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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염려했던 것처럼 팔봉 선생(장항선)이 하차한 후의 '제빵왕 김탁구'는 완전히 김 빠진 사이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쪽에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신유경(유진)이 있고, 한쪽에는 누구의 아바타인지 다 알고 있는데 괜히 어설픈 연막을 치는 조진구(박성웅)가 있습니다. 너무 뻔한 결말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지루함을 덜기 위하여 미스테리한 느낌을 가미한 듯한데, 솔직히 조진구가 김탁구를 배신하고 다시 한승재와 손을 잡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말이 나온 김에 조진구 쪽 이야기를 먼저 해보도록 하지요. 조진구는 박변호사와 더불어 구일중(전광렬)이 남겨 둔 탁구의 수호천사라 볼 수 있습니다. 김탁구(윤시윤)가 거성에 입성하여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초반에 강력한 버팀목이 되어 준 ..
'자이언트' 33회를 보면서 가장 섬뜩했던 장면은 전신마비가 되어 누워 있는 황태섭(이덕화)을 두고 그의 아내 오남숙(문희경)이 벌이는 범죄행각이었습니다. 이제껏 '드라마 속의 지극히 평범한 재벌 사모님'일 뿐 별다른 활약이 없던 오남숙은 최근 들어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요. 황태섭은 적자인 황정식(김정현)을 외면하고 서녀인 황정연(박진희)를 후계자로 삼았으며, 죽은 줄 알았던 이강모(이범수)가 살아 돌아오자 그에게 전재산의 반을 주겠다고 몰래 유언장을 수정했습니다. 시청자들의 눈에야 합당한 결정이었지만 오남숙의 입장에서는 남편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죽이려고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충격이었습니다. 오남숙이 이처럼 부각되니, 그와 비견되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은..
팔봉 선생(장항선)은 인상적인 죽음으로 하차하며 성공적인 캐릭터의 대미를 장식했고, 구일중(전광렬)은 시체놀이를 하면서까지 김탁구(윤시윤)를 지키려는 정의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꼼짝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데도, 어딘가 신비스런 기운까지 감돌면서 구일중 회장의 존재감은 역대 최고로 치솟는 중이네요. 파렴치한 구마준(주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랫동안 자기를 보좌하며 회사에 열성을 다했던 맏딸 구자경(최자혜)에 대한 배려심은 조금도 없이 모든 지분을 김탁구에게 넘기기로 한 부분에 대해서라든가 등등, 구일중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제가 쓰려는 내용은 그것이 아닙니다. 올해 초에 방송되었던 '추노'의 경우는 선이 굵은 남성 위주의 사극으로서 모든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이 미미했으나 별다른 거부감..
'신데렐라 언니'의 구대성(김갑수)이 '국민아빠' 였다면 '제빵왕 김탁구'의 팔봉 선생(장항선)은 '국민스승' 이라고 할만했습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젊은 주인공의 곁에서 더없이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며 인생의 멘토가 되어 주던 이 성스러운 인물들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가슴을 꽉 채워 주었지요. 이제 팔봉 선생이 불현듯 세상을 떠나고 보니 저절로 구대성의 서글펐던 최후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두 사람의 죽음은 그들의 삶 만큼이나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그래도 팔봉 선생은 구대성보다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구대성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아들처럼 아끼던 홍기훈(천정명)이었으나, 산소호흡기를 달고 병원으로 실려가던 엠블런스 안에서 구대성은 "괜...찮...다..."는 최후의 한 마디로 그를 용서했습니다. 팔봉 선생을..
양미순(이영아)의 사랑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보니 이 귀여운 아가씨의 사랑은 김탁구(윤시윤)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었네요. 두 사람은 마치 쌍둥이 같았습니다. 포옹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샴쌍둥이 같았다고나 할까요.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잠시 후에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은 스스로 파멸해가는 구마준(주원)의 이야기부터 잠시 해 보려 합니다. 저는 한동안 구마준을 동정심과 애틋함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나, 이제 거의 놓아버린 상태입니다. 지난 주에 탁구가 설빙초를 먹는 것을 막기 위해 "안 돼!" 하고 소리치며 허겁지겁 달려갈 때, 그리고 탁구가 설빙초 한 숟가락을 삼키는 것을 보며 절망적인 눈빛으로 주저앉을 때 "그래, 너도 사실은 탁구를 해치고 싶지 않았던 거야." 라고 생각했었지요...
구일중은 참으로 나쁜 아버지입니다. 14년만에 재회한 아들 탁구(윤시윤)와 끌어안고 폭풍 눈물을 흘리는 전광렬의 연기는 더할 수 없는 명품이었으나, 그 순간에도 제 마음은 차갑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오히려 속으로 "탁구야, 속지 마!" 라고 되뇌었다죠. 탁구의 인생 중 12년을 허비하게 만든 장본인은 사실 조진구(박성웅)가 아니라 구일중이었습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장 자애로운 아버지인 척하고 탁구를 끌어안고 있으니 제 눈에는 가증스럽게만 보였습니다. 그는 탁구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욕심을 냈던 것입니다. 천부적인 후각을 타고나서 제빵 사업에 큰 도움이 될만한 아들 탁구를 온전히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 모자간에 생이별을 시키려 했던 것이지요. 아무래도 후계자 자리에 앉힐 장남이..
팔봉 선생의 인증서를 받기 위한 경합이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1단계 시험의 결과부터 말해 본다면 양미순(이영아)과 김탁구(윤시윤)는 통과, 고재복은 탈락, 그리고 구마준(주원)은 '일단 보류' 였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가 가장 궁금해했던 것은 누가 통과하고 누가 탈락하느냐보다, 경합의 과제였던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 과연 어떤 빵이겠느냐 하는 점이었지요. 현실이라면 탈락할 수밖에 없을 주인공 김탁구는 극적으로 통과하게 될 것이고, 현실적으로 통과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구마준은 오히려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임을, 드라마의 법칙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시청자라면 누구나 예측 가능했으니까요. 김탁구가 혼자 중얼거렸던 "배고플 때 먹는 빵이 가장 배부른 빵이잖아!" 라는 대사에 착안하여 어떻게든 팔봉..
큰 기대는 없었으나 그저 호기심에 '고사2'를 보고 왔습니다. 전편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능했지만, 역시 수작(秀作)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여 저의 예상은 엇나가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과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시끄럽게 질러대는 비명소리 및 끼익거리는 음향효과 때문에 눈과 귀가 상당히 피로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허술한 플롯 때문인지 공포는 함량미달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간을 늘리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지 않아서 1시간 30분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마무리한 것이 오히려 깔끔하게 느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별 내용 없이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영화를 더 이상 길게 본다는 것은 너무 지치는 일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와중..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방송 전에는 K방송사의 '버리는 카드' 라는 말까지 돌았었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도 별로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단 시선을 끌만한 톱스타가 존재하지 않았지요. 타이틀롤을 맡은 윤시윤은 이제 겨우 시트콤에서 '그 집 손자'인 고등학생 역할을 해본 것이 연기 경력의 전부일 만큼 신인이고, 뮤지컬배우 출신의 주원은 아예 브라운관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며, 이영아는 너무 오랜만의 컴백이고, 유진은 히트작 하나 없는 무관의 요정이었습니다. 특히 라이벌 구도의 두 남자 주연이 너무 신인급이라, 안정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실험적인 작품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요. 그러나 '제빵왕 김탁구'는 아마도 천운을..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별로 신기하지도 않은 시대이지만, 여전히 가수 출신 연기자를 보는 시선은 전체적으로 곱지만은 않습니다. 가수 활동을 통해 얻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남의 밥상에 너무 쉽게 숟가락을 올려놓는 듯한 느낌, 그래서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다 바쳐 연기 공부를 하며 오랫동안 꿈을 키워 온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는 듯한 느낌이 그 못마땅한 시선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사실 완전히 부인할 수도 없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진은 이제 그런 시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져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990년대 말의 인기 걸그룹 SES 출신의 그녀는 이미 연기 활동을 시작한지가 거의 10년이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 동안 꽤 많은 작품에 주연으로 등장하여 괜찮은 연기력을 보여 주었으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