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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 떠나는 자는 무엇을 남기는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마이더스

'마이더스' 떠나는 자는 무엇을 남기는가?

빛무리~ 2011. 3. 3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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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이 포스팅의 제목을 "죽음이 삶에게 전하는 말" 로 정할까 했으나, 생각해 보니 그들은 멀지 않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일 뿐 죽은 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원래 희망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라 기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떠난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어차피 드라마 속에서 이 사람들은 김도현(장혁)과 이정연(이민정)을 도와주기 위해 등장했고,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곁을 떠날 테니까요.


방탕한 생활의 극치를 달리다가 중병에 걸리고 나서 천사로 변신한 유명준(노민우)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가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래서 쉬임없이 피아노를 치며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소아암 환자를 돕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도 합니다. 한때는 탐욕의 눈으로 바라보던 이정연을 이제는 아무런 욕심 없이 바라보며, 이러한 일들에 대해 칭찬받고 싶어하는 유명준의 모습은 어린 소년과도 같습니다. "부자가 쓸 데 쓰는 거야 당연한 일인데 뭘 칭찬까지 받으려고 해요?" 라고 핀잔하면서도 밝은 웃음으로 칭찬을 대신하는 이정연의 모습은, 기특한 동생을 바라보는 누나 같기도 합니다.



유명준의 노력으로 많은 소아암 환자들이 치유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더없이 소중한 무언가를 남긴 셈이라, 이 세상에 헛되이 왔다 간다는 허무감을 떨쳐버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유명준에게는 아직도 못다한 일이 있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에 간절히 남기고 싶은 것은, 바로 사랑하는 친누나 유인혜(김희애)를 위한 깨달음입니다. 누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그는 단단히 움켜쥔 누나의 손을 펼쳐주고 가려 합니다.

"누나의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유인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하는 유명준의 눈빛에는, 그 어느 때보다 굳은 결의가 담겨 있습니다. 탐욕의 병에 걸린 유인혜는 차고 넘치는 재산을 소유했으면서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살인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공들여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던 김도현이 오히려 자기 욕망에 걸림돌이 되는 순간이 오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희생양으로 삼아서 버릴 수 있는 그녀입니다. 유인혜는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가족마저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용할 대상들일 뿐입니다. 그런 그녀가 손톱만큼이나마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친동생인 유명준이지요.


어떤 싸움에서든 승리를 거듭해 온 나날이 오히려 유인혜에게는 독이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유명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누나의 뜻을 꺾어, 그녀로 하여금 패배와 좌절을 맛보게 하려 합니다. 자기가 뜻한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자기가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음으로써, 그 충격을 통해 이제껏 외면해 왔던 다른 쪽의 소중한 가치에 눈을 뜨게 하려는 것입니다.

앞으로 유명준은 이정연을 도와서 유인혜의 사업에도 일격을 가하겠지만, 그에게는 이미 결정적인 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유인혜는 이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아끼던 한 사람을 잃게 될 테니까요. 동생이 마지막으로 남겨 둔 간절한 마음을 받고, 그녀는 과연 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여기에 또 한 사람이 떠나려고 합니다. 평생을 돈에 미쳐 살아 온 우금지(김지영) 할머니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어느 새 몸에 깃든 죽음의 그림자는 떨칠 수 없고, 이제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회한 뿐입니다. "나는 내가 참 오래 살 줄 알았데이. 왜 남들한테 욕을 많이 처묵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안 있나? 내가 참 억수로 욕을 많이 얻어 묵었거든. 돈 번다고! 참 수많은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거든. 지금도 부산가서 내 이름만 대면 몸서리치는 사람 많다. 내가 이래 죽어도 서운해하기는 커녕, 천벌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기다."

돈이 아무리 많아봐야 땅에 묻힐 때는 모두 놓고 가야 하는 것을, 그것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에게 못할 짓만 하고 떠난다는 생각에 우금지 할머니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나 봅니다.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사람을 제대로 도와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 때 운명처럼 우금지의 눈에 띈 것이 맑은 샘물 같은 심성의 간호사 이정연이었습니다. 괜시리 호감이 끌려서 가까이하던 중 그녀와 사랑하다 헤어진 남자 김도현까지 알게 되는데, 우금지는 그 청년의 눈빛 속에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합니다. 돈에 미쳐 살아 온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말이지요.


그대로 놔두면 늙을 때까지 자기처럼 살다가 후회하게 될 것을 알기에, 우금지는 더 늦기 전에 그 청년을 도와주기로 결심합니다. 우금지가 선택한 방법이란, 불길처럼 타오르는 그 남자 곁에 물처럼 고요한 그녀를 머무르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물은 불을 식히고, 불은 물을 덥히며,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맺어주려 합니다.

"나는 평생 돈에 미쳐 살았거든. 그래서 김도현이 같은 사람도 내가 잘 알지. 지금은 제가 미쳐 사는지를 전혀 모르거든... 불쌍한 인생이지. 이선생, 나한테 잘해 주듯이, 불쌍한 그 사람 너무 미워하지 마라." 이정연에게 당부하는 우금지의 눈빛에서는 간절함마저 느껴집니다. 이제 유인혜에게 토사구팽을 당해서 바닥까지 떨어진 김도현은 우금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겠지요. 그 구원의 손길이 이정연을 통해서 다가왔기에,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기에 김도현은 이정연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이제 유인혜는 양쪽으로 강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면에서 겨누어진 김도현의 칼만 응시하느라, 뒤편에서 겨누어진 동생 유명준의 칼은 발견하지 못하겠군요. 예상컨대 유인혜를 최종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김도현의 복수가 아니라 유명준의 우애일 듯합니다. 아무래도 이 드라마의 주제는 배신과 복수를 통해 표현되는 정의라든가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아닌 것 같거든요. 오히려 모든 집착을 버릴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용서와 사랑을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려면, 다른 사람 아닌 유명준의 일격으로 유인혜가 무너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김도현의 복수심 또한 나중에는 화해와 용서로 승화되겠지요. 그의 곁에는 물 같은 이정연이 있어서 뜨거운 불을 식혀 줄 것이고, 게다가 죽음으로써 누나의 죄를 대신 빌어 줄 유명준이 있으니 김도현의 응어리진 마음도 결국은 풀리게 될 것입니다.


돈을 향한 욕망과 그것 때문에 파멸해 가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듯하던 이 드라마는 그 단계를 한 차원 넘어서서, 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려는 모양입니다. 떠나는 사람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남기고 싶어한 것은 무엇인지, 왜 그들이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지, 조용히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우리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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