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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조민우의 마지막 편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자이언트

'자이언트' 조민우의 마지막 편지

빛무리~ 2010. 12.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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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야,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아버지가 악마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마음 한켠에서는 언제나 너를 그리면서, 다른 한켠으로는 악마의 계획을 짜고 있었다. 부정하게 벌어들인 돈으로 네가 출연하는 영화마다 남몰래 후원을 했고, 무리하게 아버지의 정치 자금을 대느라 부실 공사로 위험한 건물을 쌓아 올리며, 너를 위한답시고 그 건물 안에 대형 규모의 극장을 만들었다. 세상에 나처럼 어리석은 사내가 또 있을까?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다고 자신했지만, 결국 나의 사랑은 만보프라자처럼 부실해서 이렇게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나 보다.

미안하다. 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로 인한 너의 고통은 없었을 텐데... 그래도 미주야, 내 삶에 유일한 행복은 오직 너와 사랑하던 순간의 기억뿐이었다. 어려서부터 악마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나를, 너의 사랑이 잠시나마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던 거다. 그래서 너와 처음으로 마주쳤던 그 형무소 옆 차가운 담벼락길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오직 따뜻한 장소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 형무소 안에는 내가 살인 누명을 씌워서 옥살이를 하게 만든, 네 오빠 이강모가 갇혀 있었지. 우리는 그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만났다. 지갑을 소매치기당하고 당황하는 나에게 문득 다가와, 차비로 쓰라며 토큰 한 개를 내밀던 너의 낯선 눈동자... 생전 처음 보는 그 맑은 눈빛이 내 가슴에 날카롭게 꽂혀 왔다.


미주야,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만나서는 안 될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만났고, 사랑해서는 안 될 운명이지만 사랑했다. 그리고 찰나의 눈부신 행복과 아주 오랜 기다림, 그보다 더 오랜 슬픔이 이어졌다. 네가 나 때문에 겪은 고통에야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그런 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나의 고통 또한 작은 것은 아니었다. 네가 나에게 원한 것은 영화를 후원해 주는 것도, 극장을 지어 주는 것도 아니었을텐데... 어떻게든 그 무력함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나의 끝없는 몸부림도 이제는 멈춰지는구나.

너는 끝내 나를 받아주지 않았지. 함께 도망치자는 마지막 부탁도 거절하고, 우연히 마주쳐도 싸늘한 표정으로 스쳐 지날 뿐이었지. 나는 조필연의 아들이니까, 네 아버지를 죽인 조필연의 아들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사랑한다면 차라리 너를 편안하게 내버려 두어야 했을까?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미주야, 내 말을 믿어 주겠니? 나는 한없이 강모를 부러워했다. 그는 오빠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네 곁에 있을 수 있고, 너에게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었으니까... 언제든지 네 얼굴을 보고, 네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네 눈에 비치는 것만으로도 너를 아프게 하는 존재였다. 나는 조필연의 아들이니까.

어려서부터 나와 함께 자랐던 네 큰오빠 성모 형도 나에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를 친형처럼 따랐는데... 마지막으로 그와 마주하던 날, 한 순간이나마 나를 진심으로 대한 적 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미안하다는 대답 뿐이었다. 내 모든 성장 과정을 곁에서 지켜 본 그는 내가 어떤 녀석인지를 잘 알았을 텐데, 너를 사랑하며 행복에 들뜬 마음도 나는 모두 그에게 털어놓았었는데, 그렇게 내 진심을 알고 있는 성모 형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조필연의 아들이니까.


남자로서 너를 가질 수 없는 것도 뼈저린 고통이었지만, 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아니었다. 미친놈이라고 해도 좋다.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나는 계속 너의 주위를 맴돌았던 거다. 미주야, 너와 서로 사랑하던 그 때와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네 아들 우주에게 목마를 태워 주고 선물을 한아름씩 사 줄 때마다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유전자 검사 결과에 관계없이 우주는 내 아들이었다. 너에게 못 해 준 모든 것을 우주에게라도 해 주고 싶었는데, 나에게는 그조차 지나친 욕심이었나보다. 

이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내 고집으로 부실하게 쌓아올린 만보프라자가 무너져 내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 미주 네가 있었다. 내가 이 손으로 너를 죽일 뻔 했던 거다. 나에겐 더 이상 버틸 힘도 없고, 용서를 구할 염치도 없다. 아니, 내가 나를 용서 못하겠다. 이토록 어리석게 살아 온 나를, 그리고 조필연의 아들로 태어난 나를.


미주야, 혹시라도 다음 번 생이 있다면, 그 때 나는 너의 오빠로 태어나고 싶다. 아무 거리낌 없이 곁에 있을 수 있게, 헤어질까봐 불안해하지 않게, 너에게 해 주고 싶은 모든 것을 마음껏 해 줄 수 있게... 꼭 너의 오빠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이번 생에는 나에게 너무 가혹하셨으니, 이 마지막 소원 하나는 들어 주시지 않을까? 어딘가에 계실지도 모르는 신에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려보는 나의 기도는 오직 이것뿐이다.

*******

'자이언트' 마지막회에서는 주요인물 중 한 명이 죽음을 맞이한다는데, 저는 조민우(주상욱)가 그 주인공이 되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지거든요. 조필연(정보석)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오래오래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고, 이성모(박상민)는 이미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와서 또 죽는다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합니다. 조민우가 죽는다면 조필연은 정치, 경제적 기반이 모두 무너짐과 동시에 유일한 혈육인 아들까지 잃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통렬한 복수의 완성이라 할 것입니다.

조민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악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던 복잡한 인물입니다. 그 자체는 악인이 아니지만 악마 조필연의 아들이라는 점은, 끊임없이 그의 반쪽을 검은 빛으로 물들였습니다. 아버지의 강한 힘에 이끌려 갈 뿐만 아니라 그 핏줄을 이어받아 잔인한 본성도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었지요. 그런데 하필이면 이미주(황정음)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조민우의 삶은 일관적이지 못하고 계속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딱한 신세는 적잖은 동정심과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 아무리 못된 짓을 저질러도 온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들었지요.


예고편에서 보니 드디어 모든 증거 자료가 공개되어 조필연은 몰락하고, 건설 자금을 빼내어 아버지의 정치 로비에 사용하느라 부실공사를 했던 조민우의 만보프라자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군요.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 실화를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가 있다더니 과연 이렇게 형상화되나 봅니다. 이 드라마는 정말 끝까지 궁금증과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만큼 흥미롭군요. 물론 중간중간에 허술한 곳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매우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그 대미를 장식할 최종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관련글 : 조민우의 독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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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부문에서 찾아 보시면 빛무리이름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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