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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영화 '쎄시봉'이 개봉도 하기 전부터 네티즌 평점테러에 시달리며 난항을 겪었던 이유는 여주인공 민자영의 젊은 시절을 맡은 여배우 한효주의 남동생 때문이었다. 부대 내 가혹 행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공군 김일병'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어질 만큼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는데, 한효주의 남동생이 그 사건의 가해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던 것이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급기야 가해자로 지목된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누나인 한효주가 유명인으로서 대신 사과하는 태도라도 보여야 하는데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 분노의 이유였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사과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보상을 받지도 못한 채 잊혀져가는 한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이 안타까워 한효주라도..
지금껏 오혜원(김희애)의 삶에 순수란 없었다. 오직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있었을 뿐이다. 그녀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진대,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초라하게 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욕망 때문이었는지, 음대 재학 시절 촉망받는 피아니스트 재원이었던 오혜원은 건초염 악화로 꿈을 접으면서부터 예고 동창 서영우(김혜은)에게 달라붙어 그 집안의 시녀가 되었다. 서한그룹 회장인 아버지 그늘에서 보호받으며 안하무인으로 살아 온 서영우는 걸핏하면 오혜원의 뺨까지 때리면서 모욕하지만, 그런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길 만큼 혜원의 가슴은 무디어진지 오래다. 상처받기 쉬웠던 예술가의 여린 감성은 어느 새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오혜원..
'꽃할배'와 '꽃누나'는 확실히 달랐다. '꽃보다 할배'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편안함과 유쾌함이었다면, '꽃보다 누나'를 바라보는 마음에는 시종일관 묘한 애틋함이 감돌았다. 평균 연령으로 따지면 '꽃누나'가 '꽃할배'보다 훨씬 젊으니 더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가 있을 것도 같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덧 지나 온 인생을 차분히 관망하는 경지에 접어든 '꽃할배'들의 자세에서는 여유로움이 묻어났지만, 아직 치열한 삶의 중심부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40대 중년 여배우들의 자세는 적잖이 불안해 보였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에 윤여정과 김희애는 단호히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는데 67세 윤여정의 답변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 같았지만, 47세 김희애의 답변은..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가 벌써 16회까지 방송되었음에도 시청률은 경쟁작 '황금무지개'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황금무지개'가 일주일 먼저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역전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김수현의 이름값도 이제는 그 효력이 떨어진 걸까? 등장인물 각각의 뚜렷한 개성과 치열한 심리 묘사도 여전하고, 칠순을 넘긴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통통 튀는 대사의 재미도 살아있건만, '세결여'가 김수현의 전작들 만큼 대중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주인공 오은수(이지아)의 캐릭터가 시청자와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김수현 드라마의 시청층은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중년 이상 시청자들의 몰입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반향이..
불과 이틀만의 눈부신 발전이었다. 이승기는 확실히 '짐'에서 '짐꾼'으로 진화하는 중이었고, 그 진화의 과정은 쉼 없이 돌아가는 카메라에 그대로 잡혀 생생히 전달되었다. 터키에서 본의 아니게도 살아있는 짐짝 노릇을 하며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던지, 크로아티아로 떠나는 날은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나 씻지도 않은 채 몇 시간이나 가이드북을 예습하며 심기일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무경험에서 비롯되는 실수들이 밤새워 공부한다고 단숨에 사라질 수는 없었다. 이승기는 크로아티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짐 날라주는 포터를 공짜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적잖은 돈을 날리고 말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맹한 모습을 보였으니 누나들의 믿음을 얻기란 아직도 머나먼 일이었다. 초보 짐꾼 이승기의 든든한 조력자는 역시 막내 누나 이미연이었..
터키에서의 첫 날, 짐이 되어버린 짐꾼 이승기의 고난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도대체 어느 만큼의 설정이 들어간 건지, 아니면 그게 전부 다 이승기의 본래 모습인 건지, 약간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이승기는 지갑과 여권을 물 새듯이 줄줄 흘리고 다녀서 누나들이 대신 챙겨주게 만들었고, 최선을 다해 정신을 바짝 차려도 모자랄 판인데 느닷없이 팽이에 정신이 팔려 혼자 노느라, 터키의 낯선 거리에 누님들을 방치해 두었다. 평소의 영민하고 사려 깊은 이승기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환전 등의 일처리를 위해 어디론가 갈 때는 분명히 말을 하고 가야 하는데 갑자기 휙 사라져서 남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일단 그렇게 사라진 후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었다. 지금껏..
'꽃보다 할배'의 성공에 탄력받아 그 어떤 예능보다도 큰 기대와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꽃보다 누나'의 첫 방송이 전파를 탔다.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동유럽 크로아티아에 이르는 여정인데, 첫 방송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까지의 준비 과정과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해서 좌충우돌 헤매는 장면들로 꽉 채워졌다. 드디어 여행을 좀 시작하나 싶더니만 곧바로 끝나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보다 누나' 1회는 기대치를 윗도는 웃음과 재미를 선보였다. 단연 최고의 포인트는 누나들을 모시고 '짐꾼'으로 출발했으나 얼마 못 가 '짐'으로 전락해 버린 이승기의 멘붕이었다. 물론 할배들을 모시고 다녔던 이서진도 초반에는 적잖이 헤매고 힘들어했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43세의 연륜과 경험으로 무장한 이서진..
'마이더스'는 참으로 복잡한 드라마입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이쪽저쪽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고 굵직한 비밀들이 밝혀지며 섬뜩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제발 이 복잡한 내용들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한 갈래로 합쳐지며 개연성 있는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벌여놓은 것이 워낙 많다 보니 수습을 못하고 용두사미가 될까봐 벌써부터 걱정이네요. 현재 겉으로 드러나 있는 중심적 갈등 구조는 김도현(장혁)과 유인혜(김희애)의 팽팽한 줄다리기입니다.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이 둘의 긴장감 넘치는 엎치락 뒤치락만 해도 꽤나 볼만하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중심추는 벌써 김도현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것이 우리 시청자의 눈에는 보입니다. 비록 모두가 염려하는 무리수 몇 가지를 던지고 있지만,..
원래는 이 포스팅의 제목을 "죽음이 삶에게 전하는 말" 로 정할까 했으나, 생각해 보니 그들은 멀지 않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일 뿐 죽은 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원래 희망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라 기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떠난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어차피 드라마 속에서 이 사람들은 김도현(장혁)과 이정연(이민정)을 도와주기 위해 등장했고,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곁을 떠날 테니까요. 방탕한 생활의 극치를 달리다가 중병에 걸리고 나서 천사로 변신한 유명준(노민우)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가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래서 쉬임없이 피아노를 치며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소아암 환자를 돕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도 합니다. 한때는 탐욕의 눈으로 바라보던 이정연을 ..
유명준(노민우)은 '마이더스'가 시작될 때부터 제가 큰 관심을 가졌던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첫 등장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삽시간에 관심 밖으로 밀려났었지요. 지나치게 선정적이어서 충격이었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저는 충격보다 더 큰 짜증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자극적인 장면을 통해 일시적으로 얼마나 시청률을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변태스런 등장 때문에 캐릭터가 처음부터 망가지는 것은 신경쓰지도 않는 듯한 제작진의 어리석음 때문이었습니다. 재벌가의 서자는 온갖 드라마에서 지긋지긋하도록 흔한 캐릭터입니다. 외부적으로는 모든 것이 채워졌으나 내면적으로는 모성의 결핍을 비롯해 꼭 필요한 것들마저 채워지지 못한 그 언밸런스함은 언제나 사람을 심하게 망가뜨리지요. 유명준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식상한 설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