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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한여름의 지상파 수목드라마 전쟁에서 내가 '질투의 화신'을 선택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태양의 후예' 못지 않게 기대해 왔던 이경희 작가의 '함부로 애틋하게'는 도저히 21세기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진부한 설정에다가, 아예 대놓고 "자, 슬프잖아! 펑펑 울어! 울란 말야! 이래도 안 울어?" 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들어서 1회를 보고 나니 2회를 보기가 싫어졌다. 내가 아무리 애틋하고 절절한 드라마를 좋아한다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강요하면 좋던 것도 싫어지고 금세 질리는 법이다. 한 때 시트콤의 거장 김병욱 PD와 콤비를 이루어 정말 소름끼치도록 멋진 여러 작품을 선사해 주었던 송재정 작가의 '더블유(W)' 역시 엄청난 기대작이..
최근 몇 개월 동안 썩 마음에 드는 드라마가 없어서 리뷰를 안 썼더니 감각이 무디어져 버린 것 같다. 하지만 모처럼 괜찮았던 드라마 '프로듀사'를 다 보고 나서 한 마디 언급조차 안 한 채 떠나 보내기는 아쉬우니까, 단순히 되짚어 보는 수준이라도 최종회 리뷰를 써 보고자 한다. 사실 초중반까지는 크게 끌리는 면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후반에 접어들수록 인물들의 개성이 반짝반짝 살아나고 멋진 대사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면서 포텐이 터졌다. 멋진 대사들이 참 많았는데 일일이 언급하자니 메모를 안 해놔서 어렵겠고, 내가 이 리뷰를 쓰게 된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탁예진(공효진)의 대사를 중심으로 몇 가지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그 전에 주인공들이 대략 어떤 인물들인지부터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
'괜찮아 사랑이야' 최종회에 관해서는 별로 길게 쓸 말이 없다. 15회 말에 장재열(조인성)이 자기의 분신과도 같았던 한강우(디오)를 떠나보내면서 이 작품의 결론은 이미 내려졌기 때문이다. 16회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살았답니다" 하는 식의 에필로그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따스한 행복감을 주었던 이 드라마를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일종의 마침표를 찍는 예의가 필요할 것 같아서 아주 간단히 최종회의 리뷰를 쓴다. 지해수(공효진)의 엄마는 장재열의 정신분열증 때문에 두 사람의 결합을 극구 반대하고, 재열은 해수를 설득하여 유학을 보낸다. 하지만 그 후 1년 동안 꾸준히 병을 치료받은 재열은 완치 단계에 이르고, 해수가 유학에서 돌아오자 그들은 축복 속에 결혼을 ..
종영을 하루 앞둔 '괜찮아 사랑이야' 15회에서는 그 어떤 호러 영화나 전설의 고향보다도 훨씬 무서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장재열(조인성)이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이제껏 믿어왔던 한강우(디오)의 존재가 환시임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다. 나는 영상 속 공포에는 비교적 대범한 편인데, 그 장면을 볼 때는 등골이 오싹하도록 서늘한 한기와 심장이 옥죄는 듯힌 갑갑함을 느끼며 극한의 공포에 시달렸다. 처음 볼 때도 그렇더니만,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네 앞의 강우를 똑똑히 봐... 머리부터 밣끝까지 아주 아주 천천히... 숨을 멈추고 천천히... 모든 환시에는 반드시 모순이 있어!" 지해수(공효진)의 말을 떠올리며 장재열이 한강우의 모습을 시선으로 훑어내릴 때, ..
장재열(조인성)의 정신분열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다양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조동민(성동일)과 이영진(진경)은 정신과 의사로서 객관적 판단과 차분한 결단력을 보였다. 그들 역시 장재열과의 친분이 있었기에 충격을 면할 수는 없었지만, 가족이나 연인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기에 한 발 물러서서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장재열의 죽마고우인 양태용(태항호)은 지극히 친구다운 태도를 보였고, 재열 모(차화연)는 지극히 엄마다운 태도를 보였다. 너무나 슬프고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에 차츰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을 찾아갔다. 투렛 증후군으로 오래 고통받은 박수광(이광수)은 아파 본 사람으로서 깊은 연민을 느끼며 장재열의 곁을 지키고, 동생에게 복수심을 품고 있던 장재범(양익준)은 무표정..
'괜찮아 사랑이야' 7회가 방송된 후 다수 시청자의 반응을 보면 서로 사랑하면서도 평생 끝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이상한 형제, 장재열(조인성)과 장재범(양익준)의 처절한 스토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 형제의 모습에 서늘한 두려움을 느꼈을 뿐, 공감이나 감동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장재범이 주사한 액체는 수액에 불과했기 때문에 장재열은 정신이 멀쩡한 상태였고 육체적으로도 충분히 형을 제압할 힘이 있었지만, 아무런 저항 없이 형의 가혹한 주먹질과 발길질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폭행 장면을 실제로 목격할 때보다 영상을 통해 접할 때 더욱 큰 영향을 받는다는데, 가족간의 일방적 폭행과 무력한 피해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끔찍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난장판이 된 폭행 현장을 목..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는 원래 말발 좋은 인물이 많지만 '괜찮아 사랑이야'의 남주인공 장재열(조인성)의 언변은 확실히 클래스가 다르다. 이제껏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캐릭터를 본 적은 없었다. 첫 만남부터 불꽃(?)이 튀었던 장재열과 지해수(공효진)는 줄곧 티격태격하면서 사랑을 키워가는 중이다. 남의 일에는 별 관심조차 없어 보이던 시크한 장재열이 위험을 무릅쓰고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던 여인를 구해내자 시종 까칠하던 지해수의 마음이 살짝 열렸다. 강박증 때문에 화장실 안에서 잠들었던 장재열은 자신의 비밀을 목격한 지해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해하며 받아들이자, 그녀를 향한 호감이 자기 마음에 싹텄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성큼 다가서기 시작했다. 계곡의 푸른 물 속에서 흠뻑 젖은 채 달콤한 키스를 나누..
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음이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녀 주인공 장재열(조인성)과 지해수(공효진)는 인기 추리소설 작가와 유능한 정신과 의사로서 빼어난 지적 능력과 출중한 외모를 지닌 선남선녀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마음이 병든 그들은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장재열과 지해수뿐 아니라 이 작품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마음이 병든 사람들로서,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매일처럼 자기 안의 자신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타인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자기만의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그 싸움은 매우 치열하여, 매일 아침 방문을 열고 나설 때면 피투성이가 되어 있지만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이기에,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함을 가장하며 평범한 일..
'왕가네 식구들' 후속으로 시작된 새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 1~2회의 느낌이 그야말로 참 좋다. 일단 재미있고 가슴이 따뜻하다.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는 각각의 작품에 따라 그 분위기가 매우 다른데 '상두야 학교가자', '고맙습니다' 처럼 밝고 따뜻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 죽일놈의 사랑',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처럼 어둡고 처절한 작품도 있다. 원래 나는 애절하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 중에서는 밝고 따뜻한 작품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경희 작가가 그려내는 비극은 어딘지 내가 선호하는 종류의 비극과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송중기 주연의 '착한 남자'도 방송 이전에는 몹시 기대했었지만, 보면 볼수록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피투성이 처절함에 질려서 마..
드디어 15년 전 납치 사건의 비밀이 밝혀졌다. 주중원을 납치해서 잔인한 추리소설을 읽히며 난독증에 걸리게 한 사람은 차희주였고, 폭발하는 차량에 갇혀 비참하게 죽은 사람은 차희주의 쌍둥이 언니인 한나 브라운이었다.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을 구분하지 못했던 주중원(소지섭)은 이제껏 차희주(한보름)를 생각할 때마다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납치범의 정체가 자신임을 밝히며 "미안하게 됐어, 주중원!" 하고 말하던 순간의 얼음장 같은 모습과, 불타는 차에 갇혀 죽어갈 때의 애달픈 눈빛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증오해야 할지 가여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다. 주중원이 사랑했던 착한 한나는 죽었고, 질투심에 눈 멀어 납치와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차희주는 뻔뻔하게 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