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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구미호 여우누이뎐' 10회에서는 구미호(한은정)의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는 퍽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군요. 이것은 공포 드라마가 아니라 일종의 심리 드라마, 또는 추리 드라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공포물보다 추리물을 훨씬 더 무서워하는 독특한 경향이 있거든요. '전설의 고향'의 귀신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고, '스크림' 류의 영화에 나오는 연쇄 살인마도 끔찍하기는 하지만 크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아가사 크리스티 극장' 류의 추리물은 너무나 무서웠어요.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 뾰족한 칼날이 숨겨져 있는 느낌이랄까요? 서늘한 냉기는 끊임없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차츰 소리없는 공포는 깊어져 갑니다..
'구미호 여우누이뎐' 2회는 숨가쁘게 달렸던 1회에 비해 약간 평이한 전개를 보였지만,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연이와 초옥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정규 도령이 등장했군요. 고을 현감의 자제인 조정규는 수려한 외모로 뭇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의외로 순진하고 허당스런 면이 있어서 무척 귀여웠습니다. 윤두수(장현성)의 금지옥엽인 초옥(서신애)의 끊임없는 연서는 귀찮아 하면서도, 반딧불이를 잡으러 나갔다가 마주친 천민 소녀 연이(김유정)의 자태에 한 눈에 반해버린 정규는, 그녀 앞에서 한껏 폼을 잡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가 발을 헛디디며 개울에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모양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소녀 연이의 따뜻하고 순수한 반응은 정규 도령의 뻘쭘함을 단숨에 녹여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