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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이 드라마는 코믹 첩보물이다. 소지섭의 연기에서는 언제나 진지함과 순수함이 느껴진다. 심지어는 코믹 연기를 하고 있을 때도 그의 눈빛은 진지하고 순수하다. 정인선의 연기는 맑고 생기발랄하면서도 아역 출신답게 오랜 경력에서 비롯된 깊이가 묻어난다. 그러니 김본(소지섭)과 고애린(정인선)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좋게 시청할 수 있는 드라마이다. 게다가 애린의 쌍둥이 남매 준수(김건우)와 준희(옥예린)는 또 얼마나 귀여운 생명체인가! 또한 '킹캐슬 아줌마 정보국(KIS)'을 결성하여 활약중인 심은하(김여진), 봉선미(정시아), 김상렬(강기영) 또한 각각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중이다. 현실 속에서는 그런 조직이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들처럼 이웃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진심으로 걱정하며 최선을 다해..
최근 나영석 PD의 예능 '숲 속의 작은 집'에서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던 소지섭과 '으라차차 와이키키'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여배우 정인선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가 9월 27일 첫방송 되었다. 원래 수목드라마로 편성되었지만 추석 연휴 기간이라 수요일에는 특집 방송이 전파를 탔던 관계로, 목요일에 잇달아 4회를 방송하며 야심찬 출발을 알렸던 것이다. 과연 소지섭과 정인선은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륜이 채워질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는 소지섭의 눈빛과, 아역 출신으로 만만찮은 경력을 지닌 정인선의 풍부한 표정 연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긴장과 슬픔과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첫방송에서부터 너무 뚜렷하..
드디어 15년 전 납치 사건의 비밀이 밝혀졌다. 주중원을 납치해서 잔인한 추리소설을 읽히며 난독증에 걸리게 한 사람은 차희주였고, 폭발하는 차량에 갇혀 비참하게 죽은 사람은 차희주의 쌍둥이 언니인 한나 브라운이었다.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을 구분하지 못했던 주중원(소지섭)은 이제껏 차희주(한보름)를 생각할 때마다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납치범의 정체가 자신임을 밝히며 "미안하게 됐어, 주중원!" 하고 말하던 순간의 얼음장 같은 모습과, 불타는 차에 갇혀 죽어갈 때의 애달픈 눈빛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증오해야 할지 가여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다. 주중원이 사랑했던 착한 한나는 죽었고, 질투심에 눈 멀어 납치와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차희주는 뻔뻔하게 살아 ..
나에게 있어 홍자매표 남주인공은 아주 서서히 데워지는 크고 두꺼운 국냄비 같다. 나쁜 남자 스타일을 선호하는 여성들은 홍자매의 남주인공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들지만 내 취향은 그 쪽이 아닌지라, 당최 몰입이 안 되면서도 꾹 참고 시청하다 보면 나중에는 좀처럼 끓지 않는 국냄비를 바라보며 짜증내는 심정이 되고 만다. 나도 남들처럼 열광하고 싶은데 안 되니까 답답한 거다. 그러다가 기적처럼 내 마음에도 까칠한 남주인공의 매력이 폭발하면 그 순간의 희열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홍자매의 모든 작품에서 그와 같은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두어야 한다. 그런데 '주군의 태양'에서는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종영을 불과 4회 앞둔 시점이라 ..
로코믹호러, 올 여름 홍자매는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장르의 드라마를 선보였다. 로맨틱코미디와 호러가 결합하면 과연 어떤 색채의 드라마가 탄생할까, 짐작조차 하기 힘든 과감한 시도였다. 그렇게 시작된 16부작 드라마 '주군의 태양'은 어느 덧 10회를 넘어섰고, 대중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운 편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고 스토리도 재미있다면서 이 드라마를 찬양한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이 작품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소지섭은 예전보다 더욱 멋있어졌고, 공블리 공효진의 연기도 언제나처럼 일품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로맨틱코미디와 호러의 분위기가 잘 어우러지지도 않았고,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와 귀신들의 에피소드는 생뚱맞게 따로 노는 것만 같았다. ..
만약 '주군의 태양'에서 그 멋진 소지섭이 찌질남으로 변신한다면 시청자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그 해맑은 이종석이 스토커로 변신하여 싫다는 이보영을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녔다면 시청자는 용서할 수 있었을까? 어느 정도의 못난 모습, 인간적으로 봐줄 수 있는 차원이라면 용납 가능하겠지만 이건 아니다. '오로라 공주' 공식 홈페이지 대문에는 아직도 오로라(전소민)와 황마마(오창석)를 주인공으로 한 포스터가 걸려 있다. "너무 다른 두 완벽 남녀의 운명적 사랑 스토리!" 라는 표제도 아직은 유효한 모양이다. 그러나 황마마는 이미 주인공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설설희(서하준)의 등장 이후로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을 걸어 왔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남아 있었는데, 74회에서 최후의 마..
사실상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런 부분이긴 합니다. 만약 이 드라마의 주제(?)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면, 저의 색다른 의견에 불쾌감을 느낄 사람도 그만큼 많을 테니까요. 하지만 같은 드라마를 보아도 사람마다의 생각과 감상이 다를 수 있듯이,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체험한 삶 자체의 내용과 느낌은 사람마다 천양지차일 수 있는 법이죠. 심지어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났어도 어떤 사람에겐 세상이 분홍빛인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짙은 회색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가난과 부모의 학대에 시달려 온 아이라고 해서 모두 불량 청소년이 되는 것도 아니며, 사이코패스 등의 끔찍한 범죄자가 늘어나는 것도 어떤 사회적 현상 때문이라고만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네, 저는 예전부터 항상 그랬습니다. 물론 사회적 문제도..
'유령' 11~12회에서는 이 드라마의 절대악이며 모든 범죄의 배후조종자인 조현민(엄기준)의 과거가 드러났습니다. 김은희 작가의 전작 '싸인'의 절대악이었던 강서연(황선희)은 선천적 사이코패스에 가까워 사람을 죽이는 데에 타당한 이유가 없었지만, 조현민은 전혀 다르게 설정되었군요. 물론 지극히 냉혹하며 무차별적이라는 면에서는 강서연과 별 차이가 없고, 그 스케일에 있어서는 강서연을 능가하는 수준이므로 사회에 전체적으로 끼치는 해악은 조현민이 훨씬 크다 하겠지만, 그를 희대의 악마로 만들어 버렸던 13년 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니, 저는 조현민을 탓하기에 앞서 이 썩은 사회와 인간의 추악함에 치를 떨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1999년, 세상은 한 건의 빅뉴스로 떠들썩해졌으니, 바로 세강그룹 회장 조경문이 무..
김은희 작가 특유의 방식에 따라 '유령'은 두 갈래의 사건 진행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최초의 사건과 관련된 난제를 계속해서 풀어나가며 드라마의 큰 줄기를 잡고, 한편에서는 자잘한 사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열해서 보여주는 것이죠. 전작인 '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의 사건은 가수 서윤형 살해사건으로 듀스 김성재의 실화를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였는데, 그 사건의 범인이었던 강서연(황선희)의 배경이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그녀를 쉽게 체포할 수 없었지요. 그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점점 복잡하게 꼬여가는 와중에 직접적 연관이 없는 다른 사건들이 발생했고, 주인공 윤지훈(박신양)과 고다경(김아중)은 그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도 첫번째 사건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국 윤..
원작이 있는 드라마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각시탈'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원작에 나타난 주인공의 초반 캐릭터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르의 특성상 책(만화 포함)과는 확실한 차별화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어느 시간보다도 경쟁이 치열한 현재 수목드라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책은 언제든 읽고 싶을 때에 집어들어 읽으면 되는 것이지만, 드라마는 마음에 닿지 않는다 싶으면 곧바로 채널을 돌려버릴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본방사수하지 못한 드라마는 내용을 알 수가 없게 되고, 다음 번 수요일에는 자연스레 앞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는 다른 드라마 쪽으로 채널을 맞추게 되지요. 그러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