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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어쩌면 박상민보다도 방송사가 더 문제였다. 출연자의 너무 지나친 솔직함으로 논란이 유발될 것 같으면, 그 부분은 마땅히 편집해야 옳았을 것이다. 더욱이 EBS는 교육 방송으로서 타에 모범을 보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 마치 자극적인 연출로 시청률을 올리고자 한 것처럼, 박상민이 스스로 재연해서 보여준 전처 폭행 장면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리얼극장'이라는 제목에 충실하려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방송의 결과로 박상민과 그 가족은 물론 이혼한 전처까지도 묵은 상처를 헤집고 또 새로운 상처를 입게 되었으니, 출연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숨김은 꼭 필요했을 터였다. 지난 10일 방송된 EBS '리얼극장'에는 배우 박상민이 어머니와 함께 출연했는데, 주된 내용은 6..
'백년의 유산' 후속으로 방송되는 드라마의 제목이 특이하더군요. '스캔들'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앞세워 제목이 아예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이랍니다. 제목에서 언뜻 떠오르는 소재는 막장과 불륜과 치정 따위의 그런 것들이죠. 사실 제목만 보고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무심히 포스터를 보고는 의외로 호기심이 동하더라 이겁니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유괴한 유괴범이었다!" 이거 궁금증을 확 자극하지 않습니까? 엄마도 아니고 아버지가... 이런 설정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죠. 어머니의 경우라면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수차례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전례가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에, 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절망 때문에 순간적으로 약간 제정신을 잃었던 어머니는 남의 아이를..
세상의 주인이 사람에서 돈으로 바뀐지는 한참 되었다지만, 드라마에서까지 너무 돈 이야기만 해대니 질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건 제목부터가 '돈의 화신' 이라 처음부터 거부감이 들었던 작품이지요. 그런데 무심결에 보게 된 예고편에 낚여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살펴보니 생각보다는 흥미로운 드라마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선뜻 1회를 시청했습니다. 일단 출발은 괜찮았어요. 돈 때문에 발생하는 원한과 음모,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주인공은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등, 흔해빠진 설정들도 적지 않았지만 의외로 느낌은 신선하더군요. 드라마 '자이언트'와 '샐러리맨 초한지'를 집필했던 작가 장영철, 정경순 부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신뢰가 갑니다. 대단한 수작(秀作)이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몰라도 최소한 껍데기뿐..
월아(홍아름)는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최양백(박상민)을 향한 짝사랑으로 눈이 뒤집힌 춘심(김하은)은 월아를 유인하여 저잣거리로 데려가고, 거기서 기다리던 왈패들은 월아를 납치해서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만종(김혁)에게 바쳤지요. 사랑하는 김준(김주혁)과의 혼인을 앞두고 단꿈에 젖어있던 월아는 그렇게 만종에 의해 순결을 잃고 말았군요. 만종은 이제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자기한테 시집올 것이라며 의기양양했으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월아는 비상을 마시고 김준의 품에 안겨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대하는 최우(정보석)의 태도는 약간 의외였습니다. 집안에 거둔지 얼마 되지도 않는 여자 노예 한 명이 죽었을 뿐인데 마치 자기 딸이 죽은 것처럼 노발대발하며, 관련된 자들을 모두 잡아..
드디어 최충헌(주현)이 죽고, 장남 최우(정보석)가 무신정권의 제1인자로 등극했습니다. 최향(정성모)와의 권력다툼에서 손쉽게 이길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은 바로 비천한 노예 김준(김주혁)이었지요. 최우를 안흥리로 끌어들이기 위해 최향의 수하들이 계속 찾아올 것을 예측하고, 그들 중 누군가를 붙잡아서 길을 터야 한다는 김준의 조언은, 결과적으로 무혈입성을 가능케 한 계책이었습니다. 물론 최상의 적임자 김덕명을 선택한 최우의 안목과 혜심대사의 환약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지만요. 김준이라는 인재의 가능성을 알아본 최우는 그의 공로를 치하하며 자신의 최측근 무사로 임명합니다. 벌레 목숨만도 못하던 노예의 처지에서 삽시간에 대역전되었으니 어쩌면 온갖 질시의 대상이 된 것도 당연한 일이긴 한데, 잔인하게도 질투..
주말 밤이면 MBC와 SBS에서는 1시간짜리 연속극을 연달아 2편씩이나 방송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물량이 많으면 양질의 작품들도 적잖이 나올 법 하건만, 어찌된 셈인지 거의 다 막장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지독히 식상한 소재들만 우려먹고 있는 상황이라 좀처럼 끌리는 작품이 없더군요. 특히 최근 종방한 MBC 연속극 두 편, '애정만만세'와 '천번의 입맞춤'은 어쩌면 그렇게도 속속들이 진한 막장의 향기를 풍기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역겨울 만큼 얽히고 설킨 가족관계의 함정은 왜 그리도 자주 사용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어쨌든 두 편의 막장드라마가 비슷한 시기에 끝나고, 새로운 드라마가 또 연달아 2편이나 시작되었습니다. '신들의 만찬'은 초반의 여러가지 설정을 보니 2010년 여름 '제빵왕 김..
1회를 보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현재 '시티헌터' 속의 이윤성(이민호)은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선량한 영웅입니다. 자고로 복수의 화신이라면 먹구름이 드리운 듯 어두운 카리스마를 풍겨야 하는 법인데, 이윤성은 오히려 눈부실 만큼 흰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차라리 1회를 시청하지 않고 2회부터 보았다면 좀 더 적응하기가 쉬웠을 텐데...... 저는 3회까지 시청한 지금도 아직 어리둥절한 상태입니다. 1회는 분명히 어둡고 진지한 복수극이었으며, 그 와중에 정치와 역사적 사실까지 맞물려 있어서 드라마가 굉장히 묵직했거든요. 그래 놓고 2회부터는 갑자기 새털처럼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바뀌어 버리는 바람에 저는 너무나 당황을 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같은 드라마가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도 2회의 당황스러움을 ..
첫방송의 느낌은 예상보다 더 괜찮았습니다. 저는 원작만화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아무 선입견 없이 감상에 임할 수 있었지요. 처음부터 긴장감과 몰입도가 상당하고, 주인공 이윤성 역할을 맡은 이민호는 캐릭터에 자신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더군요. 아직은 자기 출생의 비밀을 모르던 17세 소년 시절의 티없는 싱그러움도 잘 나타냈고,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 냉혹한 킬러로 훈련받아 변신한 24세 청년의 어두운 카리스마도 제법 그럴듯하게 표현했습니다. 이윤성의 캐릭터는 다중적인 면이 있어서 표현하기 쉽지 않은데, 이만하면 일단 합격점을 주어도 될 듯 싶습니다. 드라마의 시작은 1983년에 일어났던 실화, 아웅산 테러사건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북한은 당시 버마를 방문 중이던 대통령을 노리고 테러를 감행했으나..
'자이언트'가 60부의 대장정을 마치고 종영했습니다. 단순히 해피엔딩이라거나 새드엔딩이라는 말로 규정지을 수 있는 종류의 마무리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격동의 세월을 지나며 그들은 이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죽어갔구나... 하는 감개무량함만이 남았습니다. 저의 예상과는 좀 달랐던 그들의 운명을 바라보며, 각자의 삶과 죽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대략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이성모(박상민)의 죽음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죽음입니다. 이렇게 속절없이 세상을 떠날 바에는, 차라리 머리에 총을 맞던 그 날 바로 죽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숨을 거두기 직전에 이성모는 지연수에게 비자금 장부와 녹음 테이프를 전달하고, 지연수는 조필연의 마수를 피해 숨어 살다가 나중에 이강모(이범수)를 만나 그의 ..
미주야,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아버지가 악마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마음 한켠에서는 언제나 너를 그리면서, 다른 한켠으로는 악마의 계획을 짜고 있었다. 부정하게 벌어들인 돈으로 네가 출연하는 영화마다 남몰래 후원을 했고, 무리하게 아버지의 정치 자금을 대느라 부실 공사로 위험한 건물을 쌓아 올리며, 너를 위한답시고 그 건물 안에 대형 규모의 극장을 만들었다. 세상에 나처럼 어리석은 사내가 또 있을까?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다고 자신했지만, 결국 나의 사랑은 만보프라자처럼 부실해서 이렇게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나 보다. 미안하다. 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로 인한 너의 고통은 없었을 텐데... 그래도 미주야, 내 삶에 유일한 행복은 오직 너와 사랑하던 순간의 기억뿐이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