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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봄이 오나 봄'은 한국 드라마에서 이미 식상해져 버린 영혼(육신) 체인지를 다루고 있지만, 그 방식이 조금은 독특하다. 지금까지의 다른 드라마에서는 영혼(육신) 체인지가 이루어질 때, 언제나 영혼이 육신을 따라갔다. 육신은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고 영혼이 그 육신에 들어오게 되는 식이다. 예를 들자면 '시크릿 가든'에서 폐소공포증을 앓고 있는 김주원(현빈)과 공포증 전혀 없는 길라임(하지원)의 몸이 바뀌었다. 그 상태에서 길라임은 (김주원의 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순간 정전이 되어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하필이면 그 때 다시 몸이 바뀌어 버린다.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는 김주원의 몸 안으로 폐소공포증 있는 김주원의 영혼이 컴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존의 공식이다. 몸이 있는 곳..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하 '알함브라')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시청자의 극한 몰입을 유도하는 드라마다. 전작인 '나인'과 '더블유' 등에서도 언제나 참신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설정을 시도해 온 송재정 작가였지만, 이번에 더욱 몰입이 강한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의 소재가 '게임'이라서가 아닐까?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시청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손으로 조종하는 주인공(플레이어) 캐릭터에 점점 더 몰입하면서, 그 캐릭터가 상처를 입으면 마치 자신에게 상처가 난 것처럼 움찔하게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현왕후의 남자'라든가 '나인'의 소재인 시간 여행은 실제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블유'의 소재인 웹툰은 그저 눈으로 보고 읽는 것만 가능하다. 하지만 '알함브라'의 소재인 게임은..
개봉 전 기자들의 평점이 낮다고 해서 큰 기대를 품지 않고 관람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취향에 맞아서인지, 나에게 '역린'은 썩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평점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면 스토리가 매우 빈약하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드는 작품이라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 스토리보다는 각각의 캐릭터에 비중을 둔 모양인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영화를 보는 내내 추후의 전개가 거의 궁금하지 않다는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한껏 비장미를 뽐내며 긴박하게 움직이는데, 관객 중 몇몇은 좀처럼 몰입이 안 되는지 줄곧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배우들의 연기에 꽤나 몰입하고 있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1777년(정조 1년)에 발생한 '정..
처음부터 1~2회 연속 방송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을 만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걸고 있는 방송사의 기대감이 큰 모양입니다. 더구나 같은 날 시작되는 '아이리스2'는 무려 170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니만큼 더욱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겠지요. 다행히 첫 방송 후의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이른바 감성멜로 전문 콤비라 불리는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PD의 만남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깔끔한 짜임새와 감각적인 대사를 자랑하는 노희경 작가의 대본은 역시 명불허전이었고 '그들이 사는 세상',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에 이어 그녀와 세번째 호흡을 맞추는 김규태 PD의 영상미 또한 여지없이 빛을 발했습니다. 주연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누구 한 사람 삐걱거림 없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배..
요즈음 '나는 가수다2'가 다시 재미있어지고 있습니다. 시청률이나 화제성 면에서 시즌1의 폭발적인 위용을 따라잡으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솔직히 이제는 기성 가수들의 노래 대결이라는 컨셉 자체가 그 때만큼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 자체가 왕년의 명성 그대로를 되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요즘 들어 만족스러울 만큼 재미있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수로서 단순히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넘어선 무언가, 정신을 아찔하게 하고 가슴을 짜릿하게 하는 무언가가 차츰 생겨나고 있거든요. 몇 주 전, 들국화의 노래를 자신만의 버젼으로 재해석했던 한영애의 '사랑한 후에'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전인권의 음색도 굉장히 독특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확실히 김은숙 작가와 저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같은 여성이면서도 '매력적인 남자'를 보는 기준이 너무도 현격히 다른 것을, 저는 매번 그녀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군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가 시청률 면에서 거의 대박을 쳤고, 남주인공은 선풍적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았던 사실이라든가, '신사의 품격' 6회에서 장동건이 부쩍 멋있어졌다는, 저로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의견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상을 보면, 제가 유난히 특이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언제 어디에서든 '앞으로 나서서 외치는 자' 보다는 '침묵하는 자'가 절대 다수임을 생각해 본다면, 진짜 현실이 어떤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현빈의 반짝이 츄리닝에 ..
원작이 있는 드라마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각시탈'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원작에 나타난 주인공의 초반 캐릭터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르의 특성상 책(만화 포함)과는 확실한 차별화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어느 시간보다도 경쟁이 치열한 현재 수목드라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책은 언제든 읽고 싶을 때에 집어들어 읽으면 되는 것이지만, 드라마는 마음에 닿지 않는다 싶으면 곧바로 채널을 돌려버릴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본방사수하지 못한 드라마는 내용을 알 수가 없게 되고, 다음 번 수요일에는 자연스레 앞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는 다른 드라마 쪽으로 채널을 맞추게 되지요. 그러므로 ..
저는 시트콤을 아주 좋아합니다. 저에게 세상은 언제나 심각하고 무겁게만 느껴지는데, 시트콤을 볼 때면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김병욱의 시트콤에서는 이제 가벼운 즐거움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을 중독시키는 스텐레스김 특유의 재미는 여전하지만, '지붕뚫고 하이킥' 때부터는 분위기가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져 버린 거죠. 그런데 심각한 것은 원래 저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몰입도는 점점 더 높아지더군요.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 예민해져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시트콤을 보는 원래의 목적과는 좀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하이킥3'가 끝나면 곧바로 채널을 돌려 '청담동 살아요'를 시청하며 무거워진 마음을 달래곤 했지요..
'보스를 지켜라' 5회는 두 커플의 달달한 키스씬으로 마무리 되었었습니다. 차지헌(지성)이 노은설(최강희)에게 마음을 고백한 후 이 두 사람의 애정 전선은 거침없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서나윤(왕지혜)과 노은설 사이에서 상당히 애매해 보였던 차무원(김재중)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저는 무척이나 그 장면이 반갑더군요. 드디어 식상한 사각관계에서 벗어난, 유니크한 설정의 드라마를 보게 되나 싶었거든요. 만날 두 남자는 한 여자를 같이 좋아하면서 연적이 되고, 한쪽 옆에는 또 다른 여자가 있어서 질투심을 불태우고... 꼭 이런 식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왜 주인공들의 애정 전선은 항상 겹치고 꼬여야만 하는 걸까,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무원이 서..
사실 '동안미녀'의 주인공 이소영(장나라)의 캐릭터는 순수하고 선량하고 배려심이 깊은 아가씨로서 충분히 처음부터 호감형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괜시리 초반에 남주인공들과의 자극적 만남을 위해 무리한 설정을 넣은 것이 비호감으로 작용했었지요. 이소영은 최진욱(최다니엘)과 처음 만났을 때는 나이트클럽에서 온갖 사고를 저지르며 추태를 떨었고, 지승일(류진)과 처음 만났을 때는 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팬티바람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주의산만한 사고뭉치 캐릭터를 싫어하는 제 눈에는 참 한심한 아가씨로 보였더랬습니다. 그러나 34세의 나이에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이소영의 매력은 조용히 제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혹자들은 장나라가 20대 초반의 풋풋함과 귀여움은 잃어버리고 30대의 성숙함은 갖추지 못했기에,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