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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이성모를 대신해 선택된 희생양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자이언트

'자이언트' 이성모를 대신해 선택된 희생양들

빛무리~ 2010. 11. 1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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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전에 포스팅한 '이성모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편에서, 이성모(박상민)의 캐릭터에는 차라리 새드엔딩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시청자들 중에는 저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보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성모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 싶더군요. 제발 이성모를 살려달라고 작가에게 애원하는 글들도 시청자게시판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지요. 요즘 제작진들은 시청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경우도 꽤 많은 편이라, 그런 절대 다수의 입김이 영향력을 발휘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드라마가 처음 출발할 때부터 이성모의 죽음은 이미 예정된 것으로 보였었는데, 지금의 추세로는 끝까지 살아남을 듯 싶군요. 불사신 수준의 놀라운 생존력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성모를 대신해서 죽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SBS 창사 20주년 특집으로 방송된 '시청자 여러분 고맙습니다'에서 보니, 20년간 방송되었던 드라마 중 최고의 악역을 뽑아 랭킹을 선정했는데 '자이언트'의 조필연(정보석)이 당당 2위에 이름을 올렸더군요. 절대적으로 신뢰할만한 랭킹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조필연이라는 인물은 사상 최대의 악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섬뜩하고 강한 포스를 자랑합니다. 그런 인물이 바로 턱밑에서 수십년간이나 자기를 기만하며 복수의 칼을 갈던 이성모에게 끝내 속아서 아무런 중상을 입히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한다면, 악마 조필연의 포스가 많이 무너지게 되지요. 그러면 작품의 균형도 무너집니다. 

조필연을 바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이성모 측 진영에서 꽤 중요한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희생양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 이강모(이범수)는 당연히 제외되겠고, 여동생 이미주(황정음) 역시 적합한 인물이 아닙니다. 이제 종반을 향해 달려가는 '자이언트' 54회에서는 이성모를 대신해 희생양이 될 두 사람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악마 조필연이 눈을 번뜩이며 "죽여야지!", "없애야지!" 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들 앞에는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군요.

1. 유찬성 (황택하)


이성모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수하입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비중이 높지 않았으나, 만약 실제 상황이라면 이성모에게는 친동생들 못지 않게 귀한 사람일 것입니다. 유찬성의 친형은 오래 전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이성모를 도와주다가 대신 조필연에게 죽임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찬성의 입장에서는 이성모를 원망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그는 진짜 원수인 조필연에게만 화살을 겨누고 오히려 이성모에게는 혈육같은 의리로 충성을 다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성모는 항상 유찬성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요.

그 동안 이성모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유찬성은 매우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복수고 뭐고 만약 유찬성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성모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확률이 높아요. 그런데 이제 그는 이성모를 대신할 희생양 1순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계속 이성모를 의심하면서도 확실한 꼬투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조필연의 촉수에 완전히 딱 걸리고 말았거든요.

갑자기 투입되어 이성모와 어설픈 러브라인 비슷한 것을 흉내내고 있는 여직원의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매우 짜증스럽습니다. 그녀만 나타나면 이 진중한 드라마 '자이언트'가 갑자기 시트콤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얼마나 황당한지 모릅니다. 가벼운 분위기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나 생뚱맞고 안 어울리니 이건 악수(惡手) 중의 악수라 하겠군요. 하여튼 그녀는 조필연과 한편인 오국장 측에서 이성모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한 첩자인데, 정작 어리버리한 그녀는 자기가 그런 목적으로 투입된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지시받은 대로 이성모와 유찬성의 일거수 일투족을 꼬박꼬박 기록해서 상부에 올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기록 중에 유찬성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상부에서 지시받은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조필연은 놀라서 유찬성의 뒷조사를 시킨 결과, 그가 자기 때문에 죽은 군의관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로써 그 동안 이성모를 향해 왔던 날카로운 의심의 화살은 모조리 유찬성에게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이성모를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꽤나 의지하고 아껴 왔던 조필연이니 만큼, 이제 모든 뒷공작은 유찬성이 한 짓이며, 이성모는 그의 정체를 모르는 채 곁에 두었다고 여기겠지요. 

이토록 쟁쟁한 인물들 틈바구니에서 유찬성은 아무 힘도 없는 약자입니다. 이미 예고된 거나 다름없는 그의 죽음은, 제 마음 속에 이성모의 죽음보다 더한 슬픔으로 다가올 듯 싶군요. 이성모는 그래도 친동생들을 찾아 가족애의 즐거움도 누려 보았고, 나름 정부기관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권력의 맛도 누려 보았습니다. 그런 이성모의 수하에서 수십년간 헌신적인 조력자 역할만 하다가 결국 그를 대신해 죽는다면 유찬성의 일생은 참으로 불쌍하군요. 그의 형도 오래 전 이성모를 대신해 죽었는데, 이렇게 되면 그들 형제에게 있어 이성모와의 만남은 가히 악연이었다고 할만합니다.

2. 오병탁 (김학철)


오병탁은 국회의원이며 여당 재정위원장입니다. 지위가 높을 뿐 아니라 대통령으로부터의 신임도 대단한 모양이에요. 한 마디 말로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청렴한 캐릭터는 벌써 오래 전부터 제 머릿속에 아주 인상적으로 새겨졌지요.

이강모가 처음 한강건설을 일으킬 무렵, 거대한 만보건설과의 경쟁에서 동등한 기회를 얻기 위해 오병탁 의원에게 일종의 청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부당한 내용의 청탁은 아니었지만) 그 때 오병탁은 이강모를 권력에 빌붙으려는 사람으로 알고 혐오스럽게 보며, 일절 청탁을 받지 않는다는 자기 원칙을 내세워 쫓았었지요. 그런데 나중에는 결국 인정에 이끌려 이강모를 도와주고 맙니다. 오병탁은 사고로 자식을 2명이나 잃었던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데, 이강모는 계획적으로 그 사실을 떠올리게 하여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 높은 위치에서 홀로 꼿꼿하게 독야청청하고 있으니, 오병탁은 정말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제 눈에는 항상 더욱 불안해 보였지요. 언젠가는 주인공을 대신해서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뿌리칠 수 없었거든요. 비유한다면 그는 '해리포터'의 든든한 후원자였다가 그를 대신해 먼저 죽음을 맞는 '덤블도어' 교장과도 같은 캐릭터입니다. 오병탁은 현재 '착한 세력' 중에서 최고 권력을 지니고 있기에, 꼭 필요할 때면 램프의 요정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주인공을 도와 줍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부실기업 리스트를 뽑아 퇴출시키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기회로 삼아 조필연은 눈엣가시와도 같았던 이강모의 한강건설을 완전히 짓밟으려 하는데, 이에 정면으로 오병탁이 태클을 걸었던 것이지요. 그가 대통령을 설득하면서까지 부실기업 리스트 발표를 늦추어 천금같은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한강건설은 무너지기 일보직전, 극적으로 회생할 수 있게 됩니다. 오병탁이 그런 결정을 내린 까닭은, 원래부터 이강모를 높이 평가하며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친동기간처럼 지내는 부시장 한명석(이효정)이 간곡히 부탁했다 해도 들어주지 않았을 거예요.


얼핏 이미주의 강력한 눈물바람이 이 모든 일을 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 쪽에 큰 비중을 두고 싶지 않습니다. 마치 오빠의 기업을 살리기 위해 몸이라도 팔려는 것처럼 샤워까지 하고 짙은 화장을 떡칠하고 한명석을 유혹하려던 미주의 모습도 이제까지의 청순한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아서 보기 불편했고, 미주의 눈물에 어쩔 줄을 모르며 그녀의 부탁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선뜻 약속하던 한명석도 글쎄, 나름 멋있긴 했지만 왠지 민망해서 거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미주와 한명석의 러브라인은 부자연스럽기 이를 데 없어요. 어쨌든 한명석의 부탁에 힘입어, 망설이던 오병탁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이번 결정은 조필연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습니다.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서 걸어 온 태클이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으니, 조필연의 교만한 자존심에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게지요. 게다가 예고편을 보니 오병탁은 조필연과 제대로 대립각을 세우고, 그에 대한 비밀 자료를 이강모 측에 넘겨주려는 모양이군요. 이에 조필연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치솟고, 급기야 오병탁을 없애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이 비춰집니다.

어찌 보면 오병탁의 희생은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해리포터의 투쟁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강력한 조력자 덤블도어가 우선 희생되어야 했던 것처럼, 조필연을 상대하는 주인공 이강모의 역할이 더욱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든든한 후원자 오병탁도 희생되어야 할 테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예정된 죽음이라 해도, 이 세상에 한 명쯤 존재했으면 좋겠다 싶은 청렴한 정치가의 표본과도 같았던 오병탁을 이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허탈감이 밀려오는군요.


이성모를 대신할 두 명의 희생양은 일단 제대로 선정되었습니다. 유찬성과 오병탁이 조필연에게 죽는다면, 극적인 효과가 이성모의 죽음 못지 않게 클 거라고 예상되니까요. 과연 '자이언트' 제작진은 현명합니다. 시청자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면서도 작품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가고 있군요. 기본적으로 아주 탄탄한 시나리오를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연기자들의 입장에서도 비중이 작은 역할 그대로 흐지부지 사라지는 것보다는, 인상적인 죽음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이제 드라마는 종반으로 치닫고 있으니까요. 특히 유찬성 역할의 황택하는 끝내 살아남는다 해도 이성모 뒤의 병풍 밖에 될 것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아주 멋진 죽음의 연기를 보여 주어서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낸다면 도약의 발판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 번 훌륭한 작가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던 '자이언트' 54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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