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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오연수, 과도한 분장이 망쳐버린 악역 변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계백

'계백' 오연수, 과도한 분장이 망쳐버린 악역 변신

빛무리~ 2011. 7. 26.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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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느낌이 상당히 좋습니다. '계백'은 '선덕여왕' 이후로 주춤했던 사극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삼국통일 후 승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는 한때 찬란했던 백제의 영광을 무참히 짓밟았고, 삼천궁녀의 낭설 등으로 갖가지 흠집내기의 표적이 된 의자왕은 우리나라 역대 망국 군주 중에서도 최악의 임금으로 알려졌지만, 숨겨졌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백제의 역사는 최근 재조명을 받고 있는데, 과연 그 시절의 이야기를 얼마나 흥미롭고 공정하게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퓨전사극 '다모'를 집필하여 드라마 폐인 시대를 이끌었던 정형수 작가와 '주몽', '선덕여왕'을 연출하며 삼국시대 사극의 새 장을 열었던 김근홍 PD가 '계백'에서 손을 잡았습니다. 김근홍 PD의 드라마 배경은 고구려에서 신라로 이동하더니 최후에는 백제에 안착했군요. 저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주인공이 계백 장군보다 의자왕이었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어쨌든 백제 말엽의 가장 억울하고도 애달픈 역사가 이제 브라운관에서 비장하게 펼쳐질 예정입니다. 긴박감 넘치는 첫 회를 시청하고 나니 무척 설레면서도 벌써부터 가슴이 아려 옵니다.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설화에 기반을 두고 출발합니다. 정사(正史)에는 선화공주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실존 여부가 확실치 않으나, 드라마를 만들면서 이토록 흥미진진한 소재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죠. 무왕과 선화공주의 맏아들이었던 의자왕은 신라 왕실을 외가로 두었던 탓에 정치적 입지가 약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왕위 계승에 가장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당대의 세도가인 사택씨 가문이었습니다.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에는 무왕의 정실부인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씨의 딸로 기록되어 있지만, 드라마 '계백'에서는 선화공주를 왕비로, 사택비를 후궁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사택비(오연수)는 드라마 초반에 악역의 중심축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백제순혈주의를 내세우는 그녀는 자신의 아들 교기(翹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위제단'이라는 암살조직을 만들어 선화왕비와 의자왕자를 암살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요. 그러나 사택비가 파견한 위제단의 자객들은 왕후와 왕자를 호위하는 무진(차인표) 장군에 의해 번번이 몰살되고, 백제 왕궁에는 피바람이 그치지 않습니다. 무진 장군은 무왕과 같은 스승에게서 동문수학한 사제이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계백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1회의 엔딩에서 무진 장군과 사택비가 과거에 연인 사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사택비는 무진을 따로이 불러내 제안하기를, 왕비와 왕자에게는 다른 호위관을 붙일 것이니 그대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사택궁으로 와서 편히 지내라고 합니다. 무진이 이유를 묻자 사택비는, 옛 정인으로서 그대의 안위를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군요. 무진이 모두 잊은 일이라며 돌아서자 사택비는 "그대는 잊었는지 몰라도, 나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정을 준 자는 그대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라고 과감히 고백합니다.

사택비의 진정한 의도가 무진의 안위를 지키는 게 아니라 왕비와 왕자를 암살하는 데에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인연은 사실이겠지요. 사택비는 집안의 권유에 의해, 그리고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자 무왕의 후궁으로 들어갔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옛 연인이었던 무진의 그림자가 항상 남아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긴 무진 장군의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거든요.

차인표는 무진의 캐릭터가 극 초반에만 등장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 3월부터 말타기와 검술을 배우면서 철저한 준비를 거듭해 왔다지요. 더구나 계곡물 속에서 무예를 수련하는 한 장면을 위해 단기간에 '무사의 몸'을 만들겠다 스스로 결심하고 2개월 동안 닭가슴살 위주의 식사를 하며 엄청난 양의 헬스 트레이닝을 했답니다. 오래 전부터 정형수 작가의 러브콜을 받아 왔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함께하지 못했던 차인표는, 이번 기회에 작가의 믿음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극 초반에 내가 첫 테이프를 잘 끊어주고 싶다"고 말했다는군요.

돌이켜 보니 '주몽'에서도 주인공의 아버지로 짧게 등장하는 해모수 역할의 허준호가 초반에 엄청난 카리스마로 인기몰이를 했었는데, 예상컨대 무진의 인기는 해모수를 능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폭포 아래서 검술을 수련하며 드러낸 상반신의 조각 몸매도 그렇지만, 냉정과 열정이 수시로 교차하는 그 표정 연기 등이 일품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남자라면, 야망을 쫓아 그를 떠나간 여인 사택비라 해도 말끔히 잊을 수는 없었겠지요. 더구나 무왕은 선화왕비에게만 관심을 쏟을 뿐, 신하들의 압박에 의해 맞아들인 후궁 사택비에게는 진실한 애정을 주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나 무진과 함께 극 초반을 이끌어가야 할 사택비 역할의 오연수는 약간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무슨 '패왕별희'를 연상시키는 과도한 분장을 하고 나왔는데, 특히 눈꼬리가 한껏 위로 치켜올라간 눈화장은 너무 어색하고 보기에 부담스럽더군요. 지금껏 주로 선역을 맡아 왔던 그녀이기에 악역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잘 모르는 걸까요? 그렇게 대놓고 이마에 '나쁜 년'이라고 써놓는다 해서 멋진 악역이 되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혼자 튀는 강렬한 분장은, 사택비의 존재 자체를 부자연스럽게 만들어서 몰입을 방해합니다.

왕실의 여인으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이니, 자칫하면 '선덕여왕'의 '미실'과 상당부분 이미지가 겹치게 될 거라는 부담감도 상당히 작용했을 듯합니다. 하긴 고현정의 미실이 워낙 대박을 쳤기 때문에, 오연수는 잘 해야 본전일 뿐 미실을 넘어서지는 못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일단 사택비의 캐릭터 자체가 미실처럼 매력적이거나 비중이 높지도 않으니까요. 배우로서의 자존심이 있으니 시작부터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오연수는 천사표에서부터 팜므파탈까지 다양한 배역을 너끈히 소화하는 좋은 연기자이건만, 이번에는 얼굴을 너무 이상하게 만들어 놓았을 뿐 아니라 연기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서 지나치게 무겁고 강하기만 한 사택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전형적인 악역'은 결코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적절히 완급을 조절하며 때로는 약하고 달콤한 모습도 보여줄 수 있어야 그 양면성의 매력에 사람이 빠져들게 되는 거지요. 일례로 옛 정인이었던 무진을 따로 불러내 대화하는 장면에서까지 그렇게 무서운 얼굴과 딱딱한 태도로 일관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청순한 얼굴과 연약한 태도를 드러내며 무진을 은근히 유혹하려 했다면, 그거야말로 진정 소름끼치는 악역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무진은 이미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여인으로 변해버렸는지를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예전의 사랑스런 모습을 다시 보게 되면 짧은 순간이나마 눈빛이 흔들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부디 초반의 컨셉이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을 오연수가 빨리 깨닫고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리기를 바랍니다. 그녀만 잘해 준다면 '계백'은 얼마든지 '선덕여왕'을 능가하는 대박 작품으로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극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네요. 성인 연기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초반을 담당하게 될 아역들도 모두 명품 연기자들로 캐스팅되었으니, 앞으로의 흥미진진한 전개를 더욱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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