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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동급생 성희롱? 초반부터 독하다, 김병욱의 칼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하이킥3-짧은다리의역습

'하이킥3' 동급생 성희롱? 초반부터 독하다, 김병욱의 칼날!

빛무리~ 2011. 9. 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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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3 - 짧은 다리의 역습'의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얼마나 더 독해지려고 초반부터 이렇게 심한 설정들이 등장하는지, 나중을 생각하면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설 지경입니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김병욱 PD의 칼날은 더욱 날카롭게 벼려진 것 같습니다. 

사실 '지붕뚫고 하이킥'도 처음부터 만만치 않게 독한 작품이었지요. 어린 자매는 어느 날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모질게 내던져졌고, 아홉살배기 어린 신애는 전쟁고아처럼 비참한 몰골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걸어다녔습니다. 언니 세경의 손을 놓쳐서 잠시 떨어지게 되었을 때, 계속 울면서도 거리에서 눈에 띄는 음식만 있으면 몽땅 주워먹고 다니던 신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남의 집 대문 앞에 배달되어 놓여 있던 1000ml 짜리 우유를 꿀꺽꿀꺽 단숨에 들이키고 빈 통만 제자리에 놓아두고는 곧바로 다시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며 길을 걸어가는데, 한편으로는 그 철없는 행동이 우스우면서도 어찌나 불쌍한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순재 할아버지네 집에 식모살이 더부살이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신애를 향한 동갑내기 해리의 온갖 텃세와 구박이 시작되었습니다. 해리가 세차게 신애의 뺨을 후려치는 장면에서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서로 뺨을 때리고 맞는 연기는 이제껏 드라마나 시트콤을 통틀어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으니까요. 실제로는 충분히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드라마에서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독하다 싶어서 다른 사람들이 미처 건드리지 못했던 부분들을, 김병욱 PD의 칼날은 종종 대수롭지 않다는 듯 거침없이 후벼파곤 했습니다.

'지붕킥'의 경우는 중간 부분에서의 전개가 너무 어이없었기 때문에, 저는 리뷰를 쓰면서 혹평도 많이 했었습니다. 김병욱의 작품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실망도 컸습니다. 하지만 중간이 그렇게 비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어떤 풍랑에도 개의치 않고, 애초의 계획대로 꿋꿋이 고집스런 결말을 내는 것을 보면서, 제가 했던 혹평들이 좀 후회스럽더군요. 그래서 결심하기를 이번 작품에는 섣부른 혹평을 쏟아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언뜻 석연찮은 부분들이 보인다 해도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 이면에 담긴 뜻을 깊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1회부터 '박하선 속옷 노출'이라는 단어를 검색 순위에 올려놓았던 모자이크 기법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습니다. 별 뜻 없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그랬지만, 박하선이라는 캐릭터의 허당스런 면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거였다고 저는 애써서 좋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치마가 뒤집혀질 정도로 최대한 낭패스럽게 넘어지는 모양을 보여주면 아무래도 시청자의 뇌리 속에는 그 캐릭터가 좀 더 강렬하게 인식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2회에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민망한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박하선이 넘어지는 모양새쯤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동급생 성희롱이었는데, 그 역시 실제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싶었지만 브라운관에서 그렇게까지 리얼하게 표현된 장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화면상으로 별다른 노출은 없었지만 그 느낌이 너무 적나라해서 "저래도 되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두 명의 남학생이 한 여학생의 휴대폰을 빼앗아 들고 문자메시지를 소리내어 읽으며 놀려댑니다. 남자친구와 주고받은 닭살스런 문자인 듯한데, 그 여학생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휴대폰을 빼앗으려 하지만 남학생들은 돌려주지 않고 점점 더 심하게 웃어대며 조롱합니다. 그 때 주요배역 중 한 명인 김지원이 등장합니다. 김지원의 실제 나이는 스무 살이지만 극 중에서는 이들과 같은 학급에 다니는 여고생이군요. 지원은 히히덕거리는 남학생의 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휴대폰을 빼앗아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남학생들은 화가 나서 험악하게 지원을 위협합니다. "야, 공부 좀 잘한다고 선생님들이 예뻐해 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냐?" 지원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아니, 잘 보이는데..." 더욱 약이 오른 남학생들은 그녀가 걸어갈 때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는데, 호되게 넘어지면서 짧은 교복 치마가 뒤집혀 속옷이 드러났던 모양입니다. "야, 팬티 보인다, 팬티!" 한 소년이 손가락질하며 외쳤고, 다른 소년은 허리를 굽혀 넘어져 있는 김지원의 엉덩이를 응시하면서 "아, 정말 보인다" 하고 신나게 웃어댑니다.

하지만 김지원은 역시 무표정하게 일어서더니 그들을 돌아보며 말합니다. "팬티 봐서 좋아? 한 번 더 보여줄까? 내일은 곰돌이 팬티 입고 올 건데... 기대해!"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남학생들은 김지원의 자리로 득달같이 달려와 어제 한 약속을 지키라고 졸라댑니다. 지원은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서 말합니다. "그래. 약속 지킬게, 따라 나와" 남학생들은 좋다고 펄펄 뛰면서 복도로 따라 나갑니다. "잘 봐! 꼭 한 번 뿐이니까" 한 명의 남학생이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말합니다. "찍어도 돼?" 지원은 쿨하게 승낙합니다. "좋을 대로!"

김지원이 자신의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치켜올릴 듯한 자세를 취합니다. 두 남학생은 눈을 부릅뜨고 그녀의 하체에 시선을 고정하고 기다립니다. 그 중 한 명은 촬영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 장면의 느낌이 어찌나 리얼하던지... 저는 부들부들 떨릴만큼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 다음 장면은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김지원은 멋진 발차기 솜씨로 단숨에 두 남학생의 코피를 터뜨리고 말았지요. 치마를 입고 하이킥을 날렸으니 나름대로 약속(?)은 지킨 셈인지, 아니면 반바지를 입어 철통 방어를 하고 있었는지는 화면에 안 나와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 장면은 명백히 고대생 성추행 사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같은 학급에서 함께 공부하며 지내 온 동기 여학생에게 어쩌면 그럴 수가 있었을까 싶지만, 엄연히 현실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지요. 그 끔찍한 사건은 아직도 완벽히 해결되지 않고 진흙탕 싸움을 반복하고 있으며, 가해자 측의 파렴치하고도 뻔뻔한 대응으로 인해 피해 여학생은 2차, 3차의 거듭된 상처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김병욱의 시트콤 속에서는 그 피해자가 시원스레 하이킥을 날림으로써 복수라도 할 수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도 못하군요.

그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다고 가정할 때, 대부분의 여학생은 김지원처럼 대담하게 행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남학생들 앞에서 속옷이 노출된 자체를 몹시 창피하게 느낄 것이고, 못된 남학생들은 그녀의 연약한 반응을 즐기며 두고두고 조롱거리로 삼을 수도 있겠지요. 그럴 때마다 여학생은 반복된 수치심을 느낄 것이고 2차, 3차의 계속된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김지원의 하이킥은 그 장면 자체만 놓고 보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역시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참 서글프게도 성폭력이나 성희롱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가 철저히 보호되며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지요. 그렇다 보니 쉬쉬하며 겉으로 모두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학교 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일지 모릅니다. 고등학교, 중학교는 물론 초등학교도 안전 지역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김병욱 PD는 그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숨어있는 문제들을 겉으로 드러나게 합니다. 그리고 김지원의 당당한 대응 방식을 그려냄으로써, 여학생들로 하여금 그런 상황에서 연약해지지 말고 더욱 강인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날카로운 칼날로 계속 후벼파다 보면, 비뚤어진 사회 분위기도 조금씩은 쇄신되어 갈지 모르지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나라 여성들도 독일을 비롯한 서양 여성들처럼, 성희롱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는 기가 팍 죽어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 그 즉시 당당하게 소리치며 마음껏 하이킥을 날릴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요. 신고를 해봤자 자기만 더 손해일 거라고 생각하며 쉬쉬하는 게 아니라,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두려움 없이 신고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백발의 이적이 '짧은 다리의 역습'이라는 책을 발표하는 그 때쯤에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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