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공주의 남자' 홍수현, 안타까운 전작의 그림자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공주의 남자

'공주의 남자' 홍수현, 안타까운 전작의 그림자

빛무리~ 2011. 8. 4. 06:15
반응형




경혜공주(홍수현)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현재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입니다. 남녀 주인공인 세령(문채원)과 김승유(박시후)는 마음속에 담아두고 사랑을 키워가던 사람과 이별해야만 하는 아픔을 견디는 중이지만, 제게는 그들보다 경혜공주의 고통이 훨씬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원래 경혜공주는 병든 아버지 문종(정동환)의 간절한 부탁을 받고, 어린 남동생(세자, 훗날의 단종)의 앞날을 지켜주기 위해 우의정 김종서(이순재)의 며느리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부마로 낙점되었던 김승유는 수양대군(김영철)의 마수에 걸려 공주를 희롱했다는 누명을 쓰고 참수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그 바람에 김종서는 아들의 목숨의 구하기 위해 수양에게 무릎을 꿇고 정치에서 물러나고 말았으니, 이제 쇠약한 문종의 곁에는 최후의 바람막이조차 사라진 셈입니다.


사실 김종서의 속셈은 일단 자신이 물러남으로써 수양대군을 안심시켜 놓고 그의 등 뒤에서 세자를 지킬 수 있는 버팀목을 만들겠다는 것이지만, 현재 그 계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문종과 김승유 뿐입니다. 김승유는 부친의 명을 받들어 자신이 그 버팀목이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막을 모르는 경혜공주로서는 답답할 뿐이지요.

한편 수양대군은 삭탈관직되어 쫓겨난 김승유를 대신할 경혜공주의 부마로, 몰락한 명문가의 후손인 정종(이민우)을 선택합니다. 문종으로 하여금 가장 힘없는 집안에서 사위를 맞아들이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자기 딸이 시집가는데 의견 한 마디도 강력하게 내세우지 못할 만큼, 동생 앞에서 쩔쩔매는 문종은 너무도 나약해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참 불만입니다. 실제로 문종은 병약하기는 했지만 결코 그 성향이 나약하거나 무능한 임금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경혜공주의 심경이 얼마나 착잡할지는 불을 보듯 훤합니다. 원치 않는 혼사일지언정 아버지와 남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치르겠다 결심했던 것인데, 이제는 부왕에게 아무런 힘도 보태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는 수양 숙부의 간교함을 알게 되고 나서는, 친하게 지내던 사촌누이 세령과의 사이도 서먹해졌습니다. 게다가 세령이가 김승유와 더불어 궐 밖에서 온갖 해괴한 짓을 벌이고 다니는 바람에 이 모든 사건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으니, 더 이상 예쁘게 볼 수가 없습니다. 어려서 생모를 잃은 경혜공주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한 사람조차 없습니다.

어떤 설렘도 기쁨도 없는 혼례식이 시작되고 무심한 눈초리로 신랑의 얼굴을 힐끔 보는데, 이럴수가! 얼마 전 세령과 옷을 바꿔 입고 생애 처음 궐 밖에 나갔을 때 마주쳤던 그 한량 건달같은 작자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얻어터져서 피투성이가 된 채 허겁지겁 그녀의 가마 속으로 뛰어들던 추레한 모습이며, 자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자마자 삽시간에 정신줄을 놓고서는 헤벌레 쳐다보기만 하던 그 멍청한 표정들이 떠오르니, 이처럼 기막힌 일이 또 없습니다. 아무런 기대감도 없는 결혼이긴 했지만, 설마 그토록 못난 자가 부마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겠지요. (사실 정종은 허술해 보여도 의외로 속이 깊고 선량하기 이를데 없으니 제가 매우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다만 경혜공주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거라는 말입니다..^^)


설상가상 혼례식을 마치자마자 부왕 문종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겨우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의식 없이 자리에 누웠으니, 이렇게 되면 왕의 권력은 고스란히 수양대군에게로 넘어가고 맙니다. 숙부의 날선 발톱 앞에 보호막도 없이 놓여진 어린 세자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 수양대군은 문종의 침상 곁에 앉아서 공주와 세자를 잘 보살피겠노라며 가장 인자로운 얼굴로 뻔뻔한 연기를 합니다. 경혜공주는 그 곁에서 증오심에 불타는 눈으로 수양을 노려보고 있지만 현실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무엇 하나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그녀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숙부의 기세에 겁먹은 듯한 세자와 달리 경혜의 당차고 당돌한 눈빛은 공주로서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부마 정종은 훗날 단종을 복위시키려다가 역모죄로 죽임을 당하고 경혜공주는 순천의 관비로 전락하게 되지만, 관아의 사령들이 노역을 시키려 하자 "비록 죄가 있어 관비가 되었지만, 나는 왕의 딸이다" 라고 당당히 호령하며 노역을 거부했다지요. 모든 기반을 잃고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서슬 퍼런 그녀의 기품에 감탄하며, 사령들도 더 이상은 노역을 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홍수현의 썩 괜찮은 사극 연기는 그러한 경혜공주의 캐릭터를 잘 살려내고 있다 생각합니다.



반면에 문채원은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껏 다른 드라마에서는 문채원이 연기 못한다는 느낌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줄곧 어색하게 굳은 표정과 국어책 읽는 대사톤으로 일관하고 있군요. 5회가 지나도록 전혀 발전의 기미가 없으니 이러다가는 발연기의 지존으로 등극할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드라마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어서 배우들의 연기력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보려 했는데, 오히려 지난 회보다 더욱 심하게 국어책을 읽고 있는 문채원의 대사를 들으니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다죠..;;

그건 그렇다 치고, 저는 경혜공주의 분노한 표정과 눈빛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드라마의 캐릭터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얼마 전에 종영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 홍수현이 맡았던 악역 '유소란'입니다. 꼬박 챙겨본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재방송 등을 통해서 볼 때마다, 너무나 전형적이고 설득력 없는 유치한 악역이어서 좀 짜증스러웠던 캐릭터였지요. 그런데 홍수현의 연기 내공이 아직은 자신을 버리고 캐릭터와 완전히 일치시켜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못하다 보니, 수양대군을 노려보는 경혜공주의 얼굴 위에 공아정(윤은혜)을 노려보던 유소란의 얼굴이 엇비슷하게 겹쳐지는 것이었습니다.


경혜공주의 비분강개한 마음은 당연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인데, 친구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유소란의 철없는 얼굴이 느닷없이 겹쳐지니, 몰입에 상당히 방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건 저의 개인적 느낌입니다. '내거해'라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았던 것도 아니고, 안 보신 분들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을 통해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배우에게 있어 작품과 캐릭터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입니다. 연기력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작품을 고르는 안목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악역이라 해도 공감할 수 있는 멋진 악역이었다면, 다음 작품에서 예전 캐릭터의 그림자가 언뜻 비친다 해도 특별히 해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유소란이라는 캐릭터는 정말 최악이었거든요. 그와 같이 대본에서부터 철저히 망가진 캐릭터는 홍수현이 아니라 김명민이라도 살릴 수 없습니다. 혹시 김명민 정도로 연기 내공이 받쳐 준다면 다음 작품에서 또 완전한 변신이 가능하니까 타격이 적겠지만, 그렇지 못한 연기자들은 출연작을 결정할 때 헛다리를 딛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군요. 현재 경혜공주를 표현하는 홍수현의 연기에는 별로 흠잡을 곳이 없는데도, 너무 허접했던 전작의 그림자 때문에 약간은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