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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옥중화'의 옥녀(진세연, 아역 정다빈)는 매우 특별하다. 필자의 개인적 체험으로는 이제껏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본 적 없는 여주인공이다. 특히 '대장금'을 비롯한 이병훈 감독의 전작들에 어떤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는지를 돌이켜 보면 더욱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새롭고도 흥미진진한 실험이다. 사실 '옥녀'와 같은 캐릭터는 착하고 올곧은 여주인공의 대척점에서 끈질기게 괴롭히는 악녀의 포지션에 훨씬 적합하기 때문이다. '옥중화' 1~2회를 시청한 후 옥녀에게서 떠오른 이미지는 장금(이영애)이 아니라 금영(홍리나) 또는 최상궁(견미리)이었다. 고작 열 다섯 살의 어린 소녀임에도 옥녀는 매우 영악스럽고 정치적인 기질을 지녔다. 그녀는 절대 속마음을 겉으로 내뱉지 않고, 상대방의 귀에 꿀처럼 달게 느껴..
108부작으로 조기종영이 결정된 이후 '제왕의 딸 수백향'은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애초 예정이던 120회에서 무려 12회가 축소된 만큼 스토리 진행이 빨라지는 것은 당연지사라 하겠으나, 요즘 같아서는 이토록 재미있고 수준 높은 작품을 시청률 때문에 조기종영한다는 사실이 그저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어중간한 밤 9시대의 드라마치고 10%를 넘기는 시청률이면 그리 낮은 편도 아닌 듯한데, 황금 시간대인 10시 타임의 수목드라마들도 현재 10% 내외의 시청률로 고만고만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굳이 '수백향'을 조기종영하면서까지 후속작을 빨리 내보내겠다는 방송사의 고집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진짜 수백향인 언니 설난(서현진)을 대신하여 공주 노릇을 하던 설희(서우)는 결국 정체가 ..
열심히 챙겨보던 드라마는 아니지만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종영을 앞둔 시점에서 생각하니 크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장희빈의 이야기는 이제껏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즐겨 차용되었지만, 등장인물들은 언제나 구태의연하고 전형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죠. 그나마 2000년대에 들어서는 야심찬 변화의 시도가 좀 있기도 했습니다. 김혜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7대 장희빈(2002년)의 경우, 초반에는 전형적인 악녀가 아니라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역시 문제는 시청률 부진이었습니다. 어차피 뻔한 내용인 줄을 다 알면서 또 '장희빈 드라마'를 선택한 시청자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악녀 장희빈'과 '선녀(善女) 인현왕후'의 첨예한 대결을 지켜보다가, 장희빈이 천벌을 받고 인..
초반의 기대는 제법 컸으나 갈수록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혹자는 '마의'의 시청률이 대박을 치지 못하고 어정쩡한 20% 언저리에서 머뭇거리는 이유가 이병훈 감독 특유의 클리세[사전적 의미는 Cliché(불) : 판에 박힌 듯한 문구, 진부한 표현(생각, 행동)이다. 클리세라는 단어는 드라마에서 늘 같은 이야기 또는 같은 대사 등이 반복될 때 사용된다.]에 시청자들도 이제는 지쳤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주인공('이산'의 정조는 예외)이 스스로의 놀라운 능력과 용기와 성실성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입지전적인 일대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마의'는 벌써 수많은 전작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 끌리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감독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드라마에서는 작가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영화 시나리오는 연출자인 감독이 직접 쓰는 경우도 많지만, 드라마 대본은 전문 드라마 작가가 아닌 이상 쓰기 어렵죠. 영화에서의 '스토리'가 영상미나 배경음악 등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드라마에서는 '스토리'가 작품 전체의 80% 이상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스토리의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며 예외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장르의 특성이 그러한지라 저는 드라마를 선택할 때 연출자보다는 작가의 이름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허준'과 '대장금'의 눈부신 대성공에 힘입어, 1944년생의 노익장 이병훈 감독은 이 ..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단어는 이제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중견가수나 연기자들 중에 고집스런 인물들은 자기의 분야에 올인하지 않고 이쪽 저쪽을 건드리는 사람들을 고운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이제는 가수로 데뷔해서 연기를 하는 것도, 배우로 데뷔해서 가수 활동을 하는 것도 낯설지 않은 것이 현실이에요. 몇 년 전부터는 '아나테이너'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습니다. 방송국의 직원으로서 월급을 받는 아나운서들이 전격적으로 예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죠. 회당 2만원 가량의 터무니 없는 출연료를 받으면서도 기꺼이 중노동에 몸을 바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급기..
유명 포털사이트의 메인에서 언뜻 이병훈 PD가 '대장금'의 이영애와 '동이'의 한효주를 비교한 듯한 기사의 제목을 보았습니다. 깜짝 놀라서 읽어보니 대략의 내용인 즉, "본인은 여자주인공이 밝아야 드라마가 산다고 생각하여 항상 적극적이고 밝은, 전문적인 여자를 그리고 싶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한효주가 유일하게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영애는 대장금 출연 당시의 나이가 30대 중반이었던 데다가 성격이 너무 차분해서,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여성 캐릭터의 밝은 모습이 생각만큼 표현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더군요. 글쎄, 최고의 전문가가 하는 말임에도 저로서는 거의 찬성할 수 없는 의견이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도 연극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실제 성격은 굉장히 내성적이고 낯..
지난 주에 종영한 '살맛납니다'의 뒤를 이어 MBC의 새 일일드라마 '황금물고기'가 첫 전파를 탔습니다. 솔직히 벌써부터 "자칫하면 막장이다" 라는 분위기를 솔솔 풍기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드라마의 대략적인 시놉시스를 미리 접하게 되면서, "아, 그래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어제 일부러 기다리고 있다가 첫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우선 첫 느낌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어요. (저는 스포를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즐기는 편이다보니, 이 리뷰에도 꽤 많은 스포가 들어가 있군요. 이제 막 시작되는 드라마에 처음부터 김빠지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여기서 접으셔도 좋습니다..^^) 1. 매혹적인 중견배우들의 유혹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었던 박상원이 '미워도 다시한번 2009' 에 출연..
"세상 어디에도 도망친 노비가 갈 곳은 없다!" 이것은 '추노'의 대사일까요? 아닙니다. MBC에서 새로 시작된 월화드라마, 이병훈PD의 사극 '동이'의 첫방송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요즘 '추노'라는 드라마에 한동안 빠져서 지내고 있던 터라, '도망친 노비'라는 익숙한 표현을 들으니 왠지 반가웠더랍니다..^^ 사실 '동이'에서 도망친 노비나 추노꾼들은 중요한 역할이 아닙니다. 그들이 잠시 등장한 이유는 이 드라마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검계(劍契)를 인상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함이었지요. 검계는 조선후기에 실존했던 조직으로, 학자에 따라서는 민중 저항운동 세력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단순한 반양반 세력으로 본다고 합니다. 폭력을 행동강령으로 삼으며 약탈, 살인 등을 일삼고, 스스로 자기 몸에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