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유신 (26)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무진(차인표)이 자기 목숨을 바쳐 의자왕자(노영학)을 살리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의자가 스스로 몸을 날려 무진의 몸에 칼을 찔러넣는 순간, 의자왕의 캐릭터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주군과 신하의 관계이지만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둘도 없는 충신을 제 손으로 죽이는 임금이라니, 너무나 배은망덕하고 비겁해 보였거든요. 아역들이 퇴장하고 성인 연기자들이 등장하면서, 너무 급격히 늙어버린 계백과 의자의 모습은 역시 제가 보기에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의자(조재현)와 은고(송지효)가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영락없는 아버지와 딸의 분위기가 흘렀고, 한껏 시커멓게 생구(전쟁포로) 분장을 하고 있는 계백(이서진)의 모습에서는 뭐랄까 쿤타킨테의 향기가 났습니다. 하지만 ..
제가 많이 좋아하는 배우 엄태웅이 '1박2일'에 합류하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그래서 모처럼 이 기회에 배우 엄태웅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드라마, 저를 엄태웅의 팬으로 만들었던 드라마, 그리고 엄태웅에게 처음으로 '엄포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던 드라마, '부활'을 추억하며 포스팅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현재 입원중이며 수술 후 회복중이(겠)지만, 이 글은 미리 써 두고 예약 발행된 것입니다..^^ 엄태웅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배우이고 맡는 역할마다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 주었지만, 솔직히 2005년 여름에 방송되었던 '부활' 이외의 작품에서는 그때만큼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례로 '선덕여왕'에서도 답답하도록 우직하기만 했던 김유신의 캐릭터는 엄태웅의 이미지에 큰 도..
김연우(김소연)과 박지헌(정겨운)의 캐릭터가 초반부터 워낙 아름답게 다가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뒤늦게 등장한 이도욱(엄태웅)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연우와 지헌이 벌써 너무 예쁘고 행복한 커플의 분위기를 모락모락 풍기고 있는 상황인데, 또 하나의 꼭지점으로 등장하여 삼각관계를 조성할 듯한 이도욱의 등장은 약간 염려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시크함의 화신이라고나 해야 할 듯한 그 표정과 말투에서, 연우를 향한 지헌의 사랑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을 이미 예감했던 듯 싶습니다. 엄태웅의 연기력은 그가 출연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인증된 바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09년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선덕여왕'에서는 유일하게 빛을 못 본 케이스였습니다. 남자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
저는 원래 '특집을 가장한 하이라이트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그냥 틀어만 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을 꾸준히 못 보고 띄엄띄엄 보신 분들로서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 방송도 환영하실 법 하지만, 저는 일단 정해놓고 보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충성을 하는 편이므로, 하이라이트는 거의 보나마나거든요. 역시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중간중간에 제작진의 인터뷰가 생각보다 좀 길게 들어갔고, 그들이 원래 만들려고 했던 드라마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참고삼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일종의 수확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크게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원래 모든 예술이란, 예술가의 손을 떠나게 되는 순간 이미 그들의 것이 아니거든요. 드라마 '선덕여왕' 역시, 원..
드라마 '선덕여왕'이 드디어 62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허전함이 밀려드네요. 지난 7월, 처음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선덕여왕'은 항상 단짝 친구처럼 제 곁에 있었습니다. 이제껏 다른 드라마를 시청할 때에는 이토록 깊이, 적극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마다에게 몰입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선덕여왕'은 그토록 특별한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애정이 쌓여 갔고, 주인공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조차도 모두 친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중 한 캐릭터는 이제껏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인물이었는데, 최종회에서야 비로소 제 눈에 들어오더군요. 언제나 소중함은 떠난 이후에야 깨닫게 되는 걸까요?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왠지 또 슬퍼지려고 합니다..
너는 믿어야 했다. 세상에 오해보다 더 처량한 것이 있더냐? 너의 불행한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너는 믿어야만 했다. 너를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는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너는 믿어야 했다. 스승 문노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도 너의 오해였다. 비록 타고난 너의 그릇이 세상을 품을만한 크기가 되지 못함을 깨닫고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 삼한지세를 김유신에게 넘기려 하였지만, 그가 생각한 '대의'를 위해서였을 뿐, 너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엄하고 냉정하게 대했으나 그는 끝까지 너와 함께 가려 결심하고 있었다. 수차례나 그가 말하지 않았더냐? "너는 나와 함께 떠나자." 고 말이다. 문노 또한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을 지녔기에, 그 한..
월요일 방송된 '선덕여왕' 57회에서 비담과 선덕여왕의 멜로가 예상치 못한 급진전을 보이면서 수많은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다지 당혹스럽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제 올렸던 '비담에게 보내는 선덕여왕의 편지' 에서 이미 저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듯이, 비담을 향한 여왕의 마음은 결코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제껏 덕만은 한 번도 비담에게 이성적으로 끌리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노오란 들꽃을 건네며 수줍게 웃는 비담에게 화답하듯 미소를 보이며 "너는 나를 여자로 대해 주는구나" 하고 기뻐하기도 했고, 미실의 죽음 후 방황하는 비담의 뒤를 쫓아가 어미 잃은 새를 감싸듯이 그를 포근히 안아주기도 했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감..
'선덕여왕' 55회에서도 김유신은 변함없이 우직한 충성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일신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신국의 안위만을 염려하는 김유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애국선열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그 충성심에 공감하거나 몰입할 수 없더군요. 엄태웅은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건만, 예쁜 유모차 안에 귀여운 아기 대신 통조림 깡통이 잔뜩 들어차 있는 것처럼 그 충성심이 생뚱맞아 보이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무릇 애국심이라 함은 철저한 체험과 교육에 의하여 고취되는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나라를 잃어 보았던 백성들은, 나라 잃은 핍박과 설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그 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애국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체험이 없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꾸준한 교육을 통해..
유신(庾信), 자네를 향한 나의 믿음이 헛된 일이었단 말인가? 나의 판단이 그릇된 것이었단 말인가? 말을 해 보게. 자네의 흉중에 담긴 진정한 포부가 무엇인지를 말일세. 나 월야(月夜)의 두 어깨에는 60만 가야백성의 한과 더불어 내 아버지이신 월광태자(月光太子)의 슬픔이 깃들어 있네. 부친께서는 대가야와 신라의 결혼동맹으로 인해 태어나셨으니 명백한 신라왕실의 외손자이셨으나, 신라는 일방적으로 동맹을 깨뜨리고 장군 이사부의 정예군을 보내어 우리 대가야를 공격해 왔네. 그 당시 선봉에 섰던 인물은 화랑 사다함이었네. 배신당한 우리 대가야의 군사와 백성들은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네. 가야산에서 흘러내려 온 우리 비옥한 땅의 내천들은 피로 물들었지. 자네는 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가야를 점..
드라마 '선덕여왕'이 미실(고현정)의 죽음을 전환점으로 하여 제3부로 접어들었습니다. 제1부는 덕만(이요원)의 탄생과 어린시절 및 자아찾기에 골몰하던 낭도 시절까지였다면, 제2부는 공주의 신분을 회복한 덕만이 미실과 본격적으로 대결을 벌이는 시기였습니다. 이제 최대 강적이었던 미실이 사라지고 덕만은 목표였던 '왕'의 꿈을 일단 이루었습니다. 제3부는 왕위에 오르면서 새로이 시작된 덕만의 삶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드라마의 흐름을 보면 분명히 주인공인 덕만 중심으로 스토리가 흘러가고 있기는 합니다. 며칠 전, 한 독자분께서 저에게 이런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서브 캐릭터였던 미실이 너무 크게 부각되면서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므로, 이제 미실이 사라지고 나서는 차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