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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는 외박중' 정인 때문에 가슴이 시리는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매리는 외박중

'매리는 외박중' 정인 때문에 가슴이 시리는 이유

빛무리~ 2010. 12. 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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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과 장근석의 출연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매리는 외박중'이 결국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쓸쓸한 종영을 앞두었습니다. 역시 결정적 원인은 '대본의 부재(不在)'라고 해야겠군요. 중간에 작가를 교체하는 진통까지 겪으면서 어떻게든 살려 보려 했으나, 남이 시작한 작업을 중간에 이어받아서 훌륭한 작품을 뽑아낸다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라면 몰라도 예술 분야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입니다. 더구나 잘 나가고 있는 와중에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거의 회복 불능의 상태에서 이어받은 거였으니까요.

그러므로 후반에 집필을 맡은 고봉황 작가에게 책임을 물어선 안될 것 같고, 굳이 탓한다면 초반의 인은아 작가가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기본적 방향에 대해 감독과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계속 충돌했다고 하니, 1~2회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았던 작품이 갈수록 침몰하게 된 원인을 오직 작가에게만 돌린다는 것도 잔인합니다. 대본이 뻥 뚫리게 된 책임은 제작진이 고르게 져야 할 거예요. 그 와중에 가엾어진 것은 배우들 뿐이지요.


이제는 한 회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기에도 인내심이 필요할 만큼 지루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억지스럽고 유치한 전개 속에 개연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군요. 14회에서 가장 황당했던 에피소드는 대낮에 벌어진 강무결 납치 사건이었어요. 정석(박준규)처럼 막강한 권력을 지닌 사람이 일단 사람을 납치하겠다고 결정했으면 그처럼 어설프게 처리하지는 않았겠지요. 물론 납치를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지만요. 납치되는 그 순간에 매리가 발견하고 쫓아간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하필 그 옆에 경찰차가 기다리고 있다가 매리를 태우고 추격전을 벌이는 것은 뭡니까? 결국 그래서 무결은 납치를 면하고 예정대로 쇼케이스에 참석할 수 있었으니, 대낮의 황당한 납치쇼는 아무 소득도 없이 정석의 체면만 오지게 구기고 말았습니다.

이런 식의 황당 전개가 계속되니, 우리의 예쁜 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비호감 캐릭터에 갇혀 버렸습니다. 그 아이들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던 문근영과 장근석이건만, 요즘은 매리와 무결이를 보아도 짜증만 솟구치네요. 캐릭터의 장점은 갈수록 퇴색하고 단점만 속속 늘어납니다. 배려심 깊던 매리와 자유롭던 무결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은 이기적인 매리와 집착하는 무결이 남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후반으로 갈수록 유일하게 존재감을 더 빛내는 배우가 꼭 한 명 있습니다. 위매리의 법적인 남편 '정인' 역할의 김재욱입니다. 이 사람은 워낙 초반의 존재감이 약했어요. 로봇처럼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부잣집 아들, 정중한 싸가지... 돈은 많지만 감정은 메마른, 이런 정도의 식상한 캐릭터로는, 길고양이처럼 자유롭고 외로운 눈빛을 지닌 보헤미안 강무결에게 승산이 없을 것 같았지요.

하지만 초반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던 강무결은 오히려 매리의 사랑을 얻으면서 그 신비한 느낌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어머니로 인한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던 외로운 청년, 그래서 진실한 사랑을 거부하던 캐릭터가 무결이었는데,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갑자기 너무 쉽게 매리와 사랑에 빠진 거예요. 이럴 거면 뭣하러 초반에는 그토록 사랑을 거부하는 시늉을 했었나 싶게 말이지요.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길고양이라니, 그 자신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캐릭터는 망했습니다. 여주인의 무릎에 안긴 채 기분 좋게 가르릉거리는 집고양이가 되어 버린 거죠. 게다가 수시로 정인을 향한 질투심을 드러내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멱살잡이를 해대니, 이건 말하자면 사나운 집고양이라서 별로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습니다. (근석군, 미안~;;)

그런 강무결에 비해 정인의 캐릭터는 초반의 뻣뻣한 나무토막에서 점차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사랑하지도 않는 위매리와의 결혼을 결심했으나,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진정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조금씩 변화된 것이죠. 게다가 매리와 무결이가 서로 사랑에 빠져서 룰루랄라 하는 동안, 정인은 홀로 갖가지 비극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연민의 정이 느껴집니다.


우선 정인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맞서야 합니다. 정인은 매리를 사랑하지만 그녀와 강압적으로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을 뿐더러, 자기 부모가 무엇 때문에 헤어졌는지를 최근에 알아버렸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매리의 어머니를 사랑했고 그녀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떠났고, 정인은 엄마 없는 아이가 되어 무서운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매리의 어머니 때문에 정인은 한평생 외로운 인형처럼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매리와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다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너무 깊이 그녀에게 끌려버린 감정을 억누르려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정인의 가슴은 간절히 매리를 원하고 있는데,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며 그의 눈앞에서 닭살 애정행각을 벌입니다. 심지어 그 사내 녀석은 이중 동거를 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먼저 하더니만, 일만 저질러 놓고는 여러가지 상황을 감당 못해서 정인의 집으로 밀고 들어오기까지 합니다. 매리와 무결은 오밤중에 정인의 집에서 쥬스를 엎지르고 함께 셔츠를 빨면서 신혼부부처럼 행세를 합니다. 정인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들을 바라보며 냉가슴만 앓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매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그녀 때문에 괴롭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습니다.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는 아버지를 상대하는 것도 벅찬데, 자기 마음 속에 아프게 떠오르는 어머니의 기억과도 싸워야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사업도 자꾸만 꼬여 가고,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매리는 결국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혹하게 이별 선언을 합니다.

강무결은 정인보다 나이도 4살이나 어린 데다가 그의 도움을 받고 있는 입장입니다. 드라마 OST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며 튕기는데도 자기의 음악성을 인정해 주고 꾸준히 설득해 준 정인 덕분에 무결은 지금 스타가 되었으니까요.


물론 무결 자신이 원하는 삶은 돈을 많이 벌거나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음악만 하며 사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무결로 하여금 구차스럽게 돈을 벌어서라도 빚을 갚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공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 감소영(이아현)이었습니다. 정인의 아버지가 매리에게 준 약혼반지를 감소영이 제멋대로 낚아채다가 전당포에 맡겨 버렸으니까요. 결국 정인은 자기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무결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셈입니다.

그렇게 신세를 지면서도 강무결은 정인에게 고마워하기는 커녕,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습니다. 나이도 훨씬 많은 정인에게 거침없이 반말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멱살까지 잡는군요. 그래도 정인은 항상 차분하게 나직한 목소리로 존대를 합니다. 언젠가는 무결의 주먹질에 맞대응을 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단 한 번뿐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장근석이라는 배우를 무척 좋아하는데도, 요즘 드라마의 전개를 보면 볼수록 강무결은 밉상이고 정인에게만 애틋한 마음이 가네요.


정인은 확실히 매리나 무결에 비해 가진 것도 많고 힘도 있는 사람이건만, 이상하게도 제일 불쌍한 약자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정인이가 느끼는 마음 속의 고통이 매리나 무결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겠죠. 요즘 그를 보면 가슴이 시려 옵니다. 효과적으로 자기 감정을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캐릭터는 정인이 유일하군요.

기왕 여기까지 함께 달려왔으니, 저는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이 드라마를 지켜 볼 생각이거든요. 이제 겨우 2회 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인이가 매리와 좋은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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