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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이번 주 '라디오스타'에는 '진짜 사나이 - 여군 특집2'의 김지영, 강예원, 박하선, 안영미가 출연했다. 그 중에도 단연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 사람은 여배우 강예원이었다. 그녀는 '진짜 사나이'에서도 매일 펑펑 울며 전체 분량의 40~50% 쯤을 수장시키더니만, '라디오스타'에서도 쉴 새 없는 4차원 토크로 주변을 완벽히 장악(?)했다. 그런데 강예원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결코 재미있거나 유쾌하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시종일관 앞뒤가 맞지 않는 그녀의 언행은 몹시도 기이했고, 나는 실제로 주변에 저런 사람이 있으면 굉장히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기묘해서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강예원에게는 아주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듯 보였다. 마치 소..
어쩌면 자업자득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8살 예린이(김지영)는 그토록 사랑하고 믿어왔던 아빠가 뜻밖에도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말았다. '부정입학'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어린아이였지만, 이 똘똘한 녀석은 신문기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썩 잘 이해했다. 자기를 국제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아빠가 나쁜 일을 했고,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빠를 비난하고 있으며, 친구들은 자기 엄마로부터 "예린이와 놀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린이는 울며 소리쳤다. "할머니, 아빠 불쌍한데... 미워!" 박정환(김래원)은 한 달 남짓한 인생의 마지막 시간 동안, 잘못 살아 온 지난날을 조금이나마 만회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갖 나쁜 ..
'여군특집1'의 반응이 좋았고 그 혜택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된 출연진이 많았던 탓일까?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2'에는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소속사의 강요를 받아서 나오게 된 출연진이 몇 명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군생활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생활관이 떠내려가도록 눈물바다가 되는 현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군특집1'에서도 몇몇 출연진이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힘겨움이 북받쳐서 잠깐 울다 그쳤을 뿐, 강예원이나 엠버처럼 긴 시간 동안 펑펑 울면서 동기들이 주변에 모여 달래는데도 제 설움에 못 이겨 계속 눈물을 쏟는 경우는 없었다. 시작부터 그런 모습들을 보니 솔직히 안타깝기보다는 짜증스러웠다. 특히 강예원은 가장 독한 예능인 '진짜 사나이' 출연을 앞두고 그에 합당한 각오와..
박경수 작가의 '펀치'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이 예전과는 참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정의로운 여주인공 신하경(김아중)을 가장 멋진 캐릭터로 여기고 응원했을 것이며, 이태준(조재현)을 비롯한 악역들의 파렴치함에 솟구치는 분노로 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힘이 부족한 줄을 뻔히 알면서도 고집스레 정의와 원칙을 지키려는 신하경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속에는 칭찬과 응원이 아니라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가득 차오른다. 반면 이태준과 윤지숙(최명길) 등의 힘센 악역을 볼 때는 뜨거운 분노보다 앞서 차가운 두려움이 솟구친다. 어쩌면 대다수의 연약한 인간들에게 있어, 세상과 현실을 조금씩 더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은 이처럼 조금씩 더 겁쟁이가 되어간다..
2012년 '추적자 THE CHASER'의 신선한 충격은 박경수 작가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와 기대를 한껏 높여주었다. 비록 2013년 '황금의 제국'은 전작만큼의 화제성과 시청률을 확보하지 못했으나, 인간의 내면을 무섭도록 냉정하고 끈질기게 파헤치는 작가의 묵직한 필력은 매니아들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그 후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4년도 막바지에 이른 겨울, 드디어 고대하던 '펀치'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틀어 100편이 넘는 드라마가 제작되었으나 그 중 깊은 인상을 남긴 수작은 1~2편에 불과했던 2014년의 혹독한 드라마 기근에 '펀치'는 과연 단비로 내려줄 수 있을까? 첫방송을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전형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어 신선함은 느낄 수 없..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가 이제 최종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39회를 시청하면서 나는 첨예한 분노에 사로잡혔다. 여주인공 오은수(이지아)에게 그닥 공감은 못 하고 있었지만, 그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사회의 횡포는 참을 수가 없었다. 태어날 자식을 위해서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고, 싫어도 꾹 참고 뱃속 아기의 아버지인 김준구(하석진)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은 그녀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또는 한 때 가족이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은수를 위한답시고 나서는 그들의 행동은 명백한 오지랖이며 횡포에 불과했다. 오은수는 자기가 함께 살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나는 '세결여'의 첫 리뷰에서 오은수의 재혼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
초중반 부진을 면치 못하던 김수현 작가의 최신작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의 뒷심이 발휘되고 있다.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시청률 면에서도 경쟁작 '황금무지개'를 앞섰고, 대중적 화제성도 높아졌다. 그런데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여주인공 오은수(이지아)도 아니고 남주인공격인 정태원(송창의)이나 김준구(하석진)도 아니다. 놀랍게도 주변 인물들 중 하나에 불과한 한채린(손여은)이 밤낮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뜨거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한채린의 캐릭터는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래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나는 한채린을 악역이라 규정짓고 악녀라 부르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다. 악역이라면 최소한 옳고 그름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갖추고 있어야..
솔직히 가끔은 '내가 이 유치한 드라마를 왜 보고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길 때도 있다. 처음에는 그저 '관성' 때문이었다. 무려 133부작에 달하는 '못난이 주의보'를 재미있게 시청하다가 그게 종영되고 나니 허전했던 탓이다. 경쟁사의 '오로라 공주'도 막장 논란을 즐겨가며 시청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종영되고 말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후속작들은 전작들의 재미와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조선시대 뺨칠 만큼의 남녀차별 가풍을 보여주는 '잘 키운 딸 하나', 단순한 구조 속에 우유부단의 극치를 달리는 여주인공을 내세운 '빛나는 로맨스'... 둘 다 썩 마음에 안 들지만 아무것도 안 보자니 허전해서, 어쨌든 나는 '잘 키운 딸 하나'를 선택했다. 두 작품이 60회 가량 방송된 현재의..
예고편만 보았을 때는 기본 설정 자체가 너무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에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가업을 잇기 위해서 꼭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집안이라니 그 발상부터가 믿기 어려울 만큼 고루하고 어리석은데,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장여자라는 주인공의 정체성 또한 그 한심스런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잘 키운 딸 하나' 라니 제목은 또 왜 그리 촌스러운지! 지나치게 높은 출산율이 사회 문제가 되었던 1970년대에는 산아제한을 권장하는 표어가 유행이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지라 표어의 내용도 모두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처음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였다가, 여전히 인구조절이 잘 되지 않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
"부모만 자식 때문에 참아야 하는 거 아니야. 자식도 부모 때문에 참아야 하는 거야. 자식이 못났으면 부모가 참아주고 봐주는 것처럼, 부모가 못났으면 자식이 참아주고 봐주면서 그렇게 사는 거야!" 늘상 철없는 할머니라고만 생각했던 김필녀(반효정)의 말이 모처럼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하긴 세상에 자식만도 못한 부모가 어디 한둘이던가?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옛말이 있기는 하되 자식만 덜컥 낳아 놓았다고 저절로 인격수양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아무리 부모가 되었어도 속 좁은 사람은 여전히 속 좁고 무책임한 사람은 여전히 무책임하다. 자식을 키우면서 조금씩 나아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자식을 향한 비뚤어진 집착 때문에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금 나와라 뚝딱'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못난 부모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