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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지금 '신데렐라 언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주는 인물은 효선(서우)입니다. 초반의 그녀는 특유의 애교를 부리면서 끊임없이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였지요. 그녀의 마음속에도 사랑은 가득했으나 그것을 표출하는 과정이 너무도 미숙했기에, 그녀의 사랑은 상대를 기쁘게 하거나 감동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너그러운 세상 그 자체였던 아버지 구대성(김갑수)의 죽음은, 효선으로 하여금 언제까지나 세상이 자기의 편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 깨달음은 껍질이 깨어지고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이었지만, 효선을 삽시간에 어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만 받고 살아온 시간들은 그녀를 어린아이로 남아있게 했으나, 이제 보호막 없이 찬..
은조(문근영)는 타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녀가 입을 열어서 "효선아", 또는 "준수야" 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오랜 세월 동안 애증으로 휩싸인 기훈(천정명)을 향해서도,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습니다. 그가 떠났을 때에도 그저 새처럼 자기의 이름만 부르며 울었을 뿐입니다. 구대성의 영정 앞에서 "아빠!" 라고 부르는 순간 그녀의 마음 한켠이 열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거리낌 없이, 그것도 자주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정우야, 정우야~" 그의 방문 앞에 서서 그녀가 부릅니다. "정우야, 좀 나와 봐", "정우야, 네가 처리해 줄 일이 있어", "정우야, 할 말이 있으니 네 룸메이트 좀 내보내 줘" .....
사실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꾸만 되새기면 너무 아파서 그냥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구대성이 그렇게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허무하게 떠나갔음에, 그리고 가족들 중 아무도 그의 최후를 지키지 못하고 숨을 거둔 후에야 그 곁에 도착했음에,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가 숨을 거두던 그 시간에, 그토록 사랑하던 두 딸은 제 안의 공허감을 술로 채워 보려다가 만취해서 연구실에 쓰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일이 벌어지는데, 그들에겐 하늘같은 존재가 무너지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꼭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마지막 순간에 잡아주지 못한 송강숙의 넋나간 표정도 잊을 수 없습니다. "효선아, 아빠 흔들어 봐....
구대성(김갑수)이 떠난 후, 대성참도가를 지켜야 하는 벅찬 의무가 은조(문근영)의 가녀린 두 어깨에 지워졌습니다. 그녀는 끝내 아빠라고 불러드리지도 못했던 아버지 구대성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기에 놓인 대성참도가를 지켜내려 할 것입니다. 대성참도가는 구대성이 평생을 바쳐 양심과 애정으로 일구어 온 기업이며, 그 자신이라고 할 수도 있는 존재니까요. "어쩌지, 구효선? 내가 또 해냈네? 이러다가는 정말 모두 내것이 되고 말겠어." 효선(서우)을 자극하는 은조의 속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은조는 그녀와 힘을 합쳐서 아버지의 유업을 지켜나가려는 것입니다. 대성참도가를 지키는 일에, 구대성의 친딸인 구효선을 제외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은조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진정으로 구대성을 위하는 일..
기훈이 네놈은 아버지를 닮았다. 그래서 너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너와 나의 무능한 아버지가 그랬듯이, 너는 초라한 모습으로, 일에도 사랑에도 실패하게 될 것이다. 내 눈에는 훤히 보이는데 아버지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오래된 병폐가 있다. 그건 바로 자기가 책임져야 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습관이다. 아버지에겐 수십년간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다. 사랑도 얻고 성공도 이룩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자신의 무능함과 비정함으로 저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가 자기 자신을 탓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예전에는 항상 내 어머니를 탓했고, 내가 성장하여 힘을 얻게 되자 이제는 자기 자식인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그를 자유롭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것은 언제나 그 자신이었건만,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