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팔봉 빵집 (8)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다소 억지스런 면이 없지 않았으나 어쨌든 우려했던 것에 비해서는 무난히 해피엔딩을 맞이한 '제빵왕 김탁구' 였습니다. 쇼킹한 반전은 없었군요. 저의 예측은 대부분 맞아들어갔습니다. 김탁구(윤시윤)는 거성식품 대표의 자리를 거절하고 팔봉 빵집으로 돌아가서 양미순(이영아)과 결혼하여 평생토록 행복한 빵쟁이가 되었습니다. 그 대신 구일중(전광렬)의 맏딸 구자경(최자혜)이 거성의 새 주인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맞는 자리를 찾아갔으니, 아무런 불만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결말을 맞이했다 하겠습니다. 유난히 탈이 많았던 러브라인도 급격히 정리되었습니다. 김탁구는 구마준(주원)과 신유경(유진)의 결혼 이후로 쿨하게 마음을 접었는지, 그 동안 모른척 하던 양미순의 마음을 단숨에 받..
착한 편과 나쁜 편으로 정확히 갈라져서 싸우기 시작한 잔혹동화 '제빵왕 김탁구' 23회에서는, 첫째로 팔봉 선생(장항선)의 죽음이라는 슬픈 사건이 발생했고, 둘째로는 거성의 주인과 안주인이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는 우스꽝스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팔봉 선생의 이야기는 따로 언급하도록 하고, 우선은 급격히 널을 뛰면서 다른 쪽으로 이동해 버린 구일중(전광렬)과 서인숙(전인화)의 캐릭터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황당한 것은 갑자기 '전형적인 아버지상'으로 변모한 구일중이었습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구마준(주원)을 향해 "너를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너에게서는 어떤 변명도 듣고 싶지 않다!" 라고 차갑게 단죄하며 참회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리고 "두 번 다시..
양미순(이영아)의 사랑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보니 이 귀여운 아가씨의 사랑은 김탁구(윤시윤)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었네요. 두 사람은 마치 쌍둥이 같았습니다. 포옹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샴쌍둥이 같았다고나 할까요.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잠시 후에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은 스스로 파멸해가는 구마준(주원)의 이야기부터 잠시 해 보려 합니다. 저는 한동안 구마준을 동정심과 애틋함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나, 이제 거의 놓아버린 상태입니다. 지난 주에 탁구가 설빙초를 먹는 것을 막기 위해 "안 돼!" 하고 소리치며 허겁지겁 달려갈 때, 그리고 탁구가 설빙초 한 숟가락을 삼키는 것을 보며 절망적인 눈빛으로 주저앉을 때 "그래, 너도 사실은 탁구를 해치고 싶지 않았던 거야." 라고 생각했었지요...
수요일의 19회 방송에서 한승재와 서인숙이 마주 대하던 장면이었습니다. 구일중이 탁구를 만났으며 그 아이를 회사로 불러들이려 한다고 한승재가 보고하자 서인숙이 소리쳤죠. "당신, 대체 무슨 일을 이 따위로 하는 거야? 어떻게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그렇게 두고 보기만 하는 거야?" 한승재는 대답했습니다. "그냥 두고 본 적 없어요. 나도 안해 본 짓 없이 다 해봤다구." 서인숙은 절규합니다. "그런데 왜 그 아이가 아직도 우리 인생에 끼어들어, 왜?" 그 때 한승재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나보다 그 녀석의 운이 더 질기고 강했을 뿐이에요. 아무리 위협하고 모함해도 모질게 제 운명의 끈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녀석이라구요. 지금 마준이는 그런 녀석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거요. 아시겠어요?" ..
서인숙과 한승재를 제치고 구일중이 최고의 악역이라는 제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올렸던 포스팅 '나쁜 아버지 구일중, 비극을 부르다' 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반대 의견을 접했었지요. 그러나 19회를 시청한 후 저는 원래의 생각을 더욱 굳혔을 뿐 아니라, 구일중은 '나쁜 아버지'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악역으로 규정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인물임을 깨달았습니다. 서인숙과 한승재가 드러나 있는 함정이라면, 구일중은 교묘히 숨겨져 있는 함정입니다. 어느 것이 더 위험한지를 극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예시입니다. 물론 서인숙과 한승재의 악행을 합리화하거나 감싸 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착한 척 하는' 구일중의 행각을 볼 때마다 제 가슴 속에서 치밀..
구일중은 참으로 나쁜 아버지입니다. 14년만에 재회한 아들 탁구(윤시윤)와 끌어안고 폭풍 눈물을 흘리는 전광렬의 연기는 더할 수 없는 명품이었으나, 그 순간에도 제 마음은 차갑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오히려 속으로 "탁구야, 속지 마!" 라고 되뇌었다죠. 탁구의 인생 중 12년을 허비하게 만든 장본인은 사실 조진구(박성웅)가 아니라 구일중이었습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장 자애로운 아버지인 척하고 탁구를 끌어안고 있으니 제 눈에는 가증스럽게만 보였습니다. 그는 탁구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욕심을 냈던 것입니다. 천부적인 후각을 타고나서 제빵 사업에 큰 도움이 될만한 아들 탁구를 온전히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 모자간에 생이별을 시키려 했던 것이지요. 아무래도 후계자 자리에 앉힐 장남이..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방송 전에는 K방송사의 '버리는 카드' 라는 말까지 돌았었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도 별로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단 시선을 끌만한 톱스타가 존재하지 않았지요. 타이틀롤을 맡은 윤시윤은 이제 겨우 시트콤에서 '그 집 손자'인 고등학생 역할을 해본 것이 연기 경력의 전부일 만큼 신인이고, 뮤지컬배우 출신의 주원은 아예 브라운관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며, 이영아는 너무 오랜만의 컴백이고, 유진은 히트작 하나 없는 무관의 요정이었습니다. 특히 라이벌 구도의 두 남자 주연이 너무 신인급이라, 안정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실험적인 작품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요. 그러나 '제빵왕 김탁구'는 아마도 천운을..
1. 김탁구 (윤시윤) 나에게 아버지는 그리움이다. 아버지가 없는 줄 알고 어머니와 둘이 살았던 청산에서도 나는 언제나 아버지가 그리웠다. 엄마만 있으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었지만, 사람들이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려도 괜찮았지만, 가끔씩 다른 녀석들이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 누군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내게도 아버지가 있다면 저렇게 해주실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도 아버지가 생겼다. 내 아버지는 그 커다란 공장에서 산처럼 수북히 쏟아져 나오는 빵들의 주인이었고, 대궐같이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임금님이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나를 그 집에 남겨두고 홀로 청산으로 돌아갔다. 나는 외로웠다. 이제껏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