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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미녀' 이소영(장나라)의 편지 - 최진욱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동안미녀

'동안미녀' 이소영(장나라)의 편지 - 최진욱에게

빛무리~ 2011. 6. 2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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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진욱아. 너는 항상 나에게 솔직했는데, 나는 오늘도 너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구나. 하지만 네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내 아픈 가슴은 좀 더 숨겨 두려 해. 아니... 사실은 네 웃는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선지도 몰라. 이기적인 나라서 정말 미안해.

처음부터 이러려던 건 아니었어. 아홉 살이나 어린 동생 소진이 행세를 하면서 회사에 나왔을 때는, 단지 하루만 잘 버티면 될 줄 알았지.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어.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바로잡을 새도 없이 하루하루가 그렇게 흘러가면서, 난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게 되었지.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매일 침묵으로 거짓말하는 기분은 정말 괴로웠어. 특히 백부장님, 사장님, 그리고 너에게 참 많이 미안했어.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 그 거짓말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이 내겐 너무 소중해져 버렸거든. '더 스타일'은 잠자던 내 꿈을 깨워 주었고, 너는 죽어있던 내 마음을 되살려 주었어. 산더미같은 빚만 남겨둔 채 집을 나가버린 아빠, 그런 아빠 때문에 한동안 넋 놓고 지내던 엄마, 철없고 사치스런 소진이...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마음이 죽어가는 줄도 몰랐는데, 이제 돌이켜 보니 지난 10년 동안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던 것 같아. 네가 날 보면서 웃을 때, 네 눈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서야 그걸 알았어. 나도 모르게 너를 따라 웃고 있던 내 얼굴... 얼마만이었을까? 난 웃는 법조차 잊어버리고 살았던 거야.

네 손을 잡은 건, 그 웃는 얼굴이 너무 좋아서였어. 나는 네 눈 속에서만 그토록 환하게 웃을 수 있었거든. 거울에 비친 내 미소는 언제나 조금은 서러웠는데, 네 눈에 비친 내 미소는 티끌 한 점 없이 밝고 행복해 보였어. 그 미소를 보면, 마치 내가 너를 많이 닮은 것처럼 느껴졌어.


어차피 나는 뻔뻔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큰 죄를 짓고서도 얼굴 쳐들고 다시 회사에 나올 만큼 겁 없는 사람이니까, 계속 네 손을 잡고 있어볼까도 생각했어. 그래서 용감한 척하고 너의 아버지도 만났던 거야. 내세울 거라곤 하나도 없으면서, "많이 부족한 거 알고 있지만, 제가 잘 하겠습니다" 이런 멍청한 소리 밖에는 드릴 말씀도 없으면서 나는 네 아버지 앞에 뻔뻔하게 앉아 있었어. 네 손을 놓기가 너무 싫어서, 끝까지 버틸 수만 있으면 버텨보려 했던 거야.

하지만 진욱아, 사장님이 딸 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네 아버지도 널 그렇게 사랑하시겠지? 너무 예쁘고 귀해서 보는 것만도 아까운 그런 마음이시겠지? 아무것도 모른 채 현이처럼 웃고만 있는 널 보면서 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 네가 너무 귀해서, 네가 너무 아까워서, 네 등에 빨대가 꽂히는 건 나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아빠는 언제 또 나를 빚더미에 깔리게 할지 모르고, 소진이는 앞으로도 계속 내 등허리를 휘게 하겠지. 내가 색약이 되어버린 눈을 고치고 디자이너의 꿈을 이룬다 해도 그건 변하지 않아. 이제 겨우 스물 일곱인 네 앞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는데, 그걸 알면서도 외면하려 했던 나의 뻔뻔함을 네 아버지가 깨우쳐 주셨던 거야.

난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가끔씩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정말 살아있는 걸까 궁금해지면, 그 때마다 너의 눈과 손과 입술을 기억할 거야. 네 눈 속에서 아이처럼 웃던 내 얼굴과, 내 손을 저리도록 움켜쥐던 네 손에 배인 땀과, 서툴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그 입술의 떨림들을 하나 하나 귀하게 떠올릴 거야. 그런데 너는... 너도 가끔은 기억해 줄까?


내 기억에는 이렇게 쓰라린 가슴도 함께 들어가지만, 네 기억에는 티없이 행복한 순간으로만 남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숨겨 둘게. 솔직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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