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조민기 (15)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혹시라도 조민기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피해자가 있다면,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의 죽음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그가 저지른 죄에서 비롯된 결과이며, 또한 그가 스스로 선택한 길일 뿐이다. 혹시라도 어떤 몰지각한 자가 있어 그의 죽음을 이유로 당신을 비난한다 해도 전혀 아랑곳할 필요가 없다." 세상 모든 범죄의 피해자들이 혹시라도 가해자가 자살할까 두려워하며 입을 다물어야 한단 말인가? 죄는 밝혀져야 한다. 그 결과가 설령 죽음일지라도, 혹은 그보다 더한 것일지라도. 그는 끝내 뉘우침도 진실한 사과도 없이, 도망치는 길을 선택했다. (유서가 되어버린 손편지 내용 중에 "지난 7년 고되고 어려운 배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사회 권력자들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현직 검찰 내부의 성추행을 과감한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낸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이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동안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어 왔던 수많은 성추행과 성폭력들이, 피해 여성들의 용기에 힘입어 잇달아 세상에 폭로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투(me too) 운동으로 고발당한 가해자들은 모두 막강한 명성과 권력을 지닌 사회 저명인사들이다. 정치, 문화, 연예계는 물론 종교계까지도, 그 어느 곳에도 성역은 없었다. 권력의 이름으로, 절제 못한 욕망을 핑계로, 약자들을 짓밟고 죄책감조차 없이 살아온 범죄자들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서지현 검사에게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아빠를 부탁해'라는 예능을 나는 처음부터 전혀 보고 싶지 않았다. 표면상 기획의도는 '무뚝뚝한 아버지와 어른이 된 딸 사이의 어색함을 따스함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라지만, 그 내포된 의도는 '방송인이 되고 싶어하는 딸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한 방송인 아빠들의 팔자에도 없는 생고생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특히 조재현과 조혜정 부녀는 딸이 배우의 꿈을 키우며 공부 중이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밝혔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의혹의 중심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를 부탁해' 출연은 그것과 무관하다고 모든 출연자 및 관계자들이 입을 모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것과 무관할래야 결코 무관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빠를 부탁해'가 방송되기 시작할 무렵까지만 해도 조혜정은 단지 이름없는 지망생..
약간 촌스러운 사랑 이야기라도 나쁘진 않았다. '첫사랑과의 재회' 스토리가 식상해질 때도 됐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제 질렸다. 제발 그만 우려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줄 모르고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상대의 부모가 내 부모를 죽인 원수였다는 이야기, 하긴 갈등의 최고점을 찍기엔 더 이상의 소재가 없을 것이다. 웬만한 장애물쯤은 너끈히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 해도 제 부모를 죽인 원수의 자식이라면 쉽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그것은 연인들 사이에 설정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이다. 하지만 설정하기는 쉬워도 풀어나가기는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솔직히 그런 경우 깔끔한 해결책은 한쪽이 (또는 둘 다) 죽어버리거나 헤어지는 것뿐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짐작컨대 2011년작 '프레지던트'는 손영목 작가의 최대 야심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복잡하고 험악한 정치판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공정한 시각으로 묘사한 '프레지던트'는 정말 수준 높고 괜찮은 드라마였다. 그러나 단순하면서도 자극적인 스토리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는 분위기 자체가 매우 낯설고 내용도 어려운 편이었다. 결국 '프레지던트'는 최수종, 하희라 부부의 열연에도 줄곧 4~5% 내외의 낮은 시청률로 고전하다가 경쟁작이었던 '대물', '싸인'의 높은 화제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쓸쓸히 종영을 맞이했다. 특별히 아끼는 작품을 야심차게 선보였으나 대중으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한 손영목 작가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리 경력 수십년에 이르는 베테랑이라도 결코 면역되지 않는 부분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망친 장태산(이준기)이 경찰과 폭력조직에게 쫓기며 나날이 액션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수진이(이채미)는 병원 무균실에서 하루 하루 달력의 날짜를 지워 갑니다.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으로 매일 구토에 시달리면서도 수진이가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었죠. 수술은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아빠는 꼭 인형을 갖고 돌아와 줄 거라는 믿음 말이에요.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엄마도 아저씨도 같이 못 가고 혼자 가야 한다는 게 너무나 무서웠다고 말하던 수진이는 이제 기쁜 마음으로 희망의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투윅스' 14일의 시간 중 이제 9일이 남아 있네요. 수진이의 그 믿음을 배반해서는 안 되는데, 그 아이의 희망을 꺾어..
제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소현경 작가의 신작이지만 '투윅스'는 방송 전부터 몇 가지의 의문점을 품게 했습니다. 우선 내용과 인물 설정을 보면 진지하고 묵직한 드라마인데, 제목이 하필 '투윅스'라서 초콜릿 바를 연상케 한다는 점이 황당하게 느껴졌지요. 물론 의미를 따지면 운명의 2주일(週日), 살인 누명을 쓰게 된 아버지가 백혈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4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뜻이지만요. 다른 좋은 제목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반드시 '투윅스' 라야만 했을까, 그보다는 차라리 '2주일'이 낫지 않았을까 등 여러가지 아쉬운 생각이 들더군요. 전작인 '내 딸 서영이'도 내용상의 퀄리티와 시청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나 제목은 꽝이더니 (먼저 방영된 드라마 '내 딸 꽃님이'를 따라한 것처..
지난 8월 21일자 '다섯 손가락' 포스팅에서 저는 유지호(주지훈)가 사실은 유만세(조민기)의 아들이 아니라, 채영랑(채시라)과 그녀의 첫사랑 김정욱(전노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일 거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 무렵 방송되기 시작했는데, 저는 2회까지 보고 나서 그런 예감이 강하게 들었거든요. 순전히 개인적 상상력에 의거하여 풀어낸 내용이었지만 상당히 재미있고 역동적인 발상이다 싶었기에, 추후 드라마의 전개가 저의 예측과 다르게 흘러간다 해도 별 상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본능적 느낌일 뿐, 어떤 확신을 갖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 후로 무려 3개월 동안 긴 여정을 달려 온 드라마가 종방을 향해 치닫는 이 때, 저의 초반 예측은 더할 수 없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고 말았네..
강렬하고 자극적인 에피소드의 향연, 게다가 빠르고 역동적인 전개는 제법 흥미진진한 시청을 가능하게 하지만, 드라마 '다섯 손가락'의 완성도는 별로 높지 않아 보이네요. 개연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설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서 일부러 짜맞춘 듯한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점은 그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 시청자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진짜 매력적인 캐릭터가 한 두 명쯤 존재하고 스토리의 개연성을 조금만 더 확보했다면,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가 늘 그렇듯이, 막장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높은 인기를 얻었을텐데 말이죠. 피아노라는 중심 소재가 꽤나 신선하고 매혹적이어서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7회까지 시청한 현재의 ..
새로 시작된 드라마 '다섯 손가락'에서 저는 유만세(조민기) 회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비극과 복잡한 이야기는 바로 그의 비뚤어진 사랑에서 비롯되었거든요. 그는 한 여자 채영랑(채시라)을 사랑했지만 그녀의 진실한 사랑을 얻지 못했고, 재벌회장으로서 모든 것을 가진 듯하지만 가장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 불만은 점차 그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사랑은 집착으로 변해갔고, 집착은 그 자신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들었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유만세의 아들 유지호(주지훈, 아역 강이석)입니다. 누구를 닮았는지 몰라도 그는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죠. 교육이라고는 받은 적도 없건만, 그가 타고난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합니다. 아무렇게나 섞어서 눌러대는 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