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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 종영, 신지현의 49일은 우리를 위한 여행이었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49일

'49일' 종영, 신지현의 49일은 우리를 위한 여행이었다

빛무리~ 2011. 5. 2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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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49일'이 종영했습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듯 싶으나, 저는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하던 결말은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면에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겼습니다. 제가 해석하기에 이 드라마의 포커스는 송이경(이요원)이 아니라 전적으로 신지현(남규리)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과 죽음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신지현은 49일 여행의 고된 일정을 마치고 귀한 3방울의 눈물을 얻어 회생에 성공했으나, 안타깝게도 태어나면서부터 그녀에게 주어진 목숨은 회생 후 고작 일주일이 더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너무 가엾어서 화가 날 정도로 서글픈 그녀의 운명이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유난히 밝고 긍정적이며 선량함의 화신과도 같았던 그녀는 타인들을 위한 천사로서 잠시 이 세상에 내려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해석일까요? 하지만 현실 속에도 분명히 그러한 운명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유가 좀 거창한지도 모르지만, 다른 인물의 적절한 예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군요. 세종대왕의 유일한 친동생이었던 성녕대군은 우애가 깊고 밝은 성격으로 주변의 사랑을 받았다지요. 태종과 원경왕후는 권력 싸움으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막내아들 성녕대군이 언제나 특유의 친화력으로 부모를 화해시키곤 했답니다. 그는 안타깝게도 14세의 어린 나이로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났는데, 외척의 득세를 경계하여 처남들을 가혹히 숙청하던 태종은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원경왕후를 가엾이 여겨 칼날을 거두고 피바람을 멈추게 됩니다. 이렇게 성녕대군은 죽음으로써 다시 한 번 부모를 심각한 위기에서 화해시키고 외숙들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신지현은 부모와 친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평생토록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습니다. 순수하고 선량한 그녀는 아무도 미워할 줄 몰랐기에 항상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조차 맺힌 마음 없이 친하게 굴었고, 언제나 사람의 악의보다는 선의를 굳게 믿었습니다. 신인정(서지혜)이 분명 자기를 배신했음을 알면서도, 그 숱한 악행을 저지르던 간악한 마음보다는, 자신에게 구두를 벗어주던 순간의 선의가 신인정의 진정한 마음일 거라고 믿었던 것처럼요. 이러한 신지현의 성품은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서 비뚤어져 있던 신인정을 변화시켰습니다. 강민호(배수빈)는 아직 완전히 뉘우치지 않은 것도 같지만, 5년의 감옥 생활 동안 그의 어머니를 보살피며 기다려주는 신인정으로 인해 조금씩 더 변화되어 갈 것이 예상됩니다.

신지현의 49일 여행은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타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무력하기 그지없는 영혼 상태에서도 그녀는 남의 손에 넘어갈 뻔한 아버지의 회사를 구해냄으로써 남은 가족의 평안한 삶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신지현 본인의 의지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지만, 부모에게는 잃어버린 큰딸을 찾아 주었고 언니에게는 잃어버린 부모를 찾아 준 것도 그녀의 역할이었습니다. 또 신지현은 한강(조현재)과 그의 어머니 사이에서도 화해의 매개체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오래 전에는 한강으로 하여금 어머니가 끓여준 마지막 미역국을 먹게 해 주었고, 최근에는 아직도 한강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깨끗이 없애 주었습니다.


자기가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는 동안, 밥 한 끼만이라도 같이 먹는 게 소원이었다는 어머니와, 너의 웃는 얼굴을 다시 보는 게 소원이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신지현은 활짝 웃습니다. "그럼 난 엄마 아빠 소원 다 들어 준거네?" 그리고 아빠 딸로 태어나서 행복했다고, 엄마 딸로 태어나서 행복했다고, 난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이렇게 그녀는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떠났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한강에게도 깊은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놓았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람이 상처받는 것보다는 내가 오해받는 것이 차라리 낫기 때문에 그냥 오해하게 놔둔다고, 한강의 어머니가 신지현에게 말했었지요. 신지현도 한강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끝내 진심을 털어놓지 않은 것임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소현경 작가와 저의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어도 결국 한강은 배신한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였음을 알았습니다. 엄마가 자기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죽었다는 사실도 결국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강의 마음이 어땠나요? 괜시리 오랫동안 엄마를 미워했다는 사실 때문에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끝내 자신에게 진실도 숨기고 병도 숨겼던 엄마에 대해, 10년이 지나도록 원망조차 품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엄마가 일찌감치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면 그토록 응어리가 남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지현은 짧은 일주일 동안이지만 49일의 기억을 간직한 채로 자신의 몸을 되찾았습니다. 자기의 눈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자기의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자기의 목소리로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너를 두고 떠나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를 모두 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차라리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그가 모르는 것도 아닌데, 괜시리 말하지 못하고 애써 웃으며 바라보는 모습들이 어찌나 답답하고 서글프던지요.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한강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한강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매사에 냉소적이고 의욕 없는 청년이었지요. 그러나 신지현을 사랑하고 그녀의 49일 여행을 함께 하면서 커다란 변화를 얻게 됩니다. 몰랐던 엄마의 속마음을 신지현이 대신 전해줌으로써 해묵은 원망을 버리고 상처가 치유된 한강은, 무기력했던 삶의 자세를 떨치고 활기찬 사람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야 했던 신지현의 49일을 기억하기에, 그 역시 하루하루의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록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남기고 떠났지만, 신지현은 역시 한강에게도 구원자였습니다.


신지현을 통해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사람은 송이경입니다. 송이경의 본명은 신지민, 어렸을 때 잃어버린 신지현의 연년생 친언니였습니다. 송이경은 사랑하던 송이수(정일우)를 잃고 죽은 듯 살아갔지만, 신지현의 49일 여행에 얽혀들면서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밝은 성격의 신지현과 47일간이나 몸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영향을 받아 활기를 되찾았고, 간절히 삶을 원하면서도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신지현의 아쉬움을 바라보면서, 자기가 버리고 싶어했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잃었던 부모와도 다시 만났습니다.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는 오해로 인해 받았던 상처도 모두 치유되었음은 물론입니다.

가난하고 외롭던 송이경은 이제 더없이 좋은 가족을 만났고 유복한 환경마저 얻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녀 혼자서만 너무 많은 것을 얻은 듯하여, 조금은 가해자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신지현의 교통사고에 송이경의 책임이 적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동생을 죽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모든 것을 빼앗은 나쁜 언니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케줄러 송이수는 분명히 신지현에게 말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신에게 주어진 수명이 거기까지였다고 말이지요. 신지현은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언니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떠나간 셈입니다.


오래 전, 그녀들의 엄마가 큰딸 신지민을 잃어버리게 된 경위를 보니 작은딸 신지현에게 원인이 있었더군요. 꼬맹이 신지현이 사람 많은 곳에서 칠락팔락 뛰어다니며 어디론가 사라지는 바람에, 어머니는 비교적 얌전하던 신지민을 벤치에 앉혀 둔 채로 둘째를 찾아나섰는데, 신지현을 찾아서 데려오는 잠시 동안 큰딸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쪽 옆에 서서 심상찮은 눈빛으로 어린 자매를 바라보던 여인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녀가 신지민을 유괴해 갔던 모양입니다. 송이경의 머릿속에 '자기를 버린 엄마'로 기억되고 있던 사람은 친엄마가 아니라 바로 그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가산업의 장녀로서 행복한 어린시절과 사춘기를 보낼 수 있었던 신지민은, 이렇게 해서 비참한 고아소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책임을 어린 신지현에게 지울 수는 없지만, 그녀로 인해 언니가 불행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본의 아니게 언니의 유복한 삶을 빼앗았던 신지현이, 자기의 목숨을 다하고 떠나가면서 다시 언니에게 모든 것을 돌려주게 된... 어쩌면 이러한 일들은 미리 정해진 운명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고 보면 초반에는 가장 외롭고 불행해 보였지만, 결국 제일 많은 사랑을 받고 행복한 사람은 송이경입니다. 그녀의 오해를 풀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기 위해, 송이수는 5년 동안 스케줄러의 고된 임무를 수행하며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이러한 그의 지극한 사랑으로 송이경은 지독한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동생 신지현을 통해 잃었던 가족을 되찾으면서 평생 받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도 듬뿍 받게 되었습니다. 이들 자매의 엇갈린 운명이 한편으로는 가슴 아프고 아련하지만,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지현의 49일 여행을 통해 한강과 송이경이 변화되었듯이, 우리도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고 하루하루를 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게 아닐까요? 사실 제가 간절히 원하던 것은 한강과 신지현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하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서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삶이란 원래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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