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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1. 어머니의 작별 인사 '닥터 진' 11회에는 유독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과 명대사가 많았습니다. 진혁(송승헌)과 홍영래(박민영)와 흥선군(이범수)은 좌의정 김병희(김응수)의 계략에 빠져 대왕대비(정혜선)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는데, 죄목은 너무 큰 데다가 누명을 벗을 길은 막막하니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요. 영래의 어머니(김혜옥)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딸자식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보고자 옥리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사정하여 간신히 옥사 안으로 들어오는데, 모진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된 영래를 마주하자 회한의 눈물을 금치 못합니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줄 걸 그랬구나!" 고분고분히 말을 듣고 평범한 여인으로 살았더라면 이토록 험한 운명에 처..
허연우(김유정)가 그토록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후, 열정적이던 세자 이훤(여진구)은 냉소적인 성격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굴레를 체감했기에, 깊은 슬픔을 차가운 웃음으로 갈무리하며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자가 윤대형의 딸 윤보경(김소현)과 원치 않는 혼례를 치르던 날, 문득 하늘에서는 보슬비가 흩뿌리기 시작하는군요. "연우(煙雨)라는 너의 이름은 보슬비라는 뜻이냐?... 예쁜 이름이구나!" 그녀의 기억이 떠오르자, 눈 앞의 새신부는 아랑곳도 없이, 이훤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 그 빗방울을 받아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끝내 지켜주지 못했으니, 이훤은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연우는 죽어가면서도 그를 ..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오빠'라는 캐릭터는 아무리 잘났어도 거의 주변인에 그칠 뿐,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천일의 약속'에서 이상우의 캐릭터에 약간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 무리였더군요. '선덕여왕' 같은 드라마는 주연들만이 아니라 서브와 단역에 해당하는 캐릭터까지 모두 매력적으로 살려 주었지만 그것은 대본, 연출, 배우의 삼박자가 기막히게 맞아 떨어져서 발생된 예외적인 케이스였고, 대부분의 경우 가뜩이나 주인공 살리기에도 바쁜 제작진이 주변인 캐릭터까지 신경써 줄 여력은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드라마든 초반에는 상당 부분을 인물 소개에 할애하는데, 주변인 캐릭터에 이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해를 품은 달' 2회를 장..
MBC의 새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방송 전부터 여러모로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경성 스캔들'을 집필한 진수완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원작소설이 아무리 재미있다 해도 드라마로 변형시키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망작이 되기 십상인데, 진수완 작가라면 안심해도 될 듯 싶었거든요. '해를 품은 달'은 1년 전쯤 방송되어 인기를 끌었던 '성균관 스캔들'과 마찬가지로 정은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사극입니다. 하여 일각에서는 '해품달'을 가리켜 '경복궁 스캔들'이라 부르기도 하더군요..ㅎ저의 개인적 느낌으로는 '성스'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로열패밀리'에서 '공순호' 역할을 맡아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영애가 다시 한 번 강력한 악역으로 돌아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