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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제대로 맘 먹고 나온 것이 확실하다. 어쩐지 확 달라 보이는 외모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이마에 길게 흘러내렸던 앞머리를 짧게 쳐올리니 순정만화틱한 미소년의 얼굴은 70% 가량이나 사라져 버렸다. 훨씬 투박하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변한 얼굴에 결연한 눈빛과 리얼한 흉터 분장을 더하니, 얼마 전까지 '일말의 순정'에서 보았던 샤방한 꽃소년 준영이가 바로 이 녀석이라고는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중견 배우도 쉽지 않을 감정 연기를 제법 그럴싸하게, 능청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게 표현해낸다. 이원근... 이제 그 이름이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앞으로는 작품 자체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최소한 1~2회 정도는 시청하게 될 것 같다. 콩나물이 크는 것처럼 쑥쑥 성장해 가..
그렇죠, 뭐... 제가 보기에도 드라마 자체는 형편없었습니다. 홍자매의 로맨틱 코미디도 이제는 한계에 달했나보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떨칠 수가 없었죠. 아주 좋게 봐준다면 일시적인 슬럼프라든가 한 번쯤의 커다란 실수라고 퉁쳐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설정도 너무나 허술하고 캐릭터에도 공을 들이지 않은 티가 많이 나니 그 정도의 변명도 쉽지는 않네요. 하지만 종영 이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살벌한 악평들을 바라보며 제 마음은 왜 살짝 불편해졌을까요? 물론 어처구니 없을 만큼 성의없고 황당한 결말이긴 했지만, 그래도 홍자매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닌데 싶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은 서운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었는데, 생뚱맞게도 김은희..
'유령' 11~12회에서는 이 드라마의 절대악이며 모든 범죄의 배후조종자인 조현민(엄기준)의 과거가 드러났습니다. 김은희 작가의 전작 '싸인'의 절대악이었던 강서연(황선희)은 선천적 사이코패스에 가까워 사람을 죽이는 데에 타당한 이유가 없었지만, 조현민은 전혀 다르게 설정되었군요. 물론 지극히 냉혹하며 무차별적이라는 면에서는 강서연과 별 차이가 없고, 그 스케일에 있어서는 강서연을 능가하는 수준이므로 사회에 전체적으로 끼치는 해악은 조현민이 훨씬 크다 하겠지만, 그를 희대의 악마로 만들어 버렸던 13년 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니, 저는 조현민을 탓하기에 앞서 이 썩은 사회와 인간의 추악함에 치를 떨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1999년, 세상은 한 건의 빅뉴스로 떠들썩해졌으니, 바로 세강그룹 회장 조경문이 무..
아니나 다를까, 저는 또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각시탈'에서는 시원한 액션으로 원수를 무찌르는 히어로의 활약을 맘껏 즐길까 했더니, 어머니와 형은 비참하게 죽고, 단짝친구는 변절해서 원수가 되고, 어린 시절의 연인은 서로를 못 알아보는 등 비극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령'은 조현민(엄기준)의 등장 후 그와 연결된 새로운 악역들이 속속 늘어나며 아리송한 미스테리가 중첩되고 있는데, 솔직히 저는 머리가 좀 아프더군요. 너무 복잡하다 싶은 느낌도 들고,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역동적인 스릴을 느끼고 싶은데, 좀처럼 미스테리는 풀릴 기미가 안 보이니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니 요즘 인기를 끄는 드라마 '각시탈'과 '유령'과 '추적자'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상대하기에는 ..
김은희 작가 특유의 방식에 따라 '유령'은 두 갈래의 사건 진행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최초의 사건과 관련된 난제를 계속해서 풀어나가며 드라마의 큰 줄기를 잡고, 한편에서는 자잘한 사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열해서 보여주는 것이죠. 전작인 '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의 사건은 가수 서윤형 살해사건으로 듀스 김성재의 실화를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였는데, 그 사건의 범인이었던 강서연(황선희)의 배경이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그녀를 쉽게 체포할 수 없었지요. 그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점점 복잡하게 꼬여가는 와중에 직접적 연관이 없는 다른 사건들이 발생했고, 주인공 윤지훈(박신양)과 고다경(김아중)은 그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도 첫번째 사건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국 윤..
원작이 있는 드라마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각시탈'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원작에 나타난 주인공의 초반 캐릭터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르의 특성상 책(만화 포함)과는 확실한 차별화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어느 시간보다도 경쟁이 치열한 현재 수목드라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책은 언제든 읽고 싶을 때에 집어들어 읽으면 되는 것이지만, 드라마는 마음에 닿지 않는다 싶으면 곧바로 채널을 돌려버릴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본방사수하지 못한 드라마는 내용을 알 수가 없게 되고, 다음 번 수요일에는 자연스레 앞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는 다른 드라마 쪽으로 채널을 맞추게 되지요. 그러므로 ..
'유령'은 상당히 특이한 드라마입니다. 보통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1회에 총력을 기울이고 2회부터는 슬슬 힘을 빼는 법이죠. 그래야 첫방송에서 시청자를 사로잡기가 수월하니까요. 최근 시작된 '추적자'와 '각시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숨막힐 듯 진행이 빠르고 역동적이던 1회에 비해, 2회는 현저히 늘어지고 약간은 지루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실망하지는 않았어요. 원래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그런데 '유령'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1회는 첫방송치고 임팩트가 부족하다 싶을 만큼 평이하고 잔잔하더니만, 오히려 2회가 상상초월 대박이군요. 저는 편안히 누워서 보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벌떡 일어나 가슴을 졸이며 손에 땀을 쥐고 시청했습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이렇게까지 완벽 몰입해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방영 전부터 이런저런 문제로 꽤나 시끄러웠던 드라마 '각시탈'의 첫방송이 드디어 전파를 탔습니다. 보조출연자의 석연찮은 죽음과 그 배상문제를 둘러싼 잡음들, 그리고 지나치게 애국심을 내세우는 듯한 자극적인 홍보 마케팅 등으로 인해, 마음 속에는 얼마간의 꺼림칙함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저는 새로 시작된 수목드라마 전쟁에서 결국 이 작품을 선택하고 말았네요. 물론 저의 성향상, 앞으로의 진행과정이 실망스러울 경우는 중간에 '유령'이나 '아이두아이두' 쪽으로 갈아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만, 일단은 '각시탈'의 분위기가 가장 끌리고 마음에 들더군요. 이 글의 초점에서는 약간 빗나가는 이야기지만 '각시탈' 1회를 보면서 저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어째서 초반에 제가 그토록 애정하던 드라마 '적도의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