 먹여주는 김지원의 달콤한 손맛까지... 이렇게 되면 힌트는 전혀 없는 셈입니다. 이적의 아내가 누구일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기대를 걸었던 만큼 배신감마저 느껴지는 낚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쪽의 에피소드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은근히 센티멘탈한 여고생 김지원은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자, 기타와 카메라를 메고 혼자 스쿠터 여행을 떠나려 하는데, 출발하려던 집 앞에서 안종석과 마주쳤지요. 운동만 했던 탓에 공부의 기초가 없다는 이유로 가족들한테 온갖 구박을 받던 종석은 집을 떠나고 싶어 넌더리를 치던 참이라, 지원에게 부탁하여 그녀의 스쿠터 여행에 동참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김지원의 카메라에 찰칵찰칵 담기는 사진들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이제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11년의 무르익은 가을 풍경이 담겼고, 아직 세상을 모르는 어린 선남선녀의 순수했던 한 때가 담겨 있었습니다. 사고뭉치 종석이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는 모습도 사진 속에서는 꽤나 멋지군요. 또한 가냘픈 소녀 김지원이 풀밭에 앉아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기타를 치는 모습과 그 맑은 목소리는 그대로 빠져들 만큼 매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종석이의 느닷없는 행동이 분위기를 와장창 깨부수고 마네요. 그 곳까지 데려와서 바람쐬게 해준 것만도 고마운 일이건만, 뻔뻔하게 김지원의 스쿠터와 지갑까지 낚아채서 달아나려고 했으니까요. 구박받는 집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야 백 번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 있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의기양양하게 도망가려던 안종석은 몇 미터 달리지도 못한 채, 김지원이 내던진 딱딱한 감 열매에 뒤통수를 얻어맞고는 스쿠터와 함께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망가진 스쿠터 때문에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그들은, 티격태격 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우정을 쌓아 갑니다. 배가 고프다면서 함께 닭을 잡기도 하고, 히치하이킹을 해서 트럭을 얻어 타기도 합니다. 트럭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김지원이 묻습니다. "왜 자꾸 집을 나가려고 그러는 건데?" 그러자 안종석은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말해도 너는 모른다..." 하긴, 공부 잘하는 모범생 지원이로서는 구박받는 열등생 종석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겠지요. 하지만 김지원은 종석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게, 난 정말 모르겠다. 가족들하고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 그거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릴지도 모르는데!"

슬프게도 사람들은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릅니다. 떠나 보내고 난 후에야 알게 되지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가 되어버린 김지원은 벌써부터 그 가혹한 진실을 꿰뚫고 있었던 겁니다. 지원이가 그토록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이제 지나가 버리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놓치지 않고, 모든 순간을 간직할 수만 있다면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하는 소녀의 마음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의 또 다른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김지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종석의 표정은 무언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댄스댄스댄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은 34살의 글쓰는 남자였는데, 우연히 13세 소녀 유키를 만나 아주 독특한 우정을 맺게 되지요. 유키는 나이에 비해 매우 성숙하고 시크한 매력을 지녔는데, 남자 주인공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15살이었다면 분명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 안의 감정을 어쩌지 못해, 지독히 불행해져 있었을 거다..."

저의 추측대로라면 안종석은 머지않아 김지원을 짝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김지원의 매력은 순진한 종석이를 빠져들게 하고도 남을 만큼 강력해 보이거든요. 하지만 안종석은 절대 김지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것이고, 대책없이 끌려가는 자신의 마음을 억제하지 못해 무척이나 괴로워질 것입니다. 종석이 같은 풋내기한테 마음을 주기에는 김지원의 내면이 너무나 성숙하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30대 중반의 윤계상이 그녀와 훨씬 더 잘 어울립니다. 반드시 윤계상은 아니더라도, 그 정도쯤은 되는 남자라야 김지원을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았던 김지원과 안종석의 스쿠터 여행은, 이렇게 또 한 줄기의 가슴 아픈 사랑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청춘이란 원래 그런 거죠. 시리도록 아름답지만, 견뎌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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