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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솔직히 내게는 박근형과 윤여정의 이름만으로도 망설일 필요가 없는 영화였다. 원래부터 무척 좋아하는 배우들이기도 했지만 특히 최근 나영석 PD의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를 통해 새롭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명품 연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기회를 어찌 마다할소냐! 더욱이 여타 작품들에서 노인 배우들의 역할이란 젊은 주인공들의 부모나 조부모 자격으로서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데 반해, '장수상회'에서는 그들이 어엿한 멜로의 주인공들로서 2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을 꽉 채우게 될 터이니, 개봉 첫날 영화관에 들어설 때부터 마음은 기분좋은 설렘으로 콩닥거리고 있었다. '장수상회' 관람 후의 느낌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먹먹함'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가슴 한 쪽이 따스하면서도..
드디어 비정한 엄마 서은하(이보희)를 향한 백야(박하나)의 한맺힌 복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압구정 백야' 29회를 보고 있자니 임성한의 과거 히트작 두 편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데자뷰 현상이 느껴졌다. 우선 '인어 아가씨'의 아리영(장서희)은 외도하느라 가족을 버린 아빠 때문에 엄마와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자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쳐 냉혹한 복수를 전개했는데, 현재 백야의 모습은 복수의 상대가 아빠에서 엄마로 바뀌었을 뿐 그 내용면에서 아리영과 별로 다르지 않다. 또한 '하늘이시여'에서는 여주인공 자경(윤정희)이 친엄마인 영선(한혜숙)의 의붓아들 구왕모(이태곤)와 결혼하면서 족보가 황망하게 꼬여버리는데, 현재 백야가 선택한 복수의 방법 역시 친엄마의 의붓아들을 유혹하는 것이라 그 포맷이 대동소이하다. 결..
장서희의 처연한 모습으로 흰빛 화면을 가득 채웠던 '뻐꾸기 둥지' 예고편은 많은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인어 아가씨', '아내의 유혹' 이후 복수극의 여신이라 불리는 그녀가 다시 복수극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일말의 설렘마저 느끼게 했다. 그런데 이번에 장서희는 복수의 주체가 아니라 그 대상이다. 복수를 하는 쪽이 아니라 당하는 쪽인 것이다. 독한 연기를 할 때조차 여리고 상처받은 이미지로 가슴 저리게 하는 배우인데 설상가상 억울하게 처절한 복수를 당하는 비련의 여인이라니, 이제 '뻐꾸기 둥지'는 안방극장에 넘치는 눈물을 예고한다. 그런데 문제는 복수의 타당성이다. 타당한 복수는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고, 시청자는 복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쾌감을 얻는다. 장서희를 복수극의 여신으로 만들어 ..
여행의 진짜 재미는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우연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가우디의 건축물을 관람하고 세비야 성당을 방문하고 콜럼버스의 묘를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는 추억은 엉터리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속아 스페인의 골목 골목을 누비던 일일지도 모른다. 끝없이 좌회전과 우회전을 반복해서 외쳐대는 내비게이션의 낭랑한(or 뻔뻔한) 목소리는 점점 멘붕 상태가 되어가는 이서진의 표정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폭소를 선사했다. 이순재 할배가 혼자 길 찾느라 고생할 때는 몹시 걱정되고 속이 상했는데, 젊은 이서진의 생고생은 아주 맘 편히 감상할만한 꿀재미였다. 스페인의 전통 예술 플라멩코는 매우 열정적인 공연이었다. 집시들의 한이 담겨있는 춤과 노래와 기타연주라는데, 나의 개인적 취향에는 ..
3월 7일에 방송된 '꽃보다 할배-스페인' 제1편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 독해진 나영석 PD 때문에 더욱 재미있어졌다는 의견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이건... 나로서는 참 놀랍기 그지없는 시청자 반응이다. 물론 나도 '1박2일-시즌1'을 시청할 때는 제작진과의 기싸움(또는 게임)에서 패배한 멤버들이 지독히 골탕을 먹거나 생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재미있어 했다. '1박2일' 멤버들은 모두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었으니 하루쯤 쫄쫄 굶는다 해서, 한겨울에 텐트치고 야외취침쯤 한다 해서 크게 걱정할 일도 없었다. 특히 비빔밥 한 숟가락 얻어 먹겠다고 혈안이 되어 좌충우돌하던 강호동의 모습은 달콤한 꿀재미였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꽃보다 할배'를 시청하면서 가장 큰 재미를 느끼는 순간은 H4 어르신들이 객지에서 ..
'꽃할배'와 '꽃누나'는 확실히 달랐다. '꽃보다 할배'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편안함과 유쾌함이었다면, '꽃보다 누나'를 바라보는 마음에는 시종일관 묘한 애틋함이 감돌았다. 평균 연령으로 따지면 '꽃누나'가 '꽃할배'보다 훨씬 젊으니 더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가 있을 것도 같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덧 지나 온 인생을 차분히 관망하는 경지에 접어든 '꽃할배'들의 자세에서는 여유로움이 묻어났지만, 아직 치열한 삶의 중심부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40대 중년 여배우들의 자세는 적잖이 불안해 보였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에 윤여정과 김희애는 단호히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는데 67세 윤여정의 답변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 같았지만, 47세 김희애의 답변은..
'원더풀 마마'와 '금 나와라 뚝딱'이 동시에 종영하면서, 그 후속작들도 동시에 포문을 열었다. 지난 주까지는 '금 나와라 뚝딱'이 전해주는 나름의 감칠맛에 빠져 있었지만, 새로운 출발에는 왠지 공평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면서 두 작품 모두를 시청했다. 일단 첫 느낌을 솔직하게 말해 본다면, 내 생각에는 '열애'가 단연 우세하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 기준에 의한 생각이므로, 앞으로의 시청률 추세는 가늠하기 어렵다. 각설하고, 나는 지금부터 내 판단의 이유를 순차적으로 설명해 보려 한다. 나는 우선 캐릭터의 이름이나 작품의 제목이 너무 유치하게 설정되면 보기가 싫어진다. '금 나와라 뚝딱'은 그 제목 때문에 처음부터 보기가 싫었다. 차츰 재미있다는 호평이 들려오면서 호기심이 발동하..
아무리 이 시대의 핫한 예능이라 해도, 아무리 인기 폭발이라 해도 나는 할 말을 해야겠다. 솔직히 나는 처음부터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제작진은 그 부분을 프로그램의 정체성이라고 인식했는지 전혀 고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나영석 PD는 아직도 '1박2일' 시절의 생고생 프로젝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평균연령 76세의 어르신들이라는 사실보다도, 이 출연자들을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는 장면을 뽑아내려는 욕망이 앞설 뿐, 그들을 편안히 모시려는 생각은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제작진의 생각이 맞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그들도 이 여행의 컨셉이 어떤 것인지를 다 알면서 승낙했을 테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꽃할배들..
이것은 명백히 황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쟁 이야기지만, 전쟁 속에도 사랑은 피어나게 마련이다. 더욱이 사랑은 모든 예술작품의 영원한 테마가 아니던가? 치열하고도 복잡한 전쟁 스토리에 집중하다가도 처음부터 예고된 야수와 공주의 사랑이 언제 시작될까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총 24부작의 드라마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좀처럼 사랑의 불꽃은 타오르지 않았다. 장태주(고수)와 최서윤(이요원)은 형식적이나마 결혼을 했고 무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은 방을 쓰며 살아왔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엔 오직 황금의 제국을 향한 욕망뿐인 듯, 서로를 향한 인간적 관심은 아예 차단된 상태로 줄곧 냉랭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종영까지 불과 5회를 남겨둔 시점에서, 공주님의 오만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가 긴장감 넘치고 재미는 있는데, 경제 방면의 지식이 바닥 수준인 저로서는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드라마더군요. 그래도 월화요일의 본방 선택은 여전히 '황금의 제국'입니다. 전체적인 퀄리티도 가장 높은 듯하고, 일단은 신랑이 유일하게 몰입하며 신나게 보는 작품이라서 함께 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초반에 큰 기대를 품었던 '굿 닥터'는 아예 대놓고 교훈적인 주제를 내세우며 눈물과 감동을 유도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매 회마다 꾸준히 반복되니 점차로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도리어 불편해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7월까지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덕분에 참 행복했었는데, 종영 후의 아쉬움을 달래줄 매혹적인 드라마는 아직도 나타나질 않고 있네요. 수목요일의 '주군의 태양'과 '투윅스'도 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