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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드라마 '못난이 주의보' 내에서 나인숙(이일화)의 캐릭터는 꽤나 독특하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흔한 인물일지도 모르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눈꼴이 실 정도로 열심히 튀는 중이다. 매사에 명철하면서도 너그러운 아버지 나상진(이순재) 회장, 수도승에 가까울 만큼 소탈하고 인내심 깊은 오빠 나일평(천호진) 사장, 부드럽고 순박한 성품으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하는 남편 신태일(김일우) 전무... 경제력으로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할 사람들이 인품까지 고결하니 나인숙의 가족들은 굉장히 비현실적인 무결점 캐릭터들이다. 그 와중에 나인숙 홀로 지독히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데다가 머리까지 나쁘고 참을성 없는 다혈질성격이니 대체 어찌 된 일일까? 같은 피를 나누어 받고 수십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가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다..
노인정 같은 곳에서 홀로 되신 남녀 노인분들이 만나 교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젊은 사람들은 흔히들 가볍게 생각한다. 답답한 일상을 달래주는 하나의 취미 생활처럼, 그저 무료한 대낮에 만나서 쌍화차를 마시며 손주들 이야기나 주고받는 그런 관계일 거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청운의 꿈을 간직하거나 미래를 설계할 시기도 아니고 체력도 약해져 버린 나이에 연애를 시작한다 해서, 어찌 젊은 날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겠는가 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늦은 나이일수록 일단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이것이 내 삶의 마지막 사랑'이라는 생각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가족과 전재산을 버릴 만큼 올인할 수도 있으며, 간혹 삼각관계가 형성되면 거친 몸싸움이나..
오랜 꿈이었던 완구회사 '콩콩'에 무급 인턴으로 취직한 나진아(하연수)는 첫 출근을 하던 날 아침부터 불길한 기운에 휩싸인다. 엄마한테서 옮은 감기몸살 때문에 컨디션도 최악이었고, 던져주는 음식을 입으로 받아먹는 데는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던 '물개' 나진아가 놀랍게도 인절미를 받아먹지 못하고 떨어뜨렸던 것이다. 결코 순탄치 않을 그녀의 회사 생활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젊은 사장 노민혁(고경표)은 신입사원들에게 강연을 한답시고 줄줄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내가 하버드에 있을 때 말이야. 두 번이나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두 번 다 내가 거절했어? 왜냐고? 내가 내 점수에 만족을 못했거든.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점수를 가지고 장학금을 받는다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어. 자존심은..
드디어 김병욱 월드가 다시 열렸다. 그 이름도 특별한 '감자별 2013QR3'! ... 요즘 세상에 케이블 TV를 신청하지 않은 특별한 집이라 본방사수를 할 수 없다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만, '하이킥3' 이후로 2년만에 다시 만나는 김병욱 월드는 어쨌거나 반갑기 그지 없다. 무엇 때문일까?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스텐레스 김의 세상에 이처럼 빠져들게 된 것은, 포복절도할 웃음 속에 스며든 눈물 때문이었을까? 이번에는 최대한 비극적 요소를 억제하고 많은 웃음을 주겠노라 했지만, 나는 그래도 김병욱이 그려내는 진한 눈물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리고 1회를 시청한 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나진아(하연수)와 같은 인물을 여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상, 결코 눈물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을 것임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 시대의 핫한 예능이라 해도, 아무리 인기 폭발이라 해도 나는 할 말을 해야겠다. 솔직히 나는 처음부터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제작진은 그 부분을 프로그램의 정체성이라고 인식했는지 전혀 고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나영석 PD는 아직도 '1박2일' 시절의 생고생 프로젝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평균연령 76세의 어르신들이라는 사실보다도, 이 출연자들을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는 장면을 뽑아내려는 욕망이 앞설 뿐, 그들을 편안히 모시려는 생각은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제작진의 생각이 맞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그들도 이 여행의 컨셉이 어떤 것인지를 다 알면서 승낙했을 테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꽃할배들..
한동안 갈등이 없어서 지루했던 '못난이 주의보'에 갈등 요소가 살아나면서 다시 재미있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공준수(임주환)와 나도희(강소라) 커플에게 닥친 위기는 상당한 수준인데요. 과거에 공준수가 나도희의 새엄마 유정연(윤손하)과 연인 사이였음이 밝혀지면서 불어닥친 풍파가 예상보다 훨씬 크군요. 저는 단지 공준수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는 유정연이 반대하고 나설 거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김비서(임성민)가 나서서 극심한 불화를 조장하고 거기에 현혹된 도희 아버지 나일평(천호진) 사장이 유정연과 공준수의 현재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습니다. 의심의 내용인즉 10년이 넘도록 유정연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공준수가 의도적으로 나도희에게 접근했고, 옥탑방에 들어와 살게 된 것 ..
역시 120부작은 무리였던 걸까요? 명품의 향기를 풍기던 '못난이 주의보'가 늘어지는 전개로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별다른 스토리의 진전 없이 이곳 저곳에서 줄창 모두들 연애 놀음만 하는데, 그 연애 놀음에서 아무런 설렘이나 매력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죠. 우선 공준수(임주환)와 나도희(강소라) 커플부터 말해 본다면, 공준수가 자신의 살인 전과를 고백하고 나도희가 그것을 받아들인 후부터 이들의 러브라인은 예전의 설렘과 애틋함을 거의 잃었습니다. 제 생각엔 두 사람의 이미지에 어울리지도 않는 반말을 시작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화근인데요. 계속 존대하면서 약간은 서로를 어려워하는 모습도 남겨 두었더라면 지금처럼 긴장감 제로의 상태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보거든요. 갑자기 나도희가 "연인끼리 반말하는 건 ..
한 때 명실상부한 국민예능이었던 '1박2일', 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나영석 PD가 tvN에서 제작한 '꽃보다 할배'에 대중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라는 4명 꽃할배의 이름만으로도 그 존재감이 벅찬데, 43세의 품격있는 청년(?) 이서진이 짐꾼으로 전격 합류하면서, 케이블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그 화제성은 공중파의 모든 예능을 가뿐히 뛰어넘었죠. 평균 연령 76세에 달하는 노년의 배우들을 주인공 삼아 만들어진 유럽 여행 버라이어티라니, 발상부터가 퍽이나 신선하여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들의 첫번째 배낭여행지는 프랑스 파리였군요. 폭발적인 화제성에 비해 1~2회를 시청한 저의 소감은 뭐 그냥 그렇다는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에 있었는데요. 파리는 불과..
원래는 같은 시간대의 경쟁작을 보느라 놓쳤었는데, 워낙 평판이 좋길래 뒤늦게 보기 시작했다가 푹 빠져버린 드라마입니다. 1회부터 20회까지 한꺼번에 정주행한 후, 21회부터는 본방사수를 하고 있죠. 주중 일일드라마인데다 방송 시간대가 이른 편이라 꼬박꼬박 챙겨 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정말 보기 드물게 아름답고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라 시청한 후의 만족감이 남다른 편이에요.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 중 '가문의 영광' 이라든가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등은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현재 집필 중인 '못난이 주의보'는 작가 특유의 따뜻한 휴머니즘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작품이라 여겨지는군요. 솔직히 제목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와 닿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사랑스런 못난이를..
'더킹 투하츠'는 보면 볼수록 참 신기한 드라마입니다. 가장 비현실적인 설정하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섬뜩할 정도로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죠. 현재 대한민국은 입헌군주제 국가도 아니고 북한과의 관계도 드라마 속에 그려진 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언제 어디선가 현실 속에서 본 듯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느낌을 주는 드라마는 처음이에요. 보통 드라마 속 인물은 그 성향과 특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일관된'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그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를 시청자들이 뚜렷이 인식해야 몰입이 수월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캐릭터가 굉장히 단순합니다. 착한 놈은 항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