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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대장금'과 '서동요' 이후 김영현 작가의 사극에 매료된 나는 '선덕여왕'과 '뿌리깊은 나무'를 시청하며 그녀의 필력을 극도로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엄연한 창작물이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요즘 시대에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고, 작품을 감상하다가 실제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 공부하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외국에 수출될 경우는 좀 더 오해의 소지가 많겠으나, 방영 전에 자막으로 '이 작품은 허구와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물로서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면 큰 문제는 되지 ..
MBC의 새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방송 전부터 여러모로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경성 스캔들'을 집필한 진수완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원작소설이 아무리 재미있다 해도 드라마로 변형시키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망작이 되기 십상인데, 진수완 작가라면 안심해도 될 듯 싶었거든요. '해를 품은 달'은 1년 전쯤 방송되어 인기를 끌었던 '성균관 스캔들'과 마찬가지로 정은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사극입니다. 하여 일각에서는 '해품달'을 가리켜 '경복궁 스캔들'이라 부르기도 하더군요..ㅎ저의 개인적 느낌으로는 '성스'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로열패밀리'에서 '공순호' 역할을 맡아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영애가 다시 한 번 강력한 악역으로 돌아왔습니다. ..
'도망자 Plan.B' 18회는 시종일관 긴박감이 넘치고 다이내믹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기막힌 반전도 숨어 있었죠. 시청률이 아쉬울 정도로 드라마의 내실은 정말 대박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압도적 존재감을 뽐낸 사람은 바로 악의 축 양두희(송재호)의 아들 양영준(김응수)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예전부터 이 인물이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언제나 양두희만 부각되었을 뿐, 그가 모든 가진 것과 인생을 올인하여 뒷받침하려 하는 그 아들의 실체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거든요. 정치인으로서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라는 것 외에는 말이죠. 대략 16회쯤부터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양영준은 언뜻 보기에 청렴한 정치인의 대명사 같았습니다. 카이(다니엘 헤니)에게서 자기 부친의 범죄 사실을 들었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어차피 그들의 혁명이 실패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허무할 거라는 예상은 솔직히 하지 못했습니다. 송태하의 수족같은 부하들이 모두 황철웅의 손에 추풍낙엽처럼 어이없이 쓰러져갈 때에도 설마 이것이 끝은 아니겠지 했었습니다. 송태하와 더불어 혁명군의 수장격이었던 조선비가 변절했을 때에도, 그 변절의 결과로 숨어있던 동지들이 모조리 잡혀들어갔을 때에도, 심지어 끝까지 남아서 활약하던 한섬이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을 때에도 설마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횃불인 송태하의 존재가 남아있는 한,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의 이미지와는 달리 더 이상 송태하가 완벽한 인간상이 아님을 충분히 알게 되었으나, 저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그를 믿고 있었..
대길이와 언년이가 아직 다시 만나지 못했을 때는 잘 몰랐습니다. 대길이가 그토록 언년이를 애타게 찾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불분명했으니까요. 가끔은 분노 같기도 하고, 얼핏 증오 같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 같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눈에 띄지도 않고 생사조차 불분명한 사람에게 그토록 자기 인생을 올인하며 집착하게 만든 것이 무엇일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그들이 재회하고 나서야 대길이의 인생을 중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겉으로는 분노와 증오를 드러냈지만, 차마 숨길 수 없던 그 눈빛의 애절함... 언년이에 대한 대길의 사랑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 정도로 절대적인 줄은 몰랐기에..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고...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일은 드디어 포문을 열며 실행되고... 이렇게 '추노' 역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궁극적으로 중점을 두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비뚤어진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서로를 미워할 수 없는 그들의 더없이 인간적인 화해와 사랑인지,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추노'는 두 가지를 다 그려내고 있으며, 어느 쪽에 더 비중이 있는지도 시청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최소한 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에 따라 결말이 주는 여운은 많이 달라질 듯 싶습니다. 1. 외유내강한 짝귀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포스팅의 주제와 직접적 연관은 없음에도, 짝..
다행히도 짝귀의 산채를 향해 엄습해 오던 어두운 그림자는 일단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황철웅이 목표로 삼고 있는 이대길과 송태하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지요. 원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산채는 들이치게 되겠지만, 그 가엾은 사람들이 속 편히 숨 쉬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하루이틀은 늘어난 셈입니다. 어느 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되어버린 언년이와 설화, 그리고 귀여운 원손 아기씨도 그 평화 속에서 며칠은 더 곱게 웃을 수 있겠네요. 1. 두 남자의 이상한 동행 "예전에는 얼굴을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더니만, 이제는 매일매일 보니까 아주 죽을 맛이야."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며 되뇌이는 대길이의 쓸쓸한 얼굴을 보니, 그 사내의 바보같은 사랑에 제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정말 그와 같은 사..
어쩌면 조선비의 변절은 벌써부터 명백히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의 속내가 개인적 탐욕에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송태하와 의견충돌로 갈등을 빚으면서,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던 조선비의 야욕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송태하와 조선비는 둘 다 뿌리깊은 양반의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지만, 그 방향은 여실히 달랐습니다. 송태하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대의명분이었지요. 언년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빛이 좀 바래기는 했지만, 송태하의 삶에 있어 가장 큰 목적은, 죽은 소현세자에 대한 충성으로 그가 남긴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반란을 일으키기보다는 현재의 세자인 봉림대군을 만나 뜻을 전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원손의 사면을 주청하고자 했..
요즘 드라마에서 악역의 위치는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원래 악역이란 시청자들에게 미움받는 존재였으나 이제는 별로 그렇지도 않지요. 오히려 강렬한 매력과 포스를 물씬 풍기며 주인공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는 악역이 많습니다.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도 원래는 주인공 덕만(이요원)과 대칭점에 놓이는 명백한 악역이었으나 그 엄청난 존재감은 주연을 뛰어넘어 사실상 '선덕여왕'을 미실의 드라마로 만들어 버렸었지요. 저의 개인적 견해로 '추노'는 명품 사극이긴 하지만 '선덕여왕'에 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역동적인 화면 구성이나 액션 등을 생각해 본다면 물론 '추노' 쪽이 앞선 부분도 존재하지만, 제가 가장 중점을 두고 시청하는 인물 심리면에서는 뚜렷하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큰 주모(조미..
"너는 항상 네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겠지. 그게 바로 내가 지금 너를 죽이려는 이유다." - '추노' 공식 홈페이지, '황철웅' 인물 소개 첫 문장 '추노'에는 황철웅이라는 이름의 악역이 등장합니다. 출중한 연기력의 배우 이종혁이 서늘한 눈빛으로 열연하고 있지요. 그에게서 매력적인 악역을 보고 싶었는데, 저는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그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그에게서 풍기는 어떤 비감한 분위기... 아무리 애를 써도 1인자가 되지 못하는 살리에르의 슬픔이랄까, 그런 면에서 적잖은 공감과 매력을 느끼시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고통이 그렇게까지 큰 것일까 하고 저도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송태하에게 특별히 원한을 가질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